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격리시절 1
2020년 상반기는 지구인 모두에게, 아니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에게 잊지 못할 시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인간이 아닌 다른 모든 생명체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최소한 바이러스를 몸 속 어딘가에, 또는 개체들 중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도 모르는 종을 말한다.
지나고 보니 2020년 1월은 마치 폭풍전야의 시기였던 모양이다. 이미 12월경에 이 지독한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지구인들은 그저 여느해와 같은 일상을 준비하고, 새해를 맞았거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도 그 때는 2020년의 상반기가 이렇게 혹독할 줄은 예상하지 못한 채, 일상에서 오는 매너리즘과 '무직'으로 버티는 시간에 지쳐 주변 생활의 모든 것들에 무료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지난 1월이 가장 여유있었고, 즐거웠으며, 걱정이 없었다. 2월이 되자 마자 먼 친척 중 한 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 준비를 해야 했는데 이 시기가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와 경고가 뉴스를 뒤덮기 시작했을 때였다. 장례식을 전후로 하여, 자주 모이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가족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일이나 기회는 거의 오지 않고 있다. 아니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2월에는 한국으로 귀국할 준비를 나름은 하고 있었다. 2월말에 예정된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임대인으로 살았던 작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준비를 해야 하고, 개강을 앞둔 대학교에 강의 자리가 있다면 시작해야겠다고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인터뷰가 2월 말이어서 끝나자마자 바로 돌아와야 3월 개강에 맞출 수 있을 것이었는데, 새학기 강의 배정은 이미 다 마쳤을 시기이니 어쩌면 한 학기 더 쉬고 진행 중인 연구를 계속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세상에. 상황은 2월이 되자 급작스럽게 바뀌고 말았다. 요동치듯, 물밀듯이, 단 며칠 사이에, 모든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귀국편 항공일에 비행 일정이 취소되어 항공사에서는 일찌감치 일정을 변경하라고 연락을 한 차였다. 아시아나항공은 2020년 3월과 4월에 샌프란시스코를 오가는 항공일정이 바뀔 예정이었고 나는 하필 이 기간에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으로 거의 1년 전에 항공권을 구매해 두었었다. 항공사 입장에서는 미리 고객들에게 알려서 일정을 바꾸라고 했지만 나는 마침 일정을 바꾸자 마자 또 2월 마지막 주에 인터뷰를 배정받은 차여서 2월말 아니면 4월에나 귀국이 가능해 보였다. 다음 학기 수업은 비어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은 3월 이후로 변경할 수 밖에 없었기에 대략적인 날짜를 받아두고 있었는데, 결국은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편을 예약하기 위해 대기 예약은 물론 운행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등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던, 이 복잡한 사연.
그것은 꼭 지금의 이 코로나사태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살던 집의 주인인 대형 건설사에서 정해 준 계약 일정에 맞추고 내 일정에도 맞추고 하려다 보니 더욱 복잡해졌던 것은 사실인데,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는 내 안위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 탓에, 나는 더 머리가 아파버리고 만다. 여기서는 와라, 저기서는 위험하다 가지 말아라, 지켜보다가 가라 등등,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모두는 아주 확신에 찬 어조로 '이렇게 해야 한다'를 외쳐댔던 것 같다. 나는 내 입장만을 고려한 것은 아닌데, 상대방'들'이 보기에는 내가 내 입장만을 고려해 한국으로 가려고 하는 것, 또는 집의 계약서를 쓰기 직전에야 오는 것이라고들 생각해 버렸을 것이다. 결국 나는 그 두 편 모두를 적당히 고려하여 일정을 짰는데도 말이다.
아무튼 격리는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하필 그 시기가 각 나라들이 하늘길로 입국하는 것을 막기 시작하고 향후에 언제 어떻게 비행편을 찾아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를 때였다. 나는 유학생도 아니었고 소위 강남거주자도 아니라서 뉴스에서 보는 몇몇 사람들처럼 배째라 식으로 한국의 행정력을 낭비하게 하기도 싫었다. 마침 한국 뉴스에는 제주도에서 확진된 어떤 모녀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미국에서 입국한 딸이 제주 등지를 여행을 다녔던 것이라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가 싫으면 저기로, 저기가 싫으면 여기로 와서 마음껏 활개치며 살 수 있는 상황에 있는 국민들이 얼마쯤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소시민일 뿐이다. 그 때의 나는 몇 가지 고민을 안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몇 달간, 이방인이 아닌데도 이방인처럼 격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격리생활은 벌써 5개월째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