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5
그 아이는 처음 볼 때부터 그 구멍 속에 있었다.
그 구멍은 성인남녀 두세 명이 앉아 있을 만한 크기와 얕은 깊이의 검은색 구덩이였고 낯선 아이 하나가 고개를 두 무릎 사이에 처박고 앉아 있었다.
내가 처음 그 구멍과 그 아이를 발견할 때도 그 모습이었고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도 같은 모습이다.
그 구멍을 곁을 지나치는 다른 사람들은 마치 그 구멍과 아이가 없는 것처럼 못 본척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하네...’라고 잠시 생각했었지만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관심을 두기에는 여러 일들로 너무 바빴고, 괜한 참견으로 원치 않는 일에 말려들지도 몰랐기 때문에, 잠시 잠깐 눈길이 갔지만 나 역시 못 본 척 무시했다.
하지만 오늘, 여느 때와 같이 지친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 한 개와 1+1 행사 중인 핫바 2개, 그리고 내 인생의 단물 같은 시원한 맥주 2캔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 갑자기 무슨 생각이었는지 핫바 한 개를 들고 그 구멍 속 아이에게 다가갔다.
역시나 고개를 처박고 있는 아이를 잠시 내려보다가 말을 건다.
“저기 이거 먹을래?”
그러나 미동도 없는 아이, ‘괜한 짓을 한 건가?’ 하고 뒤돌아 서려할 때,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으악! 저게 뭐야?!’
나는 생각지 못한 아이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치며 전속력으로 집으로 달려 들어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바닥에 주저앉아 버린다.
고개를 든 그 아이 얼굴에는 코와 입만 있었고 눈이 없었다.
세상에나 차라리 눈과 코, 혹은 눈과 입, 그게 아니면 눈만 있는 게 차라리 나았을 텐데...
눈 없이 코와 입만 있던 얼굴은 너무 충격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부러 그 구멍 속 아이를 피해 길을 돌아서 다녔다.
눈 없는 얼굴의 모습은 너무나 끔찍했고,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웬일인지 늦잠을 자버린 아침, 지각을 하지 않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가다 보니 구멍 속 그 아이가 있는 길로 달리고 있었다.
눈앞에 구멍이 보이자 애써 고개를 돌려 못 본척하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흘깃하고 그쪽을 바라보다 발견한 빈 핫바 봉지.
‘먹었구나!’
순간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확 하고 온몸에 퍼졌다.
간신히 회사 근처까지 가는 버스에 올라타 안도의 숨을 내쉼과 동시에 구멍 속 그 아이에게 다른 무언가를 더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계속 아이 옆에 있던 빈 핫바 봉지가 생각났다.
그 빈 봉지를 생각하니, 왠지 그 눈 없는 아이의 얼굴의 공포감이 옅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퇴근길, 여느 때와 같이 편의점에 들러 도시락과 캔맥주를 고르고 아이에게 줄 만한 무언가를 고르기 시작한다.
바나나우유? 샌드위치? 요즘 유행하는 디저트 등을 바라보다, 초콜릿우유를 집어 들었다.
잠시 얹혀살던 고모 집의 어린 아들이 입에 달고 살았던 초코우유, 옛날이나 지금이나 단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그때의 그 초콜릿우유만큼은 탐이 났었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니었기에 한 번도 맛보지 못했고, 좀 더 자라 내 돈을 주고 사 먹던 초콜릿우유의 맛은 너무 달아 미간을 찌푸리게 했던 그 초콜릿우유를 나는 왜 지금 사고 싶은 것일까?
사부작사부작 소리를 내는 비닐봉지를 흔들며 걷다 보니, 어느새 그 구멍 속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멈춰 서서 초콜릿우유의 입구를 열어 빨대를 꽂고, 크게 숨을 한번 쉬었다 아이에게 다가간다.
