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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속 아이 1-2

단편소설 5

by 김연주


천천히 아주 느린 속도로 그 아이가 손을 뻗는다.


그리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차디찬 손으로 내 이마를 짚어본다.


순간적으로 온몸에 퍼져있던 열이 얼음장 같은 그 아이손으로 흡수가 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뜬 두 눈에 비친 그 아이는 희미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열은 다행히 내렸지만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자 시야가 희려 지면서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오늘은 목요일, 아직 주말까지 이틀이나 더 남았다. 입사 후 4년 동안 단 한 번의 지각이나 결근을 한적 없었는데, 오늘 톡으로 상사에게 병가를 신청했다.


내 성격으로는 절대 하지 않았을 일이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을 만큼 모든 게 귀찮았다.


냉장고에 먹을만한 게 있었지만, 물만 겨우 마시고는 다시 이불속으로 디어 들어와 몸을 웅크린다.

그러다 문뜩 그 아이가 생각났다.


‘꿈이겠지?’ 당연한걸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 아이가 내 집을 어떻게 알 것이며, 설령 집을 알고 있다 해도 단단히 걸어 잠금 문을 무슨 수로 열고 들어 왔겠는가?


하지만, 꿈이라기에는 내 이마를 짚던 그 아이의 손의 느낌이 너무 선명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그 아이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고는 비틀 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운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을 때 마마 식은땀이 이마 위로 흐른다.


‘이거 어디 크게 아픈 거 아니야?’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게 먼저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아이가 앉아있는 구멍이 있는 곳으로 가보았지만, 구멍은 텅 비워져 있었고 아이는 없었다.


잠시 주위를 돌아봤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찾으러 다녔겠지마, 지금은 너무 몸이 좋지 않아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외출은 무리였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


두 눈을 감고 있자니 어제 밤일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 아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


두 눈이 없는 그 얼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어릴 때 엄마를 닮아 굵고 선명한 쌍꺼풀눈을 한 내 얼굴이 보기 싫다며 매일 두들겨 패던 아빠 때문에 항상 눈이 보이지 않게 덥수룩한 머리칼로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 아이가 어린 시절 내 모습이었다는 것을.



얼마 전 살인죄로 복역 중인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소식을 듣자마자 든 생각은 심장마비로 갑자기 죽었다는 말에 뭔지 모를 억울함이 들었다.


평생을 살았던 방법처럼 누군가에게 심한 폭행으로 두들겨 맞고 고통 속에 죽기를 발고 바랬는데 어이없게 심장마비라니... 형기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시신양도 거부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태어나 처음으로 교회를 찾아가 하나님이라 불리는 신께 물었다. 정말 당신이 있는 것이냐?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고, 내 아버지를 반듯이 지옥으로 떨어뜨려 남은 죗값을 치르게 해달라고 온 마음을 다해 기도했었다.


그리고 몇 주 후 어떻게 내 번호를 알았는지 몇 년 만에 고모로부터 전화가 왔다. 자신도 내 아버지 이자, 자기 남동생의 소식을 들었다면서 말이다.


나는 혹시나 내가 시신양도 거부를 한 것에 좋지 않은 감정을 비치려 하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고모 역시 시신양도를 거부했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하지 도 못했던 말을 한다.


엄마가 있었다는 지역과 일했던 곳의 상호 그리고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너무 오래전이라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을 수도, 전화번호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며, 좀 더 일찍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혹시나 나를 통해 엄마의 존재까지 동생이 알게 될까 걱정되었다면서, 자기도 나만큼 동생이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이제 죽고 없는 사람이니 지금이라도 마음 놓고 알려주게 된 게 다행이면 다행이다는 말을 했다.


나는 아무 말없이 고모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고모는 전화를 끊기 전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아니라고,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아버지는 내가 13살 되던 해 지인과 다툼을 벌이다 살인을 저질렀다.


자신과 싸우던 사람을 둔기로 때려죽이고 이를 말리던 사람까지 영구장애를 갖게 할 정도의 치명상을 입혀 28년을 선고받고 구속되었다.


남편의 폭언과 폭행을 참지 못하고 집 나간 엄마는 행방은 묘연했고 나는 그때부터 고모집에서 살게 되었다.

고모는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나를 품어줄 만큼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필요한 만큼의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제공해 줄 뿐 그 어떤 관심도 없이 투명인간 취급했지만 나로서는 큰 불만이 없었다.


무엇보다 매일 밥 먹듯 당했던 아버지의 폭행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만으로도 나는 만족했기 때문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고모집에서 다녔고 고2 때 겨울, 빠른 취업으로 집을 나와 회사 숙소로 떠날 때도 고모는 이렇다 할 한마디 말도 없었고 나 역시 무덤덤한 마음으로 그 집을 떠났다.

그 집에 살면서 서운하고, 슬프고 외로운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나는 고모에게 미움보다는 고마움이 조금 더 있다. 적어도 나를 고아원으로 보내거나, 길에 버리거나, 학대하지는 않았으니까. 사람을 죽인 자기 동생의 아들 또한 무섭고 싫었을 텐데 꾹 참고 버텨내 준 것도 고마웠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죽은 듯 잠을 자다 눈을 든다, 새벽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 화장실로 간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한결 몸상태와 기분이 좋아진다.


냄비에 물을 받아 라면 두 개를 넣고 냉장고를 열어 계란 세 개를 꺼내 끓어오르는 라면 위로 깨뜨려 넣는다.


젓가락으로 휘휘 두어 번 젓고는 김치통을 꺼내 열어 놓고 불에서 막 내린 라면을 후후 불어 집어삼킨다.


게눈 감추듯 냄비를 비우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정리를 했다. 앓아누웠던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고는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며 흐트러지고 어질러진 것들을 가지런하게 정리 정돈했다. 세탁을 끝낸 알림을 듣자마자 건조대에 넓게 이불을 펼쳐 올리고 곧바로 외출준비를 한다.


현재시간 오전 7시 20분 가장 가까운 시외버스 터미널에 한 시간 뒤 전남 순천으로 가는 버스 시간을 확인했다.


그렇다 오늘 나는 고모가 알려준 정보를 가지고 엄마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미리 일했다는 곳을 찾아 전화해 보지 않고 무작정 가보기로 한 것이다.


만약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번호 또한 바뀐 지 오래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무작정 가보고 싶은 이 마음을 따라 실행해 보기로 했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며 그 아이가 있던 곳에 가본다. 역시나 아이도 없고 구멍 또한 사라졌다.


나는 슬쩍 미소를 짓고는 걸음을 돌려 택시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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