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것 먼저 살펴보기
상실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의미 있게 여겼던 어떤 것들의 자원이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떤 것에 대해 우리가 상실감을 느낄 때에는 먼저 감정적으로 중요하다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 그것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거나 사라져 버렸다는 확신이 들어야 한다.
내게 소중하고 의미 있던 것들, 자신이 마음을 다해 투자한 감정과 에너지의 대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이 상실이라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상실의 범위는 상당히 넓어질 수 있다.
물론 인간에게 가장 큰 상실은 뭐니 뭐니 해도 누군가의 죽음일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 깊고 거대한 상실의 흔적을 남긴다.
죽음은 육체적 상실과 정신적 상실을 모두 가장 극한의 상태로 경험하게 한다. 때문에 생명체에게 있어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죽음 앞에서 이견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가장 극명한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음처럼 꼭 절대적이고 극단적인 단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 속에서 꽤나 많은 상실을 경험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몸의 한 부분을 잃을 수도 있고 병을 얻어 특정 기능을 상실할 수도 있다. 직업을 잃을 수도 있고 동료를 잃을 수도 있으며 우정을 잃을 수도 있다. 이혼으로 가족을 잃거나 갈등으로 관계를 잃을 수 있다. 재산을 잃거나 명예를 잃거나 소중한 유품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상실을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생각보다 꽤 넓은 영역에서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상실을 말할 때 우리는 생활 사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과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다양한 문화적, 기질적, 맥락적 측면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사회라 할지라도 결국 사람들은 모두 유니크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느끼는 복잡하고도 유니크한 관점을 존중할 수 있는 감각을 발전시키지 못한다면 누군가의 상실을 이해하기란 참 요원할 일이 될 것이다.
반려 동물을 죽음으로 상실한 경우 어떤 사람은 가족의 일원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느끼며 오랜 시간 동안 애도 과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현상을 너무 별스럽다고 느끼며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누군가의 상실을 대면할 때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개별적으로 또 유니크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점은, 상실을 말할 때 우리는 이미 있었던 것을 잃은 것만을 생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흔히 있었던 것이 없어지거나 연결되었던 것이 단절될 때 우리는 상실감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실은 이미 있었던 것을 잃어버릴 때도 느낄 수 있지만, 앞으로 영영 얻을 수 없을 때에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를 너무나 간절히 가지고 싶었던 부부에게 불임 판정이 내려진 것처럼,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지만 영영 가질 수 없게 되는 것 또한 엄청난 상실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상실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있었던 무엇을 상실할 때' 뿐만 아니라 '결코 될 수 없는 것을 상실할 때'를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상실은 분명 우리를 괴롭고 힘들게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정적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는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 상실 또한 얼마든지 득과 실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상실을 극복하는 길은 바로 그 상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극히 개별적이고 유니크한 득과 실을 모두 찾아내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통합하는 것이다.
이제 누군가의 상실에 대해 생각해 보기 전에 먼저 나의 상실에 대해 잠시 떠올려보자.
그리고 상실을 말할 때 우리가 생각하면 좋은 것들을 견지하면서 다시 정리해 보자.
나는 어떤 것들을 상실했는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떤 득과 실이 나를 채웠으며,
지금의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