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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an 09. 2020

18. 2020년이 되었는데...


12월 31일 화


한 해가 끝나는 날이라는데 전혀 감흥이 없다. 내일이 새해라는 것에도...

타임라인의 점에서 점으로 이동인 것 같은 무감각한 상태를 아버지 병원 생활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몇 년 후면 60이 되어가는 나이 탓으로 돌리거나 시간을 앞질러 가버려서 그런 거라고 믿고 싶다. 

그렇게 무덤덤하게 일상을 보내는 마음을 한편에 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아버지 침대가 창가 쪽이라 어떤지 가보려고..”

“어제 내가 가보니 그다지 춥지 않았다. 너 갈 때 같이 가자.”


어제는 아버지가 고마워! 조심해!라고 했다며 엄마가 전화를 하셨었다. 병원에서 나오면 안 간다 하시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다녀오는 엄마의 일상이다. 


병실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출입구 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경관식이 한 후에 침대를 세워놓아 몸이 약간 오른쪽으로 휘어진 상태였다. 우리가 다가서니 눈을 크게 뜨고 말을 하셨다.


“마나님 왔네.”

“어.. 아버지 오늘은 생생하시네. 엄마도 금방 알아보고... 기다리셨구나.”


두 마디 말을 하고 나서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자꾸 쿨럭거리기만 하셨다. 


“너무 말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밖에 날이 많이 추워졌어요. ”

“아버지, 춥지는 않죠?”


고개를 끄덕이신다. 


벽 쪽에 손을 대어보니 다행히 찬기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왼쪽 손이 많이 부었고, 오른손도 부기가 있었다. 건강하셨을 때는 몸이 붓는 일은 없었다.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가 손을 묶어놓아 더 그런 것 같았다. 간호사실에 문의하니 혈청 단백질 어쩌고 말을 하는데 건성으로 흘려 들었다. 경관 식이는 잘 적응하시는 것 같았다. 소변줄이 그대로 있어서 기저귀 소모량도 많지 않았다. 요양병원에서는 개인별 기저귀 소모량에 따라 비용 청구가 된다는 안내문이 엘리베이터에 붙여 있었다. 


엄마는 담당 간병인에게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고 이불을 들춰보며 아버지 몸을 살피셨다. 아버지의 시선은 줄곧 그런 엄마에게 가 있었다. 대화를 지속해서 나눌 수 없으니 긴 면회시간을 갖기는 어렵다. 15일에 있을 대학병원 진료를 어떻게 할 것인지 간호사실에 문의하니 사설 앰뷸런스를 왕복으로 불러서 가야 한다는 답변이다. 누워만 있는 환자가 대학병원 외래 진료를 다니려면 그때마다 앰뷸런스를 타고 가야 한단다. 그래서 몇 번 다니다가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1월과 2월에 예약이 잡혀있는 것만 2건이다. 


새로운 상황이 나타날 때마다 엄마는 한 단계씩 무거워지는 듯했다. 


“병원에만 누워 계시는데, 앰뷸런스 타고 드라이브 가신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돈이 많이 들잖니...”

“거리별 요금이던데, 왕복이니 좀 더 나오겠지만, 모아놓은 것도 있는데 걱정할 일이 아니네요.”


아버지의 상황에 따라 엄마의 심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가라앉았다 올랐다 한다. 



1월 1일 


가족 톡방에 문자가 올라왔다. 


‘요양병원 내과 과장이 복강경 수술 자리 중 두 곳의 봉합이 벌어졌다고 수술 의사한테 상담하고 치료받으라고 함. 의사소견서 가지고 가야 함.’


‘전화해서 담당의사한테 문의하고 치료하려면 앰뷸런스 불러서 다녀와야지. 간 김에 15일 예약한 채혈하는 것 하고 오면 안 되는지 물어봐.’


누워있는 환자를 외래진료를 받으려면 앰뷸런스 부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정말 없을까?

단지 대학병원에 채혈을 하러 꼭 가야 하는가? 

지금 있는 곳도 병원인데 채혈이 안 되는 걸까?


새해 첫날이라는데 질문만 많아졌다. 



1월 2일 목 


수술한 담당의사일정에 맞춰 외래 예약 정하고, 간 김에 미리 채혈하면 안 되냐는 질문에 정해진 날짜에 해야 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평일 오전에 갈 수 있는 셋째 동생이 가기로 했다. 환자가 거동을 못하니 보호자만 움직이면 될 줄 알았는데, 대학병원에 진료를 받으려면 그때마다 앰뷸런스를 불러야 하고 보호자도 시간을 내야 한다. 자식을 여럿 둔 우리 아버지는 참 다행이지만, 자식이 없는 노인 환자는 이럴 경우 어떻게 하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요양병원에서 채혈해서 대학병원으로 보내면 문제가 생기나?

