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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김연지 Oct 28. 2020

써보면 안다. 당신이 얼마나 근사한지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면] 쓰다 보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나란 사람.

뚜벅이인 내가 회사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이 있다.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에 내려서 긴 터널 같은 지하보도를 지나 모퉁이를 돌아서면 '짜짠'!!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H백화점 지하가 나타난다. 오른쪽은 식품 코너로 이어지고 왼쪽으론 샤방샤방 블링블링한 옷들이 자기를 봐달라고 어찌나 교태를 부리는지. 이쁜이들 어깨라도 쓰다듬어줘야 얘네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치듯, 온종일 닭 모이 쪼이 듯한 일상에서도, 이상하게 여기 한 번은 쭉 돌고 회사로 들어가야 밥 먹고 이 닦은 것 같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입사한 지 1년쯤 지났을까. 왼쪽은 쳐다보지 않기로 했다.


헐레벌떡 뛰어가는데 맞은편에서 갈색빛이 도는 긴 생머리에 A라인 스커트, 명품백 곱게 어깨에 걸쳐 매고 하얀색 광이 나는 힐을 신고 또각또각 걸어가는 여성이 아주 해맑게 웃으며 내 옆을 스친다. 달콤한 샴푸 향이 그녀를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딱 봐도 내 또래다. 피부는 백옥같이 희고 도자기 빚은 듯 윤기가 흐른다. 그렇게 나를 지나쳐서 매장으로 쏙 들어가는데, 순간 매장 기둥에 박힌 유리 거울에 내가 비쳤다.  


언제 샀는지 모를 무릎 나온 청바지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운동화, 언제 추운 데서 밤새야 할지 몰라 늘 장착한 바람막이, 언제 필요할지 몰라 온갖 살림살이 다 집어넣은 백팩, 했지만 안 하니만 못한 화장, 눈썹은 다 지워졌고 아이라인은 다 번져 사람은 어디 가고 판다만 남았느냐? 머리는 언제 감았니? 얼굴 색깔은 왜 이리 거무튀튀한지.


초라했다. 옷차림이야 일 때문이라 그렇다 쳐도, 쟤는 저렇게 활짝 핀 꽃처럼 화사한데 나는 왜 이렇게 우중충하고 낯빛은 또 그늘졌는지, 생기는 다 어디 갔고 웃음은 왜 사라진 건지?" 그냥 땅 속으로 푹 꺼져버리고 싶었다.


"꿈꾸던 기자가 됐지만 나 지금 안 행복해"라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다. 그전까지는 그저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것이, "이건 진짜 내가 아니야"라는 '현타가 온 순간이다. 그날 충격이 상당했던 모양이다. 이날 쓴 글이 있다. (글쓰기가 이래서 좋답니다. 한 번씩 꺼내볼 때마다 배꼽 잡아요)


2013년 3월 5일

내가 일을 주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내가 늘 일을 쫓아가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니 늘 숨이 차고 답답하다. 일을 끝내도 끝낸 것 같지가 않다.

불안하다. 잠을 쉽게 들 수 없다. 피곤이 쌓인다. 겨우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또 해가 뜬다. 하루 중 아침을 제일 좋아했던 나인데, 아침이 싫어졌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긴장하면 숨을 참는 버릇이 생겼다.

몽롱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지옥철에서 틈틈이 영어 단어도 외우고, 취침 전 30분이라도 책도 읽겠다 다짐했건만 주어지는 일거리를 해치우기조차 버겁다. 피곤하다. 눈꺼풀이 무겁다. 누가 내 어깨 위에 올라서 두 발을 힘껏 짓누르는 것 같다.

등이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 숨이 안 쉬어진다. 아니, 숨 쉬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숨을 어떻게 쉬는지 모르겠다. 다시 밤이다. 두 다리를 질질 끌고 침대에 쓰러진다. 못다 한 계획들이 생각난다. 잠이 쉽게 들지 않는다.

 어느새 아침이다. 잘 살고 있는 걸까. 난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러려고 태어난 건 아닐 텐데 이러다가 눈감을 것 만 같아서 문득. 갑자기. 엄마가 두 눈 시리도록 보고 싶다.


참.. 지금 보니 세상 우울하다. 스물일곱 예쁘디 예쁜 시절에.




어릴 때부터 춤추는 걸 좋아했다. '끼'까진 모르겠고 흥은 많았다. 지금도 참 많다. 한때 진심, 가수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노래가 아쉽네?! 춤 잘 추는 애들도 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다. 그들에 비하면 난 그저 평범했다. 노력하면 될 수 있을까. 물음표는 지워지지 않았고 그렇게 가수에 대한 꿈은 접었다. 또 다른 꿈을 꿨다. 아픈 사람들을 보면 의사도 되고 싶었다가 편의를 돕는 발명가도 되고 싶었다.


