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은 사라지고 있다, 눈치채지 못할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속도.. 그러니 이렇게 질문하라.

by 기자김연지

다이소에서 60대로 보이는 할머니가 무인계산대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서 점원에게 물건을 내밀었다. 그 뒤로 30대 청년이 무인계산대에서 능숙하게 물건을 스캔하고 카드를 긁고 나갔다.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변화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우리는 각자 다른 시간대에 살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도래한 미래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로 남아있다.


영문과를 졸업하고 AI 번역일을 하던 직장인은 AI 발전에 다른 일을 찾는다. 다른 번역가는 ‘AI 번역 에디터'를 자처하며 아예 “AI가 번역한 결과물을 다듬는다”는 것을 자신 있게 내세운다.


그의 말에는 체념이 아닌, 묘한 해방감이 묻어났다.


"처음엔 두려웠어요. 내가 20년간 쌓은 것들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자유롭습니다. 반복적인 번역에서 벗어나, 진짜 중요한 문화적 뉘앙스를 살리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AI가 일자리를 대체한다는 말은 이제 낡은 뉴스처럼 들린다.


문제는 그 속도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의성이라는 마지노선의 붕괴


"창의적인 일은 안전할 거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다들 이렇게 믿었다.

나 또한 그랬다.


올해 초 광고대행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내게 보여준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는 챗GPT에게 "젊은 세대를 겨냥한 친환경 화장품 광고 카피"를 주문했다. 생성형 AI로 1분 내 50개 이상의 카피 초안이 나왔다. 그중 20-30%는 실제로 쓸 만했다.


"예전에는 카피라이터 3명이 하루 종일 브레인스토밍했어요. 이제는 AI가 순식간에 수십 개를 뽑고, 우리는 그중 좋은 것만 골라 다듬습니다."


작곡도 마찬가지다. AI 작곡 프로그램 Suno는 월 10 달러로 영화나 광고 음악을 생성한다. 비용은 기존 작곡가의 5분의 1에서 10분의 1 수준이다.


창의성조차 데이터화할 수 있다면, AI는 그것을 학습한다.

그리고

인간보다

빠르게,

더 많이 생산한다.


한 일러스트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제 경쟁자는 다른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미드저니입니다. 그놈은 한 세션에 초당 1-5장씩, 하루에 10만 장 이상도 그려낼 수 있어요. 저는 하루에 한 장도 버거운데."


중간이 사라지는 시대

서울 마포구의 한 법무법인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40대 초반의 변호사가 속내를 털어놓았다.


"로스쿨 나온 초임 변호사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아세요? 판례 검색이에요. 비슷한 케이스 찾아서 선례 정리하고, 법률 검토 문서 작성하고. 그런데 이제 그 일을 AI가 합니다. 리걸 AI로 판례 검색부터 초안 작성까지 시간이 85-95% 단축됐어요. 평균 30분 걸리던 일이 5분 만에 끝납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결국 살아남는 건 두 부류예요. 법정에서 판사를 설득하고 의뢰인과 신뢰를 쌓는 대표 변호사. 그리고 복잡한 서류를 정리하고 발로 뛰는 사무직원.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제일 위험합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안전한 건 최상위 전문가와 최하위 현장 노동자다. 대법원 판사의 판단을 AI가 대체하기는 어렵다. 배관 터진 욕실을 수리하는 일도 아직은 로봇보다 인간이 낫다.


위험한 건 중간이다. 매뉴얼을 따라 일하고, 표준화된 업무를 처리하고, '경험'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그들의 경험은 데이터가 되고, 데이터는 AI의 학습 재료가 된다.


한국의 회계법인을 보자. 세무사 1명이 처리하던 중소기업 세무신고 업무를 AI 세무 설루션이 70-90% 자동화한다.


더존비즈온 같은 솔루션은 복잡한 법인세조차 3분 만에 완료한다. 대형 회계법인들은 AI 도입 이후 신규 사무 인력 채용을 25-35% 감축했다. 피라미드의 중간이 사라지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예외를 읽는 능력이다.

AI는 패턴을 찾는다. 인간은 예외를 발견한다.


한 병원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이야기다.