“저기 초코우유 좋아하니? 이거 마셔”
조심스럽게 구멍 가까이 밀어주고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집 쪽으로 빠른 걸음을 걸으면서도 슬쩍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아이가 손을 뻗어 초콜릿우유를 가져가는 모습이 보였고, 순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
그 후로 자주 그 아이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요즘 크게 유행하여 구하기 진짜 어렵다는 말이 돌고 있는 과자를 밀어주면서,
“야, 이거 진짜 어렵게 손에 넣은 거야, 과자봉지 상표 안 보이게 뒤돌려서 먹어라, 누가 보면 냉큼 채갈지도 모르니까~”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졌는데 아이의 입가에 순간적인 희미한 미소가 스쳤고, 그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나에게 남아있었던 아이에 대한 공포감과 이질감 등이 스르륵 하고 벗겨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이는 6살? 7살 정도인 것 같은데 깡마르고 창백하리 만치 하얀 피부 위에 덥수룩한 모양새로 아무렇게 자라 있는 머리카락이 비워져 있는 두 눈의 자리를 덥고 있었으며, 작고 마른 손을 움직여 과자를 입으로 가져가는 모습은 슬로모션 처리된 동영상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느렸다.
슬쩍 구멍 안을 들여다보니, 아이는 윗옷뿐만 아니라 팬티 한 장 걸치지 않은 알몸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누운 그날 밤, 혹시 아이가 그 구멍 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이유일까?
옷을 사다 줄까? 아이의 옷이나 신발은 어디서 사야 하는 거지?
그런데 나는 왜 그 아이에게 관심을 두고 있는 거지? 하는 여러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새벽까지 붙잡고 늘어지다 잠이 들었고, 꿈에서 어린 내가 그 아이처럼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게 보였다.
“아가~ 아가, 집에 있냐?”
감나무집 할머니는 나를 이름이 아닌 아가라고 부르셨다. 할머니 목소리에 얼른 어두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아부지는?"
경계 가득한 물음.
나는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어서 밥 먹자, 느그 아부지 오기 전에”
할머니는 마루 한쪽에 앉자마자 나를 바짝 붙여 앉히고는 싸 온 보따리를 푼다.
흰밥과 고추 장아찌, 김치, 두부 부침을 보자마자 입안에 침이 고인다.
“얼른얼른 먹어, 느그 아부지 오기 전에”
할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급하게 밥숟가락을 뜨는 내 모습과 반쯤 열린 대문을 쉬지 않고 번갈아 본다.
눈 깜짝할 새에 밥과 반찬을 비운 나에게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게 하는 것까지 완수하시곤 풀었던 보따리를 다시 묶고 나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는다.
"느그 아부지가 또 지랄하면 뒷산으로 도망치라, 죄다 맞고 있지 말고, 응? 알았제?”
할머니의 걱정과 안타까움이 섞여있는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할머니가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걸 멀뚱히 바라본다, 여느 때처럼 감나무집 할머니가 내 진짜 할머니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그때, 저벅저벅 들려오는 공포의 소리, 분노와 울분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찍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 남자가 마루에 나와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본다.
‘괜찮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배고플 때맞은 것보단 덜 아플 거니까 지금은 괜찮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늦게 잠든 탓인지 졸린 기운을 떨치기가 쉽지 않고 몸이 무겁다.
‘감기가 오려나?’
두 눈에 미열이 느껴지고 목구멍이 간질 한 것이 근무하는 내내 신경이 쓰인다.
이날은 퇴근길의 편의점도 구멍 속 아이도 그냥 지나쳐 바로 집으로 향했다.
이미 몸은 천근만근이고 대충 손과 발을 씻고 세수를 하는 중에도 뜨거운 숨이 코와 입안 가득 느껴졌다.
몸 전체에 퍼진 뜨거운 열이 빨리 식기를 바라며 종합 감기약을 먹고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두 눈을 꼭 감고 잠을 청한다.
그날 밤,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거리며 누워있는 내 발끝에 누군가가 서 있다.
‘저건 뭐지? 사람? 귀신? 내가 가위에 눌리는 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 형상의 그림자가 천천히 내 얼굴 쪽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가슴께까지 다가왔을 무렵 알았다.
구멍 속 아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