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4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방 안으로 들어와 문을 잠근다.
그리고 벽에 기댄 채 숨을 몰아쉬며 생각을 정리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렇게 말랐던 몸이 며칠 만에 정상적인 몸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한 건가?
진짜 사람이 아닌 걸까?’
몇 번이나 긴 숨을 토해내며 진정을 해보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그 새까맣고 커다란 눈빛이 계속 나를 흔든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은이가 우리 집에 왔다.
겨우 진정된 마음. 멍하니 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부르는 목소리.
“동영아~ 정동영~”
지은이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이 튕겨 나가 대문을 열었더니 노을의 빛을 받아 반짝이는 지은이가 서 있었다.
“지은아! 여긴 웬일이야?”
생각도 못한 지은이의 방문에 놀란 내가 묻자,
“오늘 우리 집에 왔었다며? 또 우리 언니가 너한테 차갑게 굴었을 것 같아서 사과하려고”
“사과는 무슨 그런 일 없었어... 일단 들어올래?” 하며 문 옆으로 비켜섰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냥 여기에서 얘기하자 한다.
“시간? 시간이 왜 없어? 설마 지금 가는 거야 언니랑? 집으로...?”
“응~ 다른 가족도 와있거든, 그래도 너에게 인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지은이의 말에 이미 알고는 있었던 일이었지만 스스로도 놀랄 만큼 큰 서운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랬구나... 그럼 집 근처가지 바래다줄게 같이 가자.”
나는 그대로 나와 지은이와 항상 걷던 해변길로 나섰다.
“저기 언니분 많이 좋아지신 것 같아서 다행이다”
“응, 고마워”
“그리고 휴대폰 같은 거 없어도 메일주소나 아니면 집 주소 같은 거 알려주면 연락할 수 있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너도 좋다고 하면 그냥 이대로 안녕하는 건 뭔가 아쉽고... 저기 그것도 내키지 않으면 내 휴대폰 번호 알려줄 테니까 나중에라도 전화해 줄 수... 있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는 얼굴의 열기를 느끼면서도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속의 외침으로 정리되지 못한 말들을 우물쭈물 꺼내놓자 지은이는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말했다.
“미안... 아마 연락하기는 어려울 거야”
단호한 대답.
“아, 그렇구나 그럼 할 수 없지”
지은이의 대답에 용광로처럼 달아오르던 얼굴의 열기가 순식간에 식어 내린다.
“동영이 네가 싫은 건 아니고... 진짜 연락할 방법이 없어서 그런 거야 진짜로”
역시나 알 수 없는 대답.
‘이 세상 맨 끝 오지마을에서 산다 해도 마음만 먹으면 연락할 수 있지 않나?’
하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말없이 걷다 보니 금방 해변의 끝에 도착했고 지은이가 나에게 뭔가를 내민다.
“자, 이거 받아 선물이야”
“선물?”
“응, 이별 선물”
해맑게 웃으며 주먹 쥔 손을 뻗는 지은이.
내가 말없이 손바닥을 펴자 그위로 살포시 주먹 쥔 손을 올리고 손가락을 편다. 그러자 내 손바닥 안에 투명한 소라 껍데기 한 개가 놓여 있었다.
“이런 건 처음 봐, 투명한 껍질을 가진 소라가 있나?”
마치 유리로 만든 것 같이 투명한 소라껍데기, 하지만 분명 유리는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다니던 거야, 내 행운의 부적이랄까?”
갑자기 받아 든 선물.
“어쩌지 나는 따로 준비한 게 없는데...” 내가 지은이를 바라보며 말하자
“괜찮아~ 동영이랑 도리 덕분에 짧지만 엄청 재밌는 시간 보냈고, 알게 된 것도 많아서
고마움에 주는 거야. 뭐 별거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요도 없고”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이 짧았다, 곧 떠난다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걸 준비하지 못한 내가 실망스러웠다.
“동영아, 그 소라 귓가에 가까이 가져가봐”
“응? 아, 이렇게 하면 바람소리 같은 게 들리지? 나도 어릴 때 해봤어”
그렇게 귀에 소라 껍데기를 가져다 대니 희미한 노랫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어? 뭐야 이거? 안에서 음악소리가 들려 무슨 장치가 있는 건가?”