"AI는 폐 CT에서 암 의심 병변을 찾는 데 인간보다 정확합니다. 하지만 AI가 못 보는 게 있어요. 환자가 2주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기록, 어제 응급실에서 호흡곤란으로 실려 왔다는 이력, 가족력에 폐결핵이 있다는 정보. 이 맥락들을 종합해서 '이건 암이 아니라 염증'이라고 판단하는 건 아직 인간 의사의 몫입니다."


우리는 데이터 너머의 이야기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숫자 뒤의 감정, 패턴 속의 예외, 알고리즘이 놓치는 인간적 뉘앙스를 포착하는 능력.


작년 한 글로벌 컨설팅사 면접에서 실제로 나온 질문이다. "AI가 분석한 이 데이터에서 틀린 부분을 찾으시오." 정답은 데이터 자체가 아니라,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제외된 특정 고객군이 문제였다.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분석할 뿐, 없는 데이터를 의심하지 않는다.



둘째, 쓸모없는 질문을 하는 능력이다.

AI는 답을 찾지만, 질문을 만들지 못한다. 특히 아직 답이 없는 질문을. 그래서 한 스타트업 대표는 채용 면접에서 이렇게 묻는다고 했다.

"우리 제품이 실패할 가장 황당한 이유 세 가지를 말해보세요."

최적화 방법을 묻는 게 아니라, 실패의 상상력을 본다는 것이다. AI는 성공 패턴은 분석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패는 상상 못 한다는 것이다.

자격증은 검색하면 나온다. 매뉴얼은 AI가 더 잘 외운다. 하지만 문학 작품을 읽고 인간 내면을 이해하는 능력, 역사를 공부하며 맥락을 읽는 통찰력, 철학으로 본질을 묻는 태도는 데이터로 측정되지 않는다.

AI는 "이 데이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에 답한다. 하지만 인간은 물어야 한다. "우리가 측정하지 않은 건 무엇인가?"를. "어떻게 더 팔까?" 대신 "왜 이걸 팔아야 하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한다.

AI는 주어진 길을 빠르게 달리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인간이 정한다. 그래서 질문해야 한다. 스타트업 대표는 인터뷰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10년 뒤에도 남아있는 사람은 코딩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왜 그 코드를 짜야하는지 아는 사람일 겁니다."



셋째, 쓸데없는 것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지난해 여름, 한 자동차 회사 디자이너를 만났다. 그는 주말마다 도자기 공방에 간다고 했다. 자동차 디자인이랑 도자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물었다. 그 역시 늘 받는 질문이라고 했다.


그는 “흙을 만지면서 곡선의 자연스러움을 배워요. 가마에서 굽는 과정을 보며 소재의 변화를 이해하죠. 그 경험이 제 디자인에 녹아들어요. AI는 과거 히트 차량의 디자인 요소를 분석해 '최적의 디자인'을 뽑아내지만, 도자기 곡선에서 영감을 받는 건 못 합니다”


AI는 분야를 나눈다. 인간은 분야를 넘는다. 심리학과 마케팅을 연결하고, 철학과 공학을 접목하고, 요리와 화학을 융합한다.


애플의 아이폰이 혁신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놀란 건, 터치스크린도, 음악 플레이어도, 대화면도 아니었다. '이미 있던 것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넷째, 의미 없는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다.


효율의 시대에 가장 반항적인 말은 이것이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겠다."


한 소설가는 이렇게 말했다. "제 소설은 서울에서 부산 가는 기차 안에서 완성됐어요. 4시간 동안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요. 생산적이었냐고요? 전혀요. 하지만 그 시간에 떠오른 한 문장이 소설 전체를 바꿨습니다."


는 쉬지 않는다. 24시간 작동한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인간의 창조는 비효율의 시간에서 나온다.

산책하다가 떠오른 아이디어, 샤워하다가 풀린 문제, 멍 때리다가 찾은 해답.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안 할 때 가장 활발하게 연결을 만든다.


역설적으로, AI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것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다. 측정되지 않는 시간, 생산성으로 환산되지 않는 시간. 그 시간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우리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것들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책을 읽되, 베스트셀러가 아닌 고전을 읽어라. 사람을 만나되, 네트워킹이 아닌 대화를 나눠라. 여행하되, 인증샷이 아닌 길을 잃어봐라. 취미를 가지되, 자기 계발이 아닌 쓸모없는 것을 해봐라.


