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 목
회의가 두 건에 업무가 가장 많은 날이다. 요양병원으로 이송은 막내네 부부가 맡기로 했다. 오후 2시 예정이라 했다. 일을 하면서도 의식의 한 부분은 병원을 향해 있었다. 1시 회의가 2시간 뒤로 미뤄졌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점심시간을 이용해 잠깐 다녀올 수 있겠다 싶어 출발했다.
병실에 들어서니 간병인은 없고 아버지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계셨다. 삽입된 튜브에 유동식이 남아있는 것을 보니 조금 전에 식사가 끝났나 보다. 양손에 꽂혀있던 주삿바늘은 한쪽만 있었다. 나트륨 수치가 떨어지는 것 때문에 염화나트륨 수액을 맞고 있었다. 그것마저도 간호사가 와서 빼버리면서 오랜만에 양손에 주삿바늘이 없는 모습이 됐다. 가늘어진 손목과 손등에 온통 주삿바늘의 흔적과 퍼런 멍자국이 가득했다.
“아버지, 이제 요양병원으로 옮길 거예요. 이따가 막내랑 엄마가 올 건데, 병원 옮기는 거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눈을 깜박였다. 입술을 움직이며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소리가 나지 않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에요?”
한참을 힘겹게 입술을 움직이다가 간신히 들리는 소리는 물이라는 말이었다. 간호사실에 가서 환자가 물을 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다.
“입안이 말라서 물을 찾는데 절대 물 주면 안 됩니다. 거즈를 드릴 테니 물을 묻혀서 입술만 적셔주세요. 입안으로 물 들어가면 절대 안 되고요.”
물에 적신 거즈로 입술을 닦아드리니 눈을 지그시 감으시며 얼굴이 조금 편해지셨다.
“아버지 , 내가 누군지 알아보겠어요?”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는 자꾸 왼편 침대 쪽을 바라봤다.
“옆에 커튼 가려드려요?”
눈을 깜박이셨다. 간호사가 와서 주삿바늘을 빼고 간 후에 그쪽 커튼이 열려 있었나 보다. 집에 계실 때도 아버지는 창문을 닫고 계셨다 했다. 환기를 하려고 열어놓으면 창문 닫으라 했다는 말을 엄마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옮겨가는 요양병원에는 침대에 커튼이 있으려나...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아버지 입술은 색이 고왔다. 물에 적신 거즈로 눈 주변도 닦아드렸다. 어제까지는 눈곱이 많았는데 오늘은 덜 했다.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는 잠이 든 것 같지는 않았다. 눈가를 지나 머리도 쓸어드리고 자리에 앉으니, 오른손을 자꾸 흔드신다. 손을 잡아드리니 얄팍한 피부의 느낌과 달리 아버지 손은 아주 따듯했다. 발도 만져보니 따듯했다.
수치로 나타나는 체온이 아닌 손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온기가 있었다.
한동안 아버지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보는데 서서히 눈물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마음을 다 잡으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올라오던 게 멈췄고, 눈물이 비치지는 않았다.
간병인이 들어오며 인사를 했다.
“식사하고 오셨나 봐요?”
“네.”
“점심시간이라 잠깐 다니러 왔습니다. 오후에 퇴원인데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아버지가 오늘은 좀 좋아 보이네요.”
”어제는 전날 잠자는 약이 있었고 아침에 위세척하고 그래서 그랬나 봐요. 어제는 약이 없었어요. “
“아.. 네. 전 이제 가봐야겠어요. 아버지 저 가요. 병원 옮기면 다시 만나요.”
아버지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셨다. 나도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차에 들어와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왈칵하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누르려 하지 않았다. 큰소리 내어 오열할 만큼은 아니었다. 주르륵주르륵 몇 번 흘렀고, 티슈로 닦아낸 후 출발했다.
병원 이송 상황은 가족 톡방에 올라왔다. 예정보다 좀 늦게 오후 5시에 끝났다. 엄마를 집으로 모셔다 드리고 동생네 부부도 집에 도착했다는 내용이 올라왔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요양병원 입원이 시작된 날 나는 가지 않았다. 그동안 개인적 상황으로 미루고 미뤘던 부서 회식을 이날로 정했었다. 올해를 끝으로 퇴사하는 부서원이 있었다. 저녁 먹고 일 이야기도 하고, 일 년 동안 수고 많았다는 인사도 하고, 그동안 나누지 못한 수다도 떨고 집으로 돌아오니 9시가 넘었다.
창 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았는데 낮의 울컥함이 조금 올라왔다. 아마 앞으로 이럴 때가 좀 더 있겠지...
12월 27일 금
요양병원에서 아버지 병실은 501호라고 했다. 엄마가 혼자 걸어서 다녀온 후에 상태를 가족 톡방에 올리셨다.
‘아빠는 아침, 점심 200ml 드시고 석션은 저녁에 한번,
어제 입원한 이후로 두 손 마주 잡고 가만히?’
마침표와 물음표가 여전히 헷갈리는 엄마의 문자를 읽으며 입원 첫날을 잘 지내셨구나 했다.
