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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보이와 인어공주 1-3

단편 4

by 김연주


엄마는 왜 그런 사람인 걸까?


6년 전 아빠의 사업이 위태로워졌을 때 엄마는 부도라도 나서 파산하게 되면 자기 사업에도 악영향이 있을 것이라며 이혼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진짜 부도가 난 아빠는 정신적인 힘듦을 못 버티고 충동적인 자살시도를 했었다. 하지만 다행히 미수에 그쳐 다시 살아난 아빠.


응급실에서 깨어난 아빠는 나에게 못난 꼴을 보여 미안하다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 엄마는 거칠게 운전하며 “뒈지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한심한 인간” 이라며 혀를 찼지.

어린 아들이 듣는 것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그리고 내가 작년 교통사고로 인해 운동선수의 삶은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엄마는 큰 실망감과 슬픔에 빠진 내 마음보다는 '그동안 들인 돈이 얼마인데...' 하며

또 혀를 찼다.


‘부자가 모두 쓸모없는 것들이네’ 하는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후~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숨통이 조여 온다.

엄마는 요즘 흔히 말하는 소시오패스나, 사이코 패스 같은 걸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이모도 다 좋은 사람들인데 엄마는 왜 그런 사람인거지?

고2가 된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말했다.

남들이 다 알아주는 대학이 아니면 자기는 학비를 내줄 생각이 없으니 대학생이 되고 싶으면 무순수를 써서라도 자기 면을 세울 수 있는 일류대에 들어가라고 말이다.


웃긴다.


누가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나? 나는 참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바로 군대에 입대하고 제대하자마자 아버지가 있는 칠레로 떠날 생각이다.


아빠는 어렵게 몸과 마음을 추스른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났다.

ㄹ젊은 시절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 지금이라도 여행을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겠다며 떠났던 아빠.


그렇게 여행의 끝에서 내린 결론은 남은 생을 그곳에서 보내기로 했던 것인지, 아빠는 아예 칠레로 이민을 가셨다.


그렇게 아빠는 너무나 엉뚱하게도 산티아고 외곽에서 작은 게스트 하우스를 시작했으며, 아주 낡고 오래된 작은 건물을 매입해 매일매일 수리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바쁘고 힘이 들지만 아빠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면서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영상통화를 하는 나에게 언제 한번 꼭 놀러 오라는 말을 하며 웃었다.


진짜 아빠는 행복해 보였고 나도 행복을 찾아 그곳으로 가기로 그때부터 마음을 먹었다.


고2의 여름방학,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다행히 오늘은 지은이가 해변에 먼저 나와 있었다.


“지은아~”


“동영아 안녕~ 어, 도리도 같이 나왔네?”

지은이는 폴짝 뛰어드는 도리를 앉아주며 웃었다.

“저기, 어제 안 보여서 걱정했어 언니는 괜찮으셔?”

“응~ 어제는 좀 안 좋았는데 이제 괜찮고, 곧 좋아질 거야”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언니분 무슨 병... 아니 병이 아니라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당황하며 우물거리자 지은이는 항상 그렇듯 밝게 웃으며,


“특별한 병에 걸린 건 아니지만 음... 굳이 말하자면 배신병?”


배신병.


지은이의 농담 같은 대답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이모로부터 들었던 부부의 이야기 주인공이 지은이의 언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소리를 들었다는 얘기는 할 수 없으니 아무것도 모른 척하며 다른 이야기로 상황을 바꿔보려 했지만 생각만큼 적당한 얘깃거리는 떠오르지 않았고 또다시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는 지은이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는 내 표정을 그대로 읽혀버리고 만다

“큭큭큭~ 너도 들었구나? 우리 언니얘기”


지은이은 말에 내 두 눈이 놀란 토끼눈처럼 동그래지자 그 모습을 본 지은이가 한참을 웃었다.

“깔깔깔~ 동영이 너 어디 가서 사기 같은 건 못 치겠다 어쩜 그렇게 얼굴에 속마음이 다 보이냐?”

“아니야 그런 거!”


