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생애와 나의 부끄러움

[계절의 오행](2023)_19NOV22

by 정연진


[자전거 도둑]이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 있지만 한국소설인 줄은 몰랐던 것 같다.(부끄럽다.) 이걸 왜 몰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김소진이라는 소설가의 이름도 얼마 전 처음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에 국어시간에는 나는 뭘 배웠던 걸까, 잘 따라가기는 했던 건가? 국어라는 교과목을 혹시, 공부하지 않는 생활이나 상식쯤으로 생각하고 수업시간에 앉아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행하던 소설이나 베스트셀러를 왜 나는 하나도 접해보지 못한 걸까? 왜 아무도 나에게 책 읽기를 권하지 않았을까?


나는 읽을거리를 늘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가 읽어낸 것은 도대체 어떤 것들이었단 말인가. 다행히 동명의 영화가 있으니 나는 책이 아니라 영화로 착각했던 것이라고 거짓 변명이라도 해 볼 수는 있겠다. 그런데 나는 이탈리아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영화 [자전거 도둑]도 본 적이 없다.


책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운 사회는 아닌 것 같다, 아무도 묻지 않으니까. 요즘은 밖에서 책 읽는 사람을 거의 본 적도 없는 것 같고. 내가 뭐 한국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설사 문학을 전공했다고 해도 전공하면서 수강한 교과목에 등장하는 모든 작품들을 읽어내기야 하겠나, 외국문학 전공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아는데. 개관에 해당하는 수업에서는 수천 년에서 수백 년 동안의 학문의 역사가 한 권에 집약되어 있어 전체적인 내용만 알면 되도록 구성된 책들을 교재로 쓴다.


넓고 얕은 지식의 백과사전 정도로 편집해 둔 교과서 중에서 핵심 내용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그 과목의 학점은 물론 졸업고사도 잘 치를 수 있다. 수년간 수강한 교과목 중에서 교재에 등장하는 작품 중 한두 권을 선정하여 읽어야 하는 과제를 받은 것은 단 두 번, [영국 문학 개관] 수업과 [영미소설] 수업뿐이었다. 한국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니 시험문제에 나올 법한 부분이 곧 공부할 분야가 된다. 토론거리가 될만한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것을 교수들도 싫어했던 것 같다.


소설 [자전거 도둑] 자체보다 나는 책 날개의 작가의 생애 요약본을 읽고 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곧바로 연보를 찾아 읽었다. 이런 삶을 살다 간 작가도 있구나… 나는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보고, 여성 작가에 의해 쓰여진 섬세한 성장 스토리로 이 소설을 상상했던 것 같다. 책을 주문하고 첫 장을 펼치자마자, 나는 나의 상상력이 빵원짜리라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남성이었으며 [자전거 도둑]은 내가 상상했던 류의 동화 같은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다. 김소진이 몇 년 되지 않는 짧은 활동기간 중에 예상보다 많은 작품을 남긴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자전거 도둑]은 구성도 그렇고 줄거리도 특이하다. 장편으로 써야 할 이야기를 단편으로 쓴 것인가. 이야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작가가 강조하려는 것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미혜가 아니라, 주인공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려는 아버지의 이야기이자 영화 [자전거 도둑]에서 주는 그 기억과 스토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그런데 쓰다만 이야기 같은 이런 소설은 왜 중요한가. 이것은 그 흔한 시대적 배경과 작가의 생애에 대해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공부할 수 있을 내용이다.


작가 이름과 제목만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깔끔하게 정리된 줄거리와 소설의 구성을 알아내면 그만이지만, 나는 최근에, 그냥 원문을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적당히 아는 체할 수 있는 도구들이 분명히 있지만 지금 읽어보지 않으면 영원히 이 작품들을 읽거나 접해볼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 뻔하다.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알고 소크라테스도 알고, 마크 트웨인도 알고, [위대한 개츠비]도 알지만, 사실 우리들 중 소수만이 그런 사람들이 써낸 작품들을 직접 접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당대의 유명한 작품들을 책보다는 영화로 보았던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의 경우,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던 버전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그 현대적인 버전, 두 가지 모두를 보았다. 즉, 소설 원문은 한글로도 읽은 적이 없다는 것. 나는 갑자기 교과서에서 만났던 많은 작품들과 작가들과, 주요 작품들, 시대정신을 담은 많은 한국의 소설들을 읽지 않았다는 것이 부끄러워지고 있는 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 한국어와 한국문학, 외국인들이 보는 한국 역사, 한국 문화... 이런 것들에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겠지.