내가 이상한 듯 물으며 좀 더 집중해 듣고 있자 희미했던 소리가 점점 선명하고 크게 들렸다. 정말 신비하고 아름다운 노랫소리.
“연락은 주고받지 못하지만 그 소라 안에서 계속 음악 소리가 들리면 나는 아주 잘 지낸다는 뜻이니까, 가끔 생각나면 들어주고 음악이 들려오면 나는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역시나 알 수 없는 지은이의 말에도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이제 진짜 가야 해 잘 지내 정동영 그동안 고마웠어”
밝게 인사하는 지은이.
“응, 너도 잘 가 나도 고마웠어”
그렇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엉클어지는 머리카락을 귓가에 꽂으며 웃는 지은이가 등을 돌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충동적으로 지은이의 팔을 잡았다.
내 돌발 행동에 살짝 놀란 지은이와 엄청나게 놀란 나.
나는 크네 당황해서 “아니, 그냥 잘... 잘 가라고 안녕이라고”
횡설수절 어찌할 줄 모르는 나를 빤히 쳐다보는 지은이는 나에게 성큼 다가와 아주 짧게 입을 맞춰준다.
폭신하고 따뜻한 지은이의 부드러운 입술이 내 입술 위로 포개지자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깔깔깔~ 정동영 너 엄청 숙맥이구나~ 자 이제 됐지? 그럼 진짜 안녕~”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흔들며 뛰어간 지은이.
나는 지은이가 완전히 사라지고 해가 떨어져 깜깜해질 때까지 그대로 굳은 채 서 있었다.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도 머릿속이 새 하얗다. 저녁밥도 샤워도 거른 채 침대에 엎어져 몇 번이고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순간을 되돌려본다.
‘내 첫 키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나 벌떡 일어섰다.
지은이의 말 ‘자, 이제 됐지? 도대체 그 말 뜻은 뭘까? 뭐가 됐다는 거지? 설마 지은이가 나를 계속 자기랑 키스하는 상상을 했던 변태 같은 걸로 오해하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으아아악~”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미 모두 지나간 일이고 이제는 어떤 변명이나 해명을 할 수도 없었다.
“아, 망했어 망했다고~”
그렇게 그날밤 혼자 이불킥을 수없이 날리며 길고 긴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지은이가 떠난 후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축 쳐진 채 하루하루를 지루하게 보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방학, 나도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해야 하지만 왠지 지금이라도 나가면 지은이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쉽게 마음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해변가에 나가 혹시나 하고 기다려보기도 했고, 그냥 지나가는 척 지은이의 언니네 집도 슬쩍 들여다봤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는 빈집이었다.
‘내가 지은이를 좋아했구나...’
맥이 풀린 나를 보는 이모가 어디 아프냐며 물어봤지만 나는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냥 더위를 먹은 것 같다는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모에게는 그냥 근처에 사는 친구가 생겨서 매일 같이 논다고 말했기에 지은이가 빨간 지붕집에 산다거나 예쁜 얼굴의 여자애라는 건 모른다.
뭐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지만, 알고 있었다 해도 이모 성격에는 그냥 모른척했겠지만.
그리고 이제 정말 서울로 가야 한다.
넌지시 이모에게 이곳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을 오면 안 되냐고 물어봤지만 역시나 반대를 했다. 고2에 갑자기 이 촌구석으로 무슨 전학을 오냐며, 어떤 이유든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가든 유학을 가든 하라고 했다.
이모도 이리 반대한다면 방법은 없다. 나 혼자 엄마를 설득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니까.
이틀 후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짐을 싼다. 사실 짐이랄 것도 없지만.
진짜 가기 싫다.
엄마와 같이 사는 것도 싫지만 이제 떠나고 없는 지은이가 있던 이곳을 벗어나기가 싫었다.
답답한 마음.
그런데 그날 오후 이 작은 마을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일어난다.
경찰차들과 구급차가 마을로 들어섰고 얼마 안 가 경찰들과 형사들이 이 집 저 집을 돌며
탐문수사를 시작했다.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바닷가가 가까이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관광객도 적어 1년 내내 조용한 이 동네는 순식간에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모 무슨 일이야?”
