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4
원래도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더 빨리 일어나서 옷들을 침대에 펼쳐놓고 고민하고 있다.
"옷을 더 가져올 걸 그랬나, 옷들이 다 왜 이래?"
데이트도 아닌데 나는 이 옷 저 옷 걸쳐보며 거울 앞을 서성인다.
무더운 여름에 멋을 내봤자 티셔츠에 반바지정도일 테고 평소 옷에 관심도 없어 거의 다 비슷한 색과 디자인의 옷들이 전부라 사실 고민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결국 그나마 제일 나아 보이는 흰색티셔츠에 카키색 반바지를 입고 야구모자를 썼다 벗다를 무한 반복하다 결국 벗고 도리와 함께 해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괜한 두근거림.
"멍멍~ "
도리가 나보다 먼저 지은이를 알아보고 반가움에 짖자 바다를 바라보던 지은이 도리와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도리야~~ 동영아 안녕~~"
"어, 안녕 이... 일찍 나왔네?"
"응, 잠이 별로 없거든"
지은이는 나보다 도리를 더 반기며 어제 가져왔던 반려견용 소시지와 육포까지 꺼내 보이며,
"이거 줘도 되는 거지?" 하며 물었다
"응, 둘 다 도리가 자주 먹는 간식이야"
“정말? 다행이다”
웃으며 도리에게 소시지와 육포를 먹이는 지은이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의 미소가 피어난다.
도리에게 간식을 모두 먹이고 우리 셋은 해변가를 따나 걸었다.
“너 서울에 산다고 했지? TV에서만 봤는데 여기랑 많이 달라?”
나는 예상에서 한참 빗나간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어? 그렇지 많이 다르긴 하지, 여긴 제주도에서도 많이 시골이니까... 그래도 공항 주변이나 서귀포시 같은 곳은 도시니까... 음 비슷한 거 같은데?”
“그래? 그렇구나, 사실 나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언니가 아파서 오래 곁을 비울 수가 없어서 이곳 외에는 기본곳이 없거든”
“언니가 많이 아파? 그럼 부모님이랑 같이 병간호하는 거야?”
“아니 지금은 나랑 언니 둘 뿐이야”
“아... 미안 많이 힘들겠다”
“응 그런데 곧 집으로 돌아가, 그럼 금방 괜찮아질 거야”
“집? 집이 어딘데?”
지은이는 내 질문에 말없이 웃다 팔을 뻗어 바다를 가리켰다.
‘이상한 애’
샤워를 하고 침대에 널브러져 에어컨 리모컨으로 온도를 조절하면서도 지은이를 생각했다.
‘집이 외국에 있나? 근데 공항에 가본 적 없다고 했는데 비행기 말고 배로도 외국에서 들어올 수 있는 건가?’
나는 검색을 해보려고 휴대폰을 집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였다.
전화기 액정에 엄마라는 글자를 쳐다보다 그대로 벨이 꺼질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거실에서 이모의 통화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이모가 얼굴을 내민다.
“야, 너 또 엄마 전화 안 받았지? 대충 잔다고 둘러 됐는데 내일은 전화받아라 계속 그렇게 무시하면 네 엄마 성격에 여기까지 쳐들어와 너뿐만 아니라 나까지 앉혀놓고 폭풍 잔소리 할게 뻔하니까 알았지?”
이모의 말에도 나는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닫는 이모.
나는 싫다 엄마 목소리가.
그래도 내일 다시 전화가 오면 받기로 마음먹었다.
진짜 이모말처럼 여기로 엄마가 오면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와 보고 싶지 않은 얼굴까지 봐야 하니까.
“너 진짜 빠르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했고 1년 전 이맘때 일어난 교통사고로 더 이상 국가대표를 바라볼 수 없어 그만둘 때까지 나는 수영선수였다.
그런데 내가 저 작은 지은이와 수영에서 지다니 그것도 실내 수영장이 아닌 바다 수영에서... 믿을 수 없다.
“깔깔깔~ 내가 이길 거라 했잖아~ 바다는 내 집이라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와는 다르게 지은이는 숨 한번 헐떡이지도 않고 바닷물에 젖은 티셔츠를 꾹 짜내며 지친 나를 보며 웃는다.
“너 수영선수야?”
“선수? 그게 뭔데?”
“뭐? 선수~ 어릴 때부터 특정 종목을 배우는 사람. 난 6살부터 수영했고 1년 전까지 수영선수였거든 교통사고로 그만뒀지만...”
“그런 게 있구나? 신기하네... 난 선수 아니야, 수영은 그냥 태어날 때부터 했고 죽을 때까지 하는 거라... 따로 배울 필요도 없는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뻥인지 알 수가 없다.
