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했다
어차피 주실 거 미리 주세요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하렴
너는 내 아들이잖니
아들이 떠나가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요
여기서는 안되니 기다리지 마세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하렴
너는 내 아들이잖니
아들이 울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돼지의 주염 열매조차 주는 이가 없어요
다시 돌아가도 괜찮을까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그래, 니가 원하는 대로 하렴
너는 내 아들이잖니
성경에서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었다.
상속이란 자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뤄지는 절차지만,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자기 몫으로 줄 재산이라면 필요할 때 그냥 빨리 받아 쓰고 싶었다.
그 옛날 이런 종류는.. 일종의 폐륜이라고 여겨졌다.
아버지가 뻔히 생생히 살아있는데, 미리 재산을 요구하는 것은
아버지의 존재와 권위를 무시하시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탕자의 형은 이 말을 듣고 불같이 화를 냈다.
감히 어떻게 아버지에게 재산을 달라고 할 수 있냐며!
하지만 아버지는 탕자가 원하는 대로 다해 주었다.
탕자는 그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렇게 탕자는 재산을 미리 받아 집을 떠났다.
젊음에 더해진 돈은 힘과 쾌락을 불러왔고
탕자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삶에 몰두했다.
아마도 매 순간 도파민이 빵빵 터지는 시간이지 않았을까...?
쾌락과 즐거움의 밀도가 높아질수록 돈을 빠르게 사라졌다.
이윽고 모든 재산을 탕진했을 때 탕자에게 남은 것은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빈털터리 탕자를 도와주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돼지가 먹는 주염 열매조차 탕자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절망의 늪은 탕자를 천천히 잠식했고 삶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잠겨 들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추락을 거듭하고 있을 때
그는 집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있는 그리운 집
하지만 쉽게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 면목이 없었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그의 몸을 꽁꽁 묶었다.
이국의 땅에서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결국... 탕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생명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터덜터덜 걸어 집이 가까울 때 즈음
저 멀리서 아들을 발견한 아버지는 버선발로 뛰어가 아들을 껴안았다.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아들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살아 돌아온 아들을 위해 기쁨과 축하의 잔치를 열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탕자가 아버지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조건이
모든 것을 이기고 수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것은 경이롭다.
자녀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
절대적 지위와 무조건적인 여김을 받는 존재
무언가를 초월한다는 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하는 존재
세상의 논리와 이치가 흐려지고
오직 하나의 명제만이 남게 되어
그 무엇보다 또렷하고 명확해지는 존재
이것이 탕자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참 이유였을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
아버지에게 아들이라는 존재에 대한 확신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