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위의 비둘기

by 쓱쓱

하늘의 집을 등지고

땅과 사랑에 빠진 비둘기는


땅의 달콤한 것들에 취해

스스로 날개를 접었다


널려있는 유혹을 삼키는 사이

흔쾌히 접었던 날개는


촛농처럼 굳어져

한없이 게을러졌다


탐욕이 뿜어낸 토사물 위를

천국인 마냥 황홀히 거닐 때


날개는 몸통의 일부가 되어

서서히 녹아내렸다


본능의 달콤함이 눈을 멀게 하고

유혹의 짜릿함이 정신을 흐릴 때


천둥 같은 바퀴가 온몸을 덮쳤고

날개는 땅 위로 짓이겨졌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온몸으로 새겨진 목숨의 미련함이


밟히고 으깨지며 사라져 갔다

바퀴들의 틈 사이로 사라져 갔다






차도 위에 비둘기의 사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것이 비둘기라는 유일한 증거는

짓이겨져 바닥에 달라붙어 있던 사체 덩어리 가장자리에

겨우겨우 붙어있던 깃털 몇 가닥이었다.


언젠가부터 날아다니는 비둘기보다

땅 위에 걸어 다니는 비둘기가 익숙해졌다.


사람이 가까이 지나가도 별 반응이 없었고

차가 쌩쌩 달려도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보다

땅 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니는 것이


생존에 훨씬 더 유리하다는 동물적 감각이 만든

습관이었겠지만,


땅의 달콤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더 이상 하늘의 것들을 추구하지 않고

스스로 날개를 접은 것은


결국 평화의 상징이 유해동물이 되는데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이상적인 이미지는 미지의 것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이 결코 실현할 수 없는 욕망을 실현하는 존재였기 때문일 것이다.


푸른 창공을 가르며

광활한 하늘을 날아다는 모습

인간이 결코 온전히 체험할 수 없는 그 미지의 영역을

비둘기는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땅과 사랑에 빠진 비둘기는

더 이상 이상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땅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자신만의 고유하고 유일한 자기됨을 상실했고

땅에 사는 존재보다 더 집착적으로 땅에 점착되었다.


그 결과

생존을 위한 야생의 감각은 무뎌지고

오직 식욕을 위한 본능만이 거대해져

날개가 굳어져버렸다.


자주 하는 행동은 습관이 되고

자주 사용하는 것들은 진화하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들은 퇴화한다.


눈앞에 보이는 토사물에 정신이 팔려

위협을 감지하는 센서가 살에 덮여버린 비둘기는

처참하게 바퀴에 갈려 사라진다.


모든 생명은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사용하며 살아갈 때 조화롭다.


모두가 날개를 가질 필요는 없다.

각기 태어날 때 주어진 조건들은

내가 살아가는데 가장 유용하고 필요한 것들이다.


중요한 것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다.

잠시 현혹되더라도 그것에 함몰되지 않는 것이다.

오직 그것만이 있다고 단정하지 않은 것이다.


당장의 이익과 유익에 내가 가진 것들을 퇴화시키지 않도록

자주 되돌아봐야 한다.


무언가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좋다면

그것은 유혹일 가능성이 높다.


달콤함과 짜릿함만이 있다면

그것은 퇴화의 수순일 가능성이 높다.


며칠 뒤 도로 위 비둘기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수많은 자동차 바퀴들의 틈 사이로 그렇게 사라졌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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