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내가 보내는 생일은 화려하고 시끌벅적하기보다는 조용하고 소소한 편이다. 아침밥상에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이 나오고 가족들이 한 마디씩 "생일 축하해~" 하고 인사를 던져주는 그런 날. 시끌벅적한 파티는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엄마가 차려준 생일상 앞에 모여 다 같이 축하했던 게 마지막 기억인 것 같다. 성인이 된 지금은 생일을 보내는 방법이 매우 간단하다. 당일날 친구들에게 온 축하 메시지에 답장을 하고 퇴근하고 온 가족들과 다 같이 외식 후 케이크 앞에 둘러앉아 덕담을 주고받는다.
가족들과 함께 생일을 보낸다는 건 참 감사한 일인 걸 알면서도 친구가 좋을 때인 20대의 나는 소소하게 보내는 생일이 가끔은 심심하고 외톨이인 기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친구는 끼리끼리 닮는다더니 극성스럽고 푼수 같은 친구도 없어서 '시간 언제 되냐. 밥 한번 먹자-' 날 잡고 같이 밥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3월의 생일자는 외로울 수밖에 없는 달이다. 학창 시절에는 새 학기, 새로운 환경에 정신이 하나도 없고 다시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달이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추운 계절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이다 보니 또 그거대로 나름 정신없는 달이었다. 매년 내 생일 날 때쯤 되면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생일이 뭐 대수라고. 생일? 뭐 까먹을 수도 있지. 어떻게 매번 생일을 챙기겠어. 난 괜찮아.'
동네방네 생일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도 창피하고 어릴 때면 몰라도 다 커서 축하받으려고 하는 게 철없는 행동처럼 느껴져 '이제 어른이니까 이런 거에 연연하지 말고 어른스럽게 넘어갈 줄도 알아야지.' 쿨하게 생각했지만 실은 쿨하지 않았나보다. 쿨한 사람은 저런 생각도 하지 않을테니까.. 1년 중 하루, 내가 특별히 잘한 일이 없어도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축하받는 날인데 축하받지 않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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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온 지 2개월이 지나고 어김없이 3월이 왔다. 다음 주면 내 생일이었다. 그런데 캐나다는 아직 봄이 올 생각이 보이지 않았다. 꽃봉오리가 피기 시작할 무렵쯤 생일을 맞이했는데 여기는 여전히 겨울왕국처럼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런 바깥 풍경이 영 낯설었다. 이번에도 생일이 오기 전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 시작했다. '애도 아닌데 무슨- 생일이 뭐 대수인가. 그냥 조용히 보내자.' 하지만 이 곳에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를 챙겨주던 가족도 "볼 수 있어? 나와!"라고 쉽게 연락할 동네 친구도 없었다. 한국을 떠나왔으니 나는 한국에도 없는 사람이었고, 여기서도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늦은 밤 모두가 집에 있을 시간, 룸메이트가 있는 옆 방문을 두드렸다. 새로운 집에 이사온지 10일째였나. "저기.. 다음주 목요일에 시간 되세요? 같이 저녁 먹지 않을래요? 제가 생일이어서요." 이 한마디가 왜 이렇게 부끄럽던지. 한국에서도 그랬다. 자존심과 부끄러움 때문에 나는 친구나 지인들한테도 "야! 나 그 날 생일이야!!"라는 말을 선뜻 먼저 꺼내지 못했었다. 내가 나서지 않으면 그들한테 축하받지 못할 사람이라는 느낌에 괜히 섭섭했고, 먼저 다가갔다가 혹여나 거절당할까봐 지레 겁먹고 내가 피한 것도 없잖아 있었다.
내 딴에는 참 뻘쭘한 제안이었는데 흔쾌히 오케이하고 다음 주 목요일 저녁에 시간을 비워두겠다는 룸메이트들.
생일 당일, 저녁상을 차리려고 장을 보고 왔다. 그런데 부엌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고있었다. 한 언니가 생일날 미역국을 안 먹으면 섭섭한 거라며 손수 끓인 미역국이 끓고 있었고 다른 한 룸메이트는 집 근처에 유명한 케이크집이 있다며 치즈케이크와 와인까지 준비해준 것이다. 이제 막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까지 챙겨주다니. 그날 밤, 동서양의 조화가 어우러진 미역국과 스테이크 그리고 와인까지. 소박하지만 풍족한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다. 창 밖에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침대 옆 공간은 좁았지만 아득한 조명 아래서의 수다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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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생일은 꽤나 근사했어.' 잠자리에 누워서 든 생각. 외롭지 않은 생일이었다. 누군가 챙겨주겠거니 기다리지않고 내가 먼저 나섰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행복했다. 혼자 기대하고 혼자 섭섭해하는 게 아니라 오늘처럼 내가 특별한 날을 만들 수도 있는 거였는데. 물론 함께 동참해주어서 더욱 특별했지만..
'행복한 날은 기다리면 오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들면 되는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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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떠나보니 어때> 독립서적의 비하인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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