면회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인데 억지로 시간을 내면 갈 수 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밀린 업무와 연말 모임을 하며 늘 하던 일상의 세계로 돌아오려 했다.
12월 28일 토
어제 모임은 늦은 시간에 끝났다. 2년이 넘는 병원 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부친상을 지낸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만이 겪는 일이 아니고, 동년배 사람들이 겪는 일상과도 같은 현실임을 또 한 번 자각했다. 그냥 그러려니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겪어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9시가 넘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어떻게 하시나요?”
“어제 걸어갔다 왔더니 다리가 많이 아팠는데, 오늘은 셋째랑 함께 갔다가 영화 보기로 했다.”
“그럼, 난 안 가도 되겠네. 그동안 고생하셨으니, 영화 구경도 잘하세요.”
“그래. 아버지 만나고 연락 하마.”
주말에 늘 하는 집안일을 하는데 엄마의 문자가 올라왔다.
‘아빠는 머리 삭발했는데 예쁜 스님 같애
식사 후 코 줄 뺐어. 어제 보다는 조금 눈으로 깜빡?‘
어제보다는 조금 진전이 있나 본데 콧줄을 뺐다는 말이 궁금했지만 연락하지 않았다.
12월 29일 일
아침에 아들은 도서관으로 딸애는 아르바이트하러 가고 난 후에 설거지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오늘 병원에 갈거니?”
“엄마는 언제 가시려고요?”
“네가 간다면 시간 맞춰 움직여야지.”
“한 시간쯤 후에 갈 테니 준비하세요.”
골목길 앞에서 엄마를 태우고 지도에서만 봤던 병원으로 갔다. 친정집에서 가깝긴 하지만 82세 노인의 걸음으로는 좀 멀어 보였다.
501호
아버지는 병실의 가장자리 창가 침대에 누워계셨다. 머리를 삭발해서 그런지 고승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어제 콧줄을 뺀 것은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점심 식사를 막 했는지 침대가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아버지, 식사하셨나 보네.”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엄마랑, 딸 왔는데 모르시나 보네.”
고개를 저으셨다.
“알아보셨구나. 아버지 여기서 집이 가까워요. 병원 옆이 시장이고 좀 더 가면 전철역이야.”
“니 아버지는 말을 안 한다.”
이불을 들춰보고, 손을 만져보고, 발도 만져보고 하면서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본인을 못 알아보는 것 같아 서운한 말투였다. 아버지의 시선이 줄곧 엄마를 향해 있었다는 것을 나는 감지했는데 엄마는 눈치채지 못하셨나 보다.
“엄마인 줄은 알아보시는데... 아버지, 내가 누군지 아시나?”
아버지 입술이 움직이는데 소리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 내가 대신 말로 했다.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아느냐 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아버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콧줄 식이 후에 가래가 심해서 말을 하기 어려워 보였는데, 몇 번의 기침과 고개를 움직이는 행동이 이어지길래 손을 주물러드리고 있었다. 갑자기 소리가 들렸다.
“미안혀!”
엄마를 향해 하는 말이다.
“엄마, 아버지 말씀 잘하시네...”
“웬일이니.. 생전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소리를 다 듣고..,”
엄마는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다. 느닷없는 아버지의 감정표현에 나도 놀라긴 했다. 병실을 울리는 TV 소리에 잠깐의 정적이 사라지긴 했지만 묘한 감동의 순간이었다. 뭐라도 대응하는 말씀을 더 하셨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엄마는 가만히 계셨다. 이불을 다독이고 발을 감싸주더니 간병인에게 말을 거셨다.
“어젯밤에는 잘 잤나요?”
“네, 조용하셨어요.”
“석션은 몇 번 했나요?”
“저녁에 한번, 아침에 한번 했지요.”
잠깐의 감동과 어색함은 아버지의 이어지는 기침소리에 병실을 둘러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남자 간병인 한 명에 환자 5명으로 병실은 커튼이 쳐 있지 않았고 TV 소리가 크게 울리고 있었다. 아버지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와 휠체어로 움직이는 환자, 겉으로 보기에 전혀 불편함이 없어 보이는 환자들이 섞여 있었다. 중증 환자들만 있는 곳이 아니라서 간병인 한 명이 5명을 돌보는 것이 가능해 보였다.
TV 소리만 울리는 병실에서 아버지의 시선은 내 옷에 가 있었다. 영어로 된 레터링 티를 입고 있었는데 글자를 읽으시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읽을 수 있는 것을 가져와야 하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일어섰다.
“이제 가자. 나 허리 아프다.”
“아버지, 엄마 허리 아프대요. 내일 또 오실 거예요. 가 볼게요.”
이불속이 들썩거렸다. 아버지 식의 인사다.
엄마는 그 이불을 들추고 아버지 손을 마주 잡고 흔드셨다.
병원에서 돌아오며 가족 톡방에 문자를 남겼다.
아버지가 몇 마디 말씀 하심.
오늘의 명언
“미안혀!”
엄마에게 하신 말씀.
막내가 바로 이어지는 글을 달았다.
‘아빠가 미안하단 말을 할 줄 아네’
아버지는 지금 병원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