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겨진 신발

by 쓱쓱


가을의 기웃거림이

영 못마땅하다


떠밀려가야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예상이란 의외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닥쳐오는 것들은

모두 다 당황스럽다


오늘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언제나 그래왔다


그저 있는 것에 하나 더 늘어났을 뿐

큰일이 아니다 위로해 보지만


문제는 무게감이 아니라

칠흑 같은 절망이었다


의자에 앉는다는 것은

일말의 의지가 필요했다


절망은 바닥으로 몸을 떨어뜨렸고

바닥은 마음을 차갑게 얼렸다


내버려 둔 다리 사이로

신발이 풀려났다.


떨궈진 고개 아래로

차가운 눈물이 흘렀다


벗겨진 신발들이

슬금슬금 도망갔다.






매번 반복적으로 경험하지만

왠지 다르게 느낀다면

그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 마음의 이상 증후일 것이다.


그렇게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면서도

결국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에

종종 뿔이 난다.

물론 그것 또한 내 안의 관점의 차이겠지만.


보낸다는 확신보다

떠밀려 간다는 느낌이 지배적이면 그냥 슬퍼진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내장이 온통 뜨겁게 달아오르던 대상이

어느 시점을 시작으로 서늘하게 식어갈 때

나는

보내지도 못하면서

식어가는 과정 속으로 떠밀려 가야 했다.


수순은 분명했고

이후는 예측 가능했지만,

그럼에도 차가운 냉기는 여전히 아프고 슬펐다.


하나의 경험이 더 생긴 것뿐이라고

언젠가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사실 그저 깜깜했다.


가능성들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자명하다고 판단될 때

어두움은 더 짙어졌고

어둠이 더 짙어질수록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하지만 나는 일단 의자에 앉기로 했다.

몸을 움직여 의자를 찾는 것도

앉기 위해 몸을 구부리는 것도

생각보다 많은 의지와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앉고 나니 고통이 미세하게 조금 덜어졌다.

몸과 마음에 아주 작은 여유가 생겼다.


그제야 비로소 눈물이 났다.

떨궈진 고개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며

절망의 크기가 그 눈물 자국만큼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앉아 있으니

두 다리가 힘없이 흔들렸다.

그리곤 흔들리던 두 다리 사이로

신발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부러 다시 신고자 애쓰지 않았다.

눈물 자국 사이로

슬금슬금 도망가는 신발을 보면서

그렇게 옅어지는 연결감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분명 떠밀려 가는 것은 슬픈 일지만

붙잡는 것은 더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참고 견디려 해 봐도

결국 고통은 다시 슬픔을 몰고 올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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