오늘 꿈꾸고, 내일은 접고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비록 찰나 같은 꿈이었지만 내가 어떤 모습이 돼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땐 참. 행복했던 것 같다. 그렇게 꿈처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아기 몇 개월이에요?"라는 질문 하나만으로 서로 연락처까지 교환할 수 있는 사교성과 해외에서도 영어 대신 바디랭귀지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친화력, 잘 웃고, 긍정적인 성격, 불의를 참지 못하는 것, 글 쓰는 것, 잘 듣고, 듣고 있다는 걸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 친구의 비밀 얘기 지켜주는 것, 아픔에 같이 울어주는 친구, 나란 애는 이런 애였다.


기자가 되면서 이런 나는 사라졌다. 기자가 되긴 했지만 정작 나를 잊어버렸다.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자기소개서 쓸 때나 빼고선 "어떤 기자가 되겠다"기 보단 "어디 기자가 되겠다"는 입방정을 떨고 다녔으니.  기자가 될 준비는 전혀 돼 있지 않았던 것 같다. 나로 살기 위한 여러 가지 수단 중에 방법이 '기자'라는 것을 잊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뀌어버렸다.


혼돈과 혼란의 시기였다. 앞만 보고 숨 가쁘게 살았던 시간들에 또다시 물음표가 생겼고 이 일을 그만두면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더 늦기 전에,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재빨리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조급증과 강박은 무력감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처럼 꿈을 꾸고 접고 하기엔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또 아까워 신문처럼 쉽사리 접을 수도 없었다.


도망가자니 그건 더 싫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허겁지겁 살기에 숨은 점점 가빠졌고, 숨을 또 참고, 쉬어야 할 타이밍에 숨 쉬지 못하면서 그렇게 숨 쉬는 법을 잊어버렸다. 나 안 이랬는데.


'진짜 나'는 어디로 간 걸까



나의 역할과 위치는 다양하다. 업계에서는 기자이고 회사에서는 일 열심히 하는 10년 차 허리 기수다. 집에서는 아내이자 엄마고, 주말엔 아이가 잠든 새벽에 춤추는 아줌마 댄서다. 메이저급 언론사는 아니더라도 브랜딩에 힘쓰고 개인 유튜브 채널도 꾸준히 운영하면서 업계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아무리 부족하더라도 부모님에게는 그저 자랑스럽기만 한 딸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 모습은 이렇다. 지금은 내가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이전에는 나는 버리고 직업으로만 살았다. 그 직업을 가지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건 아닐 텐데. 지은 보이는 내 안의 수많은 부캐(부캐릭터)를 불과 몇 년 전까지 보지 못하고 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대부분 잊고 살고 있다. 내가 비록 회사에선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SNS에서 잘 살고 잘 나가는 친구들에 비해 지금 내 모습은 한없이 초라할지라도, 나는 나대로 썩 괜찮은 사람이다.


그래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면, 뭘 좋아하는지 몰겠다면, 뭘 해야 할지 나조차도 알 수 없다면


써보면 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안 써봐서 몰랐을 뿐이다. 내가 얼마나 근사한 사람인지.

당신만 모른다.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끝없이 계속 비교만 하고 앞서 나가려다 보니 본질인 나 자신을 잊어버려서 그렇다. 


지금이라도 쓰면 된다. 그래서 써봐야 한다. 내가 스스로 적고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



종이 세 장과 펜을 준비한다.

PC나 노트북 말고 반드시 손으로 쓰길 바란다.

한 자 한 자 천천히 쓰면서 시간을 갖고 나를 조금 더 돌아보라는 뜻이다.


첫 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쓴다.

두 번째 장에는 내가 잘하는 것을 쓴다.

세 번째 장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쓴다.


이 세 가지를 찾는 것은 나만의 달란트, 나만의 능력을 찾기 위해서다. 남이 하는 것 좋다고 따라가는 게 아닌, 나만의 내 이야기를 구축하는 것이다. 능력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싫어하는 것은 곧 죽어도 쳐다보지 않기로 하자. 억만금을 준대도 박서준을 남편으로 맞더라도(?) 내가 손으로 쓸 만큼 싫어하는 거라면 정말 싫어하는 것이고 억지로 하더라도 어차피 오래 못 간다.


소위 다들 추앙하는 '스펙'을 갖추느라 내 재능을 스스로 묻어두고 산다. 남들이 하찮게 여기는 것이라도, 내가 느끼기에 스스로 떳떳하고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나만의 개성이고 능력이다. 신이 주신 달란트다.


이 과정은 두 가지를 전제한다.

1. 무슨 일을 하는 사람 말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대학, 취업, 회사, 승진, 결혼 등은 모두 나를 완성하는 수단일뿐이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결심하면 그 수단들은 저절로 따라오게 돼있다.


2.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20세 전후로 결심한 것이, 100세 시대 나머지 80 평생을 좌우한다면 슬플테다. 세상이 변하면서 직업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게 생기듯, 또 내 경험치가 넓어질수록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 마음먹은 것들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지금 쓰는 것은 현재의 당신에 대한 것이다. 안개속에 휩싸이거나 갈림길에 서게 되면 그 때 또 다시 써보면 된다.


주저하지 말고, 종이 세 장을 꺼내자. 이면지도 좋다.

써보면 안다. 당신이 얼나 근사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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