동네 상황을 살피러 나갔던 이모가 돌아오자마자, 이모는 나에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동영아 그 빨간 지붕집 말이야”
‘빨간 지붕!?’
순간 지은이와 지은이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모의 말은 그 자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집에서 시체가 발견됐데”
“시체? 무슨 시체?”
“오래된 미라같이 바싹 말라죽은 남자 시체, 그런데 그 남자 그 집에 살던 사람 바람나서
부인도 버리고 내연녀를 따라 이곳을 떠난 그 사람 같다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바싹 마른 시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죽은 나뭇가지처럼 말랐다 금방 정상인 몸으로 돌아온 지은이 언니의 모습이 떠 오른 것이다.
그리고 그날 밤 한 명의 경찰과 형사가 우리 집을 찾아왔다.
누군가가 빨간 지붕집을 드나들던 지은이와 내가 같이 있는 모습과 그 집을 기웃거리던 것도 봤던 것이다.
나를 찾아온 형사는 간단하게 이런저런 몇 가지를 물어보고는 같이 파출소까지 가서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줄 것을 요구했다.
순간 당황했고 겁이 났지만 나는 알았다며 경찰차를 타고 파출소로 향했다.
물론 미성년자이기에 이모와 함께 말이다.
그렇게 파출소에서 형사가 묻는 말들에 대해 솔직하게 있었던 그대로 말을 했다.
괜한 거짓말이나 모르는 척하는 방법들이 나에게 좋을 리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멍청하지도 않았고 범인이 누구든지, 진짜 지은이와 그 언니가 관계되어 있다 해도 둘은 이미 멀리 떠난 후였으니 숨길 필요도 없었다.
길고 긴 참조인 조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부터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모는 나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저 “동영아 괜찮아?” 하고 물었을 뿐.
나는 응. 괜찮아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했지만 마음처럼 쉽게 대답할 수 없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슬픔이 뒤섞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이모는 자기보다 훨씬 큰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엄마 잃은 네 살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조카를 꼭 안아주며 조심스럽게 “괜찮아 괜찮아” 하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아... 이런 사람이 우리 엄마였으면 좋았을 텐데...’
결국 서울로 돌아가려던 일정은 늘어져서 개학을 하루 앞두고서야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사이 나는 몇 번의 반복되는 참조인 조사에 불려 갔고, 동네 사람들 모두를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지만, 이렇다 할 자매의 행방도 범인이라는 증거나 뚜렷한 살해방법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죽은 남자는 시체가 발견되기 며칠 전에도 부산 어느 거리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재혼한 부인과 함께 활보하고 있던 모습이 cctv와 주위 사람들의 증언으로 확인했고 특별한 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고 한다.
사라지기 전날 남자와 크게 다툰 후 친정으로 돌아가서 남자가 용서를 구하러 올 때까지 기다렸다는 여자는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더욱더 화가 나 있었으며, 경찰이 찾아올 때까지 남자의 행방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남자의 사인은 체내에 있는 모든 수분증발.
마치 순간적인 어떤 힘으로 남자의 수분을 한꺼번에 빨아들인 것처럼 남자의 몸 어디에도 말라비틀어지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상식 선에서는 며칠 전까지 멀쩡했던 사람의 몸이 이 이렇게 바싹 마를 수는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완치되었다던 절던 한쪽 다리뼈도 뒤틀려 있었다고도 들었다.
지금도 그 마을은 뒤숭숭하고 뒤늦게 기묘한 사건을 들은 방송사와 유튜버까지 몰려들어 마을이 시끄럽다.
나는 이륙한 비행기 안에서 눈을 감고 지은이가 준 투명한 소라껍데기를 귀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지은이의 안녕을 확인하고 미소를 짓는다.
두 번 다시 지은이가 이 바다로는 오지 않을 것임을 알아챈 나는 더 이상 이곳에 미련이 없다.
그저 빨리 시간이 흐르길 기도할 뿐.
눈 깜짝할 사이에 세월이 지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와 아빠가 있는 칠레로 떠나길 바라고 바란다.
커다란 바다를 두고 있는 나라 칠레, 그 해변가에 서서 기다리다 보면 왠지 지은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지은이가 했던 모든 이야기를 나는 이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