빨간 토마토처럼 붉어진 얼굴을 돌려 열심히 모래를 파고 놀던 도리를 이끌고 걷기 시작하자 지은이가 여전히 큭큭 거리며 따라온다.

“미안~미안~ 그냥 여기사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고 이제 언니와 내가 떠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네가 너무 놀라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어”

괜한 민망함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내가 좀 더 걷다가 물었다.

“언제 가는데? 언니랑 너”

“음... 아마 며칠 내에 가지 않을까 싶어. 그 사람을 찾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예정보다 좀 늦어졌지만 언니 상태가 좋아지면 바로 떠날 거야”


“그렇구나...”


떠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지은에게 이유 모를 서운함이 느껴졌다. 나도 어차피 방학이 끝나면 서울로 돌아가야 하면서 말이다.


사실 아주 잠깐 지은이가 이곳에서 학교를 다닌다고 한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전학을 오는 건 어떨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지은이는 여기에 있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기에 곧 그 생각은 지워졌다.


“저기 언니분 많이 아파 보이던데 그렇게 금방 좋아질 수 있는 거야? 집도 멀리 있는 거 같은데... 배를 타든 비행기를 타든 힘들잖아... 그런데 지은이 너는 어디서 온 거야?”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말. 하지만 왠지 묻기 어려웠던 질문을 이제 곧 떠난다는 지은이의 말을 듣고 물어본다.


“음... 집이 멀리 있는 건 맞지만... 배나 비행기는 안타도 돼, 우리 집은 저 바다거든”

지은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또 한 번 밀려오는 서운함.

“뭐 알려주기 싫으면 됐어”


나는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고 방향을 틀어 도리와 함께 집으로 향했다.

“야~ 정동영 화났어?”


뒤돌아 가는 나를 따라오는 지은이.


그러면서 한동안 말없이 걷다 늘 우리가 헤어지는 지점에 와서 나를 바라보며 엉뚱한 말을 했다.


“너 혹시 인어공주 이야기 아니?”

“인어공주? 동화 말하는 거야?”


“그래 그 이야기 속 인어공주 말이야, 매일 바위뒤에 숨어 지켜보던 왕자님을 바라보던 인어공주가 어느 날 왕자가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 바다에 떨어졌고 그를 구해 냈지.

바다로 돌아온 인어공주는 그 왕자님을 잊지 못해 바다 마녀를 찾아가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고 두 다리를 얻어 왕자 곁으로 갔지만 자신을 살린 인어공주를 알아보지 못하고 생명의 은인이라 믿는 이웃나라 공주와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 말이야”


“뭐 대충은 나도 알아, 제대로 읽어본 적은 없지만 워낙 유명한 동화니까”

“그래? 그럼 그 인어들이 나와 내 언니고 이야기 속 상황과 비슷한 일들을 우리 언니가 겪었다고 한다면 너는 믿을 수 있어?”


지은이는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에게 물었고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있었다.

“깔깔깔~ 역시 못 믿겠지? 뭐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동영아 네가 믿든 아니든 나는 네 질문에 거짓으로 답한 적은 한 번도 없어,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고”




그날 밤늦게까지 잠 못 든 채 지은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다 할 결론은 내릴 수 없었다.

이상하고 엉뚱하고, 당연한 일들을 잘 모른다고 해서 바닷속이나 우주에서 온 다른 생명체일리는 없는 것이고, 지은이를 아무리 봐도 물고기는커녕 누가 봐도 100번 사람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지은이는 나에게 그런 이상한 말들을 한 것일까? 그렇게나 진지한 얼굴로 말이다.

‘아, 지친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생각을 많이 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구나’

나는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나와 냉장고로 향했다.


‘뭐 먹을 게 있나?’


다행히 냉동피자가 보였고 나는 포장을 뜯어 전자레인지에 넣고 7분 30초를 설정하고는 그대로 서서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렌즈 속 냉동피자를 바라보며 서 있자, 글을 쓰다 말고 물을 마시러 나온 이모가 나를 보고는 한마디 한다.