복강경 수술 자리 살짝 벌어졌다고 수술한 의사한테 꼭 가야 하나? 

진료협력기관으로 연계되어 있는 병원이라는데 협진은 안 하는가 보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질문만 그득하다.


1월 3일 금


오전에 병원 진료를 다녀온 셋째가 가족 톡방에 내용을 올렸다. 


드레싱만 하고 아버지는 요양병원으로 모셨음. 

2월 예정 외과 추적 검사는 6개월 후로 미뤘음. 


사진 찍어서 보내면 안 되냐는 말에 직접 환자를 봐야 한다 해서 앰뷸런스 불러 갔더니 드레싱만 하고 열흘 후면 낫는다고 했다는 소식에 식구들은 모두 어이없어했다. 그 정도 치료는 요양병원에서도 할 수 있었을 텐데...


퇴근 후에 들렀더니 아버지는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고, 열이 있어 보였다. 간호사실에 체온 체크해달라 하니 38도라고 하면서 기침을 심하게 해서 열감이 올라오는 것 같다고 했다. 마침 담당의사의 회진 시간이라 상태를 물었다. 수술 자리는 드레싱만 했다고 전하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좀 많이 벌어진듯했다는 말을 덧붙이며. 오전에도 석션을 여러 차례 했다며  2층의 집중치료실로 이동을 권했다. 지금은 빈자리가 없지만, 조정이 되는 대로 옮길 수는 있다고 했다. 2층을 방문해보고 결정해달라고 하기에 엄마랑 나는 2층으로 내려갔다. 


일반병실과 달리 그곳은 칸막이가 유리로 되어있고 아버지보다 더 심각한 환자도 많이 있었다. 전부 누워있는 환자만 있었다. 지금 있는 병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간호사의 돌봄 서비스를 더 받을 수 있는 곳이라니 옮기겠다고 했다. 가족 톡방에도 의사의 권유와 집중치료실을 본 내용을 올렸다. 


병실료는 하루에 8000원 더 지불해야 함.

석션을 자주 해야 해서 일반병실에서 돌보는 것보다 집중치료실에서 더 잘 볼 수 있다고 함.

병실이 조정되는 대로 원무과에서 연락하기로 했음.


추운 날씨에 앰뷸런스 타고 나가서 채혈하고 진료 보고 오느라 기력이 떨어진 게 분명하다. 애초에  입원 시작은 폐렴 때문인데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15일 대학병원에 다시 가는 것은 검토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전해질 불균형으로 신장내과 협진이 있었고 염화나트륨 주입으로 보완이 되어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이후 상태를 점검하는 검사가 있다고 했다. 요양병원도 진료기관인데 검사와 진료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1월 4일 토


5층에서 2층으로 옮기는 것은 결정 하루 만에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후 가족 톡방에 알렸다. 


아버지는 2층 집중치료실로 옮긴다고 함. 가래 석션 때문이라고 했음. 

이곳은 면회 제한 시간이 있으니 시간 확인해보고 가길 바람.

병실 들어가서 놀라지 말기를... 엄마랑 나는 어제 보고 나와서 마음이 무거웠음.

신장내과 검사와 진료는 상황을 보고 담당의사 상담 후에 결정해야 할 것 같음.

어제 내과 담당의사 말로는 전해질 불균형 문제는 현재는 없는 것 같다고 함.

지금 상황에서 또 한 번 이동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됨.

어제 체온 38도였는데 오늘 가는 사람 체온 확인바람. 


막내 동생은 아버지 상황이 나빠진 거네 라는 말을 올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라고 답을 했다. 오후에 셋째가 엄마 모시고 다녀오며 냄새가 많이 난다고 했다. 감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갔더니 얼굴이 왜 그러냐고 아버지가 물어봤다고 했다. 눈도 마주치고 말도 하고 상태가 어제보다는 좋아 보이고 체온도 정상이라고 했다. 


집중치료실에서 상황이 좋아져서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까?


1월 5일 일 


엄마로부터 문자가 왔다. 


너네 아빠가 말도 못 하고 도리도리만 한다?


비닐장갑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갖다 주러 간 김에 면회를 했는데 아버지가 반응이 없었나 보다. 문자를 타고 전해오는 엄마의 심정은 무거웠다. 정말로 엄마 마음이 그런 건지 아니면 내 마음인지 알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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