다섯째, 실패를 낭비하지 않는 능력이다.

AI는 최적화한다. 인간은 시행착오한다.


한 요리 연구가의 이야기다. "레시피 개발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실패작이에요. 소금을 너무 많이 넣었더니 짠맛이 아니라 쓴맛이 났어요. 원리를 찾아보니 소금이 특정 농도를 넘으면 쓴맛 수용체를 자극한다더군요. 그걸 이용해 새로운 소스를 만들었죠. AI는 완벽한 레시피를 만들지만, 실패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지는 못해요."

페니실린은 실험 접시에 곰팡이가 오염돼서 발견됐다. 포스트잇은 약한 접착제 개발에 실패해서 나왔다. 마이크로웨이브는 레이더 연구 중 실수로 주머니 속 초콜릿이 녹아서 발명됐다.


혁신은 계획에서가 아니라, 계획의 실패에서 나온다.

AI는 실패를 회피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자원으로 바꾼다.


제주도의 한 카페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서 10년 동안 광고 일 했어요. 밤새 기획안 쓰고, 미팅하고, 성과 내고. 그러다 번아웃 와서 여기 내려왔죠. 지금은 커피 내리면서 손님들과 수다 떨어요. 생산성? 제로죠. 근데 행복해요.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생산적인 시간 덕분에 제 인생에서 가장 창의적인 메뉴들을 개발했어요.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


우리는 '적응'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쓴다. "AI 시대에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적응은 수동적이다. 주어진 환경에 맞추는 것이다.


나는 '창조'를 이야기하고 싶다. 2020년 팬데믹 때를 기억하는가? 모두가 일상을 잃었지만, 잃어버린 일상에도 사람은 '적응'했다. 재택근무에 적응하고, 화상회의에 적응하고, 비대면에 적응했다.


그런 가운데 누군가는 '창조'했다.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을 만들고, 배달 앱을 혁신하고, 메타버스 공연을 기획했다. 적응한 사람은 살아남았지만, 창조한 사람은 성장했다.


AI 시대도 마찬가지다. AI에 적응하는 것과 AI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AI를 이렇게 쓴다.


AI는 제 초고를 10가지 버전으로 바꿔줍니다. 하지만 그 중 하나도 완성본으로 쓰지 않는다.

하지만 그 열가지를 보면서 제가 놓친 관점을 발견한다다.

그래서 AI는 나의 동료 작가예요. 단순한 도구도 경쟁자도 아닌.


도구는 중립적이다.

칼로 요리할 수도, 위협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칼이 아니라 쥔 사람의 의도다.


결국 남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다움

서울 종로에 70년 된 납활자 인쇄소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납활자라니,

그런데 그 인쇄소는 지금도 주문이 밀린다.


청첩장, 명함, 작은 책들. 사람들은 기꺼이 3배 비용을 내고, 2주를 기다린다.

https://www.instagram.com/printery_giid/

왜일까?


사장님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디지털은 완벽하죠. 깔끔하고, 빠르고, 저렴해요. 근데 납활자는 달라요.
글자마다 미세하게 압력이 다르고, 잉크가 번지는 정도가 달라요. 불완전해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불완전함에서 온기를 느낍니다."


AI 시대, 결국 남는 것은 불완전한 인간다움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것, 알고리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 효율로 측정되지 않는 것들. 실수하고, 헤매고, 돌아가고, 때로는 엉뚱한 것을 시도하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우리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일인가, 아니면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이 질문은 직업만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고, 존재의 방식이다. 우리는 효율적으로 살 수도 있고, 의미 있게 살 수도 있다. 둘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의미를 택하겠다.


AI가 내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나는 AI가 할 수 없는 일을 찾겠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일단 멈추고 생각해 보겠다. 답은 바쁨 속에 있지 않다. 여백 속에 있다.


40개의 직업이 사라진다는 리스트를 보며 두려워하지 마라. 대신 물어라.


"나는 어떤 가치를 만들고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대체 불가능하다.


AI는 도구다. 강력하고, 빠르고, 정확한 도구. 하지만 도구는 목적을 만들지 못한다.

목적은 인간이 정한다.

지금, 당신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답하는 순간, 당신은 AI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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