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1일 수
한참 회의 중인데 낯선 번호의 전화가 울렸다.
“유**씨 주 보호자 되시죠? ”
“네..”
“CT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가슴과 복부 사진으로는 다른 장기에 전이는 없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수술은 진행하실 건가요?”
“네.. 다른 가족들과 의논해서 알려드리겠습니다. ”
“네, 알겠습니다.”
“수술에 동의하면 이후 절차가 어떻게 되나요?”
“외과로 넘어가고, 수술 진행에 따른 내시경 검사를 하게 되고, 복강경 수술을 하게 됩니다.”
“이따 오후에 제가 병원에 갑니다. 그때 간호사실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현재 환자분이 기도와 식도 조절이 안 되는 상태라 앞으로 입으로 하는 식사는 안됩니다. 치료가 끝나면 아마 코로 튜브 삽입해서 유동식 식사를 하게 될 겁니다.”
이제 또 한 번 결정해야 할 때이다.
회의 중이나 잠시 양해를 구하고 복도로 나왔다. 내가 일하는 곳의 복도에 서면 건너편에 커다란 종합병원이 보인다. 국내 제일의 암 치료 병원이라며 어쩌다 유명인의 장례식이라도 있으면 인근 일대에 교통이 마비될 때도 있다. 하필 근무를 해도 이런 곳에서 하게 됐을까?
건너편 병원으로 옮기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지금 대학병원이 동생이 동문이라 10% 할인받는다 해서 그쪽으로 정했었다. 의사가 전한 말을 가족 톡방에 올리고 병원에 가서 궁금한 거 더 물어보고 결정하자고 했다.
조금 이른 퇴근을 하고 엄마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아버지는 얼굴은 어제보다 편안해 보였으나 폐렴이 진행되어 가래가 끓고 산소포화도가 너무 낮아져 코에 줄을 달고 있었고, 밤에 손등에 있는 주삿바늘을 뽑으려 해서 양팔이 묶여있는 상태였다. 오전에 동생한테 연락이 와서 보호자 동의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 이거 자꾸 빼려고 하면 안 된대요.”
“아파서 그래!!”
손등이 아프다며 밤에도 몇 번 하소연했단다. 새벽까지 잠을 안 주무시더니 간병인에게 손을 잡아 달라해서 한 30분간 손을 주물러드렸더니 주무시더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래도 이제 간병인이 돌봐주는 사람인지는 알아차리셨나 보다 했다.
나이를 물어보고, 내가 누군지 물어보고, 엄마는 몇 살이냐는 같은 질문을 했다.
본인은 101살이고 엄마는 두 살 위라서 101살이라는 대답을 듣고, 오전에 면회도 안 되는 시간에 다녀간 막내 작은 아버지와 고모가 엄마한테 주고 간 봉투를 보여드렸다.
“아버지. 이거 작은 아버지가 다녀가며 봉투 주고 가셨는데, 누굴까?”
“**!”
한자로 적혀있는 작은 아버지의 이름을 읽으셨다. 안경도 없는데..
“어, 한자는 기억하시네. 그럼 아버지 여동생은?”
“**!”
엄마가 두 분과 번갈아 가며 통화를 하게 해 드렸더니 대답도 하시고 인사도 건네셨다.
내친김에 아버지 침대 옆에서 가져온 책 중에 블루베리에 관한 것을 보여드렸다.
“아버지, 이제 블루베리 못 드신대... 이번에 아파서 병원에 와서 고생하는 게 목에서 조절이 안 돼서 그렇대, 입으로 하는 식사는 이제 못한대요. 블루베리 엄청 좋아하시는데 못 드시네.”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좋아하는 음식도 많고 먹는 것에 욕구도 크신 분인데 유동식만 그것도 콧줄 투입으로 하게 된다니 많이 서운할 것 같았다.
현재 자신의 몸 상태를 본인은 자각하고 있는 걸까?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에 대한 감정은 지니고 계실까?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밀려들려고 하기에 얼른 간호사실로 가서 궁금한 걸 물어보고 담당의와 통화도 한 후 가족 톡방에 올렸다.
1. 수술은 의사 집도의 복강경 수술
2. 항암치료는 예정에 없음.
3. 비용은 업무과에 물어볼 것
4. 수술 안 할 경우 바로 요양병원으로 이동해야 함.
5. 수술을 한다면 장을 비우고 내시경으로 수술 자리 표시하는 시술하고 몇 가지 검사 후에 월요일에 수술 예정
– 이상 수술 찬반 표시 바람 -
동생들은 비용에 관한 이야기며 이런저런 검색 자료들만 올리고 수술 여부에 관해서는 답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 한 명씩 물어봤다.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었다. 수술은 찬성인데 이후 비용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나는 전이가 안 되었다는 상황이 반갑기는 하나, 호흡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수술을 하고 난 후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앞서다 보니 망설여졌다.
아기가 된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배 아픈가?”
“난 아픈 거 몰러...”
“아버지. 배에 혹이 있대, 그래서 수술로 없애야 한다는데, 수술할까?”
“해야지!”
뜻밖에 단호한 의사표현이다.
“그럼, 수술하는 거다.”
“그래!”
엄마에게 묻지는 않았다. 늘 이중적인 반응을 보이는지라, 어떤 마음인지 충분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간호사실에 가서 수술하겠다고 했더니 일단 일정을 잡겠다 했다. 호흡기 상태가 좋지 않아서 몇 가지 질문을 했고 퇴근을 하려던 의사와 통화도 했다.
살아가면서 나에 관한 것을 타인이 결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노년이 되면 가족들이 이런 결정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오늘도 이런 질문을 허공에 던지며 병실로 들어가기 전에 분위기를 바꿔야겠다 생각했다.
“아버지. 아까 작은 아버지 이름 한자도 잘 읽네. 나보다 눈도 밝으셔.”
“내 안경이 어디 있냐?”
“갑자기 안경은 왜요? 잘 안 보여요?”
“아니.. 잘 보려고..”
느닷없이 나온 안경에 관한 이야기에 엄마가 잠시 멍해지셨다.
“요양원 갈 때 짐에 없었나? 예전에 병원 다닐 때 맞춘 건 데 어디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집에 가서 찾아봐야지...”
“아버지, 엄마가 집에 가서 찾아보신대요. 아버지 옛날에 글씨도 참 잘 쓰셨는데.... 붓글씨”
“동네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 내가 써준 거 붙여놓고 다음 제사에 또 쓰고 그랬다.”
“그러게.. 언제 붓글씨 다시 써보시나?”
“.......”
몇 마디 짧은 대화지만 힘드셨는지 눈을 감으시기에 병실을 나왔다. 어제저녁 늦게 CT 검사, 오늘 새벽에 X-RAY검사, 내일은 관장까지 해야 한다니 오늘 밤은 푹 쉬시길 바라며 지팡이를 짚고 걷는 엄마를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거의 다 왔는데 술 생각이 났다. 마트에서 맥주랑 소주를 사고 치킨 한 마리도 포장해서 집으로 들어오다 동생한테 문자를 넣었다.
“치킨 먹고 싶으면 건너와!!!”
제부랑 나는 나란히 소맥을, 동생은 목감기 기운이 있다며 치킨만 먹었다. 어릴 적 이야기도 나누며 엄마와 아버지에 대해 최근에 알게 된 이야기도 나누고...
병원 다녀오는 날이면 술 생각이 난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늘 소주를 드시던 아버지 대신에 내가 마시나보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