7,80년대 그리고 90년대에 2, 30대 시절을 보낸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어쩜 그렇게 다들 문학도서들을 탐독했는지. 내가 아는 많은 선배들, 직장의 선배들은 대부분 웬만한 문학작품이나 정치적 상황에 대해 거의 모두가 전문가 수준이었던 것 같다. 대학 내에 있는 연구원들이건 아니건 간에 언제 어디서든 아무 준비 없이도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수준 높은 토론이 가능하더라. 전공자, 비전공자 그런 구분도 필요 없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몸으로 체득한 수준 높은 시대정신들, 나는 나는 그런 선배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내가 아는 것은 전직 대통령 순서 정도였다면 그들이 토론하는 것은 시대별 정치적 상황과 알려지지 않은 배경들, 정치적인 변화들, 경제구조들, 총리라거나 장관을 맡았던 인물들의 뒷이야기까지, 그리고는 어느새 저 멀리 조선시대의 정쟁의 역사까지도 포함해서 토론하곤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지도에서 발해가 언제부터 사라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해 최근 한국의 지도와 역사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다. '한국'에 관한 정보들은 지난 수십 년간 내가 공부할 필요가 없는 분야였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기에 과거든 현재든 한국이라는 이슈 자체에 대해서는 인지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현대 문학에서 중요한 몇몇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나 작품을 내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몰랐다는 것이 오늘 이렇게 부끄러운 것은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서 먼저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최근 반년 사이, 한국사를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고 느낀 참이다.


소설 [자전거 도둑]은 두 가지 면에서 여운이 남는다. 작가의 연보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안타까움과 삶과 죽음에 대한 경종 같은 것, 그리고 1960년대의 가난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로 소시민들의 삶을 지배해 버렸는지에 대한 공감심. 작가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감안하고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가 아니었더라도 이런 기록들은 시간이 갈수록 귀중한 자료로 관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처럼, 서양인이 기록한 한 장의 사진이 한국의 의병사의 중요한 기록이자 후대에 남기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가. 정병욱 선생이 전남 광양의 작은 포구 마을, 어머니의 시골집에 맡긴 원고가 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그 귀한 시집이 되어 온 국민에게 시인의 삶과 시대 정신과 젊은 시인이 담아낸 [별 헤는 밤]의 의미를 알게 해 준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그때그때의 기록은 시간이 흐르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에 어떤 관점의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의 문제는 상당히 정치적인 것이라서 어느 순간에는 그 기록 자체가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더 좋아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고, 쓰고, 읽고, 찾아내고, 복원해 내야 할 것이다.


내가 읽은 김소진의 [자전거 도둑]은 문학동네에서 작가 사후에 작품을 모아 발간했던 전집 판이었다. 중고도 많고 동네 도서관에도 여러 출판사의 책들이 많을 것이었지만 나는 가능한 문학동네의 최근판을 찾아 구매했다. 여러 번의 재인쇄를 거쳐 2016년에 발행된 것이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 보아야 하고 어쩌면 다시 읽어 보아야 하겠지만, 출판사에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인기 작가군에 속하는 이런 전집 판을 재인쇄하고 또 재인쇄할 때, 날짜 지난 이야기 정도는 새 판에 맞춰 수정해주는 부지런함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 문학계를 이끈다고 자처할 큰 출판사가 오래전 서문을 여전히 재탕해 내고 있는 현실, 아무도 관리해 주지 못하는 작가들의 현재적 역사. 경쟁자 없는 판권이라도 작은 책무감을 가지고 성의를 보여주면 참 좋겠다. 이런 태도는 알게 모르게 출판사의 이미지를 만들어 줄 것이고 나중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수도 있는 문제인데.

마치, 연도와 날짜 표기가 너무 지난 교과서를 본 느낌이랄까. 2016년 날짜에 ‘이것은 작가 사후 5년...'이라는 서문 부분이 아쉬워서 작가의 불꽃같은 생의 이야기가 더 안타까워졌다. 작가가 사망한 지는 20년이 훨씬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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