지은이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치 세상밖에서 온 사람처럼 엉뚱하고 이상한 점이 많았다.
한두 번도 아니고, 사실 크게 신경 쓰일만한 것도 아니라 그냥 넘어갔지만 오늘은 왠지 수긍이 어렵다.
운동을 그만두기 전까지 전국 체전에서 나를 이길 같은 학년의 상대선수는 많지 않았고 그만둔 지금도 선수시절 기량보다 못하다 해도 일반일을, 그것도 여자애한테 수영을 지다니 참담했다.
“저기 얼굴이 왜 그래? 어디 아파?”
표정관리 안 되는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지은이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물었다.
순간 느껴지는 지은이의 숨결에 나도 모르게 뒤로 크게 물러서며 당황해 소리친다.
“아, 아프긴 하나도 안 아파 그냥 잠깐... 생각한 거야”
“그래? 그럼 다행히” 그때, “지은아... 누구니?”
우리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와 지은이를 부른다.
“언니~ 왜 나왔어? 아직 돌아다니기에는 무리야”
지은이가 우리 옆으로 온 여자를 부축하며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응, 잠깐 바다냄새 맡으려고 나왔어”
지은이의 언니라는 사람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본다, 경계심 가득한 두 눈으로.
“아~ 언니 얘는 내가 말한 친구야 도리랑 같이 만났다는 얘 동영이야 정동영, 동영아 우리 언니야~”
지은이가 언제나 그렇듯 해맑게 웃으며 나와 언니를 인사를 시킨다.
“아, 안녕하세요 정동영이라고 합니다”
내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지만 지은이의 언니는 말없이 바라볼 뿐 어떤 대꾸도 없었다.
그렇게 몇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 사람은 그냥 그렇게 나를 무시하고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는데 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렸다.
뻘쭘하게 서있는 나에게 지은이가 다가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동영아 미안해 우리 언니가 많이 아파서... 나 이만 가볼게 내일 볼 수 있으면 보자” 하며
앞서가는 언니에게 뛰어간다.
그리고 뒤늦게 내 팔에 소름이 돋았다.
지은이의 언니라는 사람은 미라같이 바싹 마른 검은 얼굴에 이상할 정도로 큰 눈이 마치 구멍이 뻥 뚫려있는 것 같이 보여 하마터면 악! 하고 소리를 지를뻔했다.
얼굴과 마찬가지로 몸도 흉 할 정도로 말라서 마치 죽은 나뭇가지처럼 보여 움직이는 게 신기할 정도다.
‘진짜 많이 아픈가 보네...’
그리고 다음날은 지은이를 만나지 못했다.
늘 만나던 곳에 먼저 나와있거나 보이지 않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타났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오후 네시까지 기다렸지만 만날 수 없었고 더 이상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배가 고파서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건가? 아니면 병원에 입원을 했다거나...’
궁금하면 바로 전화하거나 톡이라도 해보면 좋겠지만 지은이는 휴대폰이 없다고 했다.
동갑인걸 알고 말도 놓은 다음날 먼저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물어봤지만 자기는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다면서 내 휴대폰을 이리 저기 만져보고 사용법을 물어가며 엄청 신기해했었다.
‘외국의 어느 완전 오지 마을 같은 곳에서 살았나?’
가끔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에 나오는 부족같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지은이를 처음 만난 이후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 만난 적이 없었구나...
집에 오자마자 허기짐에 냉장고를 연다. 이모가 만들어놓은 샌드위치가 있어 식탁에 앉아
콜라와 함께 먹고 있으니 도리와 동물병원에서 돌아온 이모가 집안으로 들어왔다.
“동영이 왔니?”
“어~ 이모, 도리 귓병은 이제 괜찮데?”
“응, 많이 좋아져서 당분간 약만 잘 먹이면 될 것 같다고 하더라~”
“다행이네”
동물병원을 다녀와 지친 도리는 이모가 준 시원한 물을 한껏 마신 후 자기 방석 위에 몸을 뉘이고 이모는 냉장고에 가득 차있는 맥주를 하나 꺼내 벌컥벌컥 반캔 이상을 원샷으로 마신 후 “크아아~~ 이제 좀 살 것 같네” 하고 탄성을 내지른다.
“이모, 제발 그 아저씨 같은 말 좀 안 하면 안 돼?”