“이 시간에 뭘 먹으려고? 소화 안될 텐데...”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조금만 먹을게”


내 말에 이모는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차가운 물 한 컵을 따라 방으로 돌아간다.

“저기 이모, 혹시 인어공주 이야기 엔딩이 뭔지 알아?”


갑작스러운 내 말에 방문을 열다 말고 선 이모가 묻는다.


“뭐? 인어공주 엔딩?”


“응, 동화 말이야 인어공주 동화 속 마지막이 어떻게 끝나냐고”


“얘가 자다 말고 웬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왕자와 결혼 못한 인어공주는 아침해가 떠 오르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저주에 걸려있어, 다시 바다에 돌아가려면 인어의 자매들이 준 칼로 왕자를 죽이면 되지만 결국 왕자를 죽이지 못한 인어공주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물거품이 되는 게 끝이지 아마도...? 그런데 갑자기 인어공주 이야기는 왜, 뭔데?”

이모는 정말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향해 물었고 나는 지금 막 조리의 끝을 알린 전자레인지의 땡 소리와 함께 김이 모락모락 나는 피자를 접시에 받쳐 들고는,

“아니, 그냥 갑자기 생각났는데 끝이 어떻게 되었나 궁금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꾸하며 내방으로 들어왔다.


왕자를 죽이면 다시 바다로 돌아갈 수 있다는 내용이 왠지 마음에 걸린다.

물론 지은이나 지은이 언니가 인어일리도 없고 이야기 속 일들이 일어나지도 않았겠지만,

아까 낮에 찾은 그 사람이란 말은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그 사람이 설마 바람나 떠났다는 남편을 말하는 건 아니겠지?







지은이를 이틀이나 만나지 못했다.


이제 곧 언니와 함께 떠난다고 했으니 이사준비로 바쁜 것이겠지? 설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가버리거나

하지는 않겠지?

오늘도 오전부터 나와 오후 1시가 다 될 때까지 지은이를 기다리다 걸음을 옮긴다.


휴대본은 없어 연락은 못해도 지은이가 알려준 집은 안다.


‘한번 가볼까?’


해변 끝자락에 있는 빨간 지붕집. 근처까지 왔지만 도저히 문 앞에서 지은이를 부를 용기는 나지 않았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쌀은 돌담 위로 고개를 쭉 빼들고 안을 살펴보지만 어떤 인기척도 없다.


‘진짜 벌써 떠난 건가? 이렇게 인사도 없이?’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마음이 어둡게 가라 앉을 무렵,

“너 누구야?”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 보니 지은이의 언니가 날 선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지은이 친구 동영이에요 얼마 전에 인사드렸던...”


너무 놀라고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나를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지은이 언니는 “왜 남의 집을 훔쳐보는 거지?” 하고 물어볼 뿐 내 인사를 받거나 아는 척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훔쳐본 건 아니고, 계속 지은이를 못 봐서 혹시 어디 아프거나 벌써 떠났나 궁금해서요...

곧 언니분이랑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눈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진담 빼며 대답하는 내 모습을 보며 지은이의 언니는 집안으로 들어서며 “남일에 신경 끄고 어서 돌아가” 하며 대문을 꽝 하고 닫아버린다.

나는 이미 모습이 보이지 않는 지은이의 언니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곧바로 발걸음을 돌려 빠르게 해변으로 향했다.


가슴은 꿍꽝꿍꽝~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차갑게 식은땀이 온몸에 주르륵 흘렀다.

공포감, 왠지 모를 공포감이 온몸을 감싸안는다.


지은이의 언니는 얼마 전 보았던 미라같이 바싹 마른 모습이 아니었다.


적당히 살이 오르고 지은이와 같은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 윤기 나는 검푸른 머리카락, 그리고 눈동자가 선명하게 보니는 커다란 두 눈까지 분명 예쁜 모습이지만 왠지 모를 이질감과 불쾌감 같은 것이 뱃속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 나왔고, 이제는 절지 않는 걸음걸이까지 모든 게 무섭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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