맞은편에 앉은 내가 인상을 쓰며 말하자 이모는 킥킥 거리며 “야~ 인마, 아저씨나 아줌마나 거기서 거긴데, 아줌마가 아저씨처럼 말하는 거랑 아저씨가 아줌마처럼 말하는 거랑 뭐가 그리 다르다고 그러냐? 너야말로 남자가 여자애처럼 깔끔 떨면서 예민하게 굴면 넌 평생 솔로로 살아야 할 거다~”
이모는 장난반 진담반 섞인 진지한 얼굴로 말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빈 접시와 컵을 들고 일어서며 싱크대를 향해 가다 그대로 돌아서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 혹시 해변 끝자락에 있는 집 알아? 빨간색 지붕집인데, 거기 사는 사람 알아?”
“해변 끝 빨간 지붕? 글쎄... 나도 이사 온 지 꾀 되었고 주위에 인가가 많지는 않지만 주로 봄과 여름 에만 여기에 있고 가을과 겨울은 서울에 있으니까 동네 사정은 잘 몰라”
시나리오 작가인 이모는 5년 전부터 제주에서 1년 중 반년정도를 보내기 시작했다.
본인이 글이 잘 써지는 봄과 여름에 완전한 몰입을 위해 제주에서도 촌구석에 속하는 작은 마을이면서 바다가 가까이 있는 곳을 찾고 찾아온 곳이 이곳이고 현재까지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덕분에 나도 서울에 있는 엄마의 집에서 도망칠 수 있는 피난처로 사용 중이고 말이다.
“그렇구나...”
개수대에 접시와 컵을 내려놓고 내 방으로 가려는데 이모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그 집인가? 내가 이사 오고 얼마 안지나 동네잔치가 있었어. 여기 살던 다리가 좀 불편한 남자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엄청 예쁘게 생긴 여자랑 결혼했거든. 대부분 노인들 뿐이고 이렇다 할 큰일이 없는 촌 동네에서 젊은 부부 탄생이라고 마을에서 잔치를 열었지”
“엄청 예쁜 여자?”
“응, 세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좀 이국적인 느낌에 굉장한 미인이었어, 그런데 외국에서 왔나 말이나 행동이 살짝 이상하 더러고”
“이상해? 뭐가 어떻게?”
“그냥... 지능에 문제라기보다 어디 문명이 닿지 않는 섬에서 살다왔는지,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개나 고양이도 엄청 신기해하더라고? 여하튼 좀 묘하고 이상했는데 착하고 순진한 아가씨였어”
이모말을 듣자마자 지은이의 언니라고 확신했다. 예쁜 건 잘 모르겠지만 지은이를 보고 내가 느낀 것들과 이모가 느낀 것이 같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금도 여기 사는 거지?”
나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마른 지은이의 언니 모습을 떠 올리며 물었다.
“아닐걸?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작년쯤인가, 남자가 바람나서 집을 나갔나 했을 거야?”
“부인이 엄청 예쁘다며 웬 바람?”
나는 방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식탁에 앉아 두 번째 맥주캔을 따는 이모 앞에 앉으며 물었다.
“바람이란 게 배우자 얼굴이 잘났다고 안 나고 나는 게 아니란다~ 뭐,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관광객으로 온 여자랑 눈이 맞아서 부인 몰래 연락하고 만나다 어느 날 갑자기 짐 싸들고 집을 나갔다나 봐. 그리고 그 남자 다리가 불편했다고 했잖아? 그런데 무슨 기적이 일어났는지 절던 다리가 나았다 하더라고”
“그럼 그 부인은?”
아침 막장 드라마 같은 내용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쭉 빼고 묻자,
“흠... 글쎄? 대충 주워듣기로는 여자도 남자가 집을 나간 후 얼마 안 가 사라졌다는 것 같았어. 남편 찾으러 뒤를 쫓아갔다는둥, 원래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거라는 둥... 그리고 들리는 말로는 바람피운 걸 들킨 후에는 아주 막 나갔나 봐 부인한테 손지검까지 했나 보더라고 뭐, 많은 소문들 중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날밤 나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들고 몸이 마르고 검게 변하는 병으로 검색을 해본다.
딱히 나오는 병명이 없다.
만약 진짜로 이모가 해준 이야기의 주인공이 지은이의 언니가 맞다면, 바람피운 남편이 자기를 학대해 충격을 받고 우울증 같은 게 걸려서 밥도 안 먹고 스스로를 방치하다 몸이 그렇게 된 것일까? 그래서 집으로 데려가려고 지은이가 온 거고? 아직 학생이지만 18살이면 뭐 어른이랑 마찬가지니까...
그래도 지은이네 가족은 끝까지 식구를 버리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우리 엄마 같았으면 동에 창피하다거나
멍청하게 남자하나 못 골라 그 꼴이 됐냐며, 죽든 살든 네가 알아서 하라면서 등을 돌렸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