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돈으로 잘 살 수 있을까. 행운처럼 주어진 돈을 쥐고서 행복해지지 못하는 바보가 되고 싶진 않은데 대체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고민은 길게 이어졌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어본다고 했던가. 돈도 써본 사람이 써보는 거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평생을 아끼고 아끼며 살아온 과거와 겁이 많은 성미가 만난 결과였다. 이 때의 나는 볼주머니에 도토리를 넣어만두고 아까워서 먹지 못하는 겁먹은 다람쥐 같은 인간이었다.
유튜브에서 부자언니 유수진이라는 분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왜 자기가 부자가 되고 싶은지, 부자가 되면 뭘 하고 싶은지 알아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도 없었고 부자가 되면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아, 그렇다면 나는 부자가 되지 못할 운명인 것일까? 일천확금을 얻었다가 어영부영 다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되고 마는 걸까? 한창 그런 고민에 빠져있을 즈음, 나는 병원에 가게 되었다.
별 일은 아니었다.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생긴 것도 조그맣고 하얗고 가냘퍼서 괜히 지켜주고 싶어지는 모습의 인간이었다. 현실이 소년 만화였다면 나는 픽픽 쓰러져서 주인공에게 폐를 끼치고 마는 조연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자주 아팠고, 자주 병원을 들락거렸다. 잔병이 많으면 큰병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당시 나는 2년 가까이 손의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오른손 손목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이어지는 부분의 통증이었다. 이리저리 병원을 옮겨다녔지만 통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대로 평생 통증을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던 무렵이었다. 삶의 질이 높지 않은 건 당연했다. 나는 설거지나 요리, 청소 같은 집안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가위질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과 스퀴즈 만들기도 할 수 없었고, 슬라임도 주무를 수 없었다. 자판을 칠 수 없었기 때문에 모바일 키보드의 음성 인식 기능을 이용해 글을 썼다. 아이들은 그 시절의 엄마를 아픈 사람으로 기억했다.
2년 동안 집 근처 병원을 전전하다가 집에서 꽤 먼 곳의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나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그저 '안 가던 병원을 가봐야겠다'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가 배경음악으로 잔잔히 흐르는 병원의 원장님은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이익준처럼 붙임성 좋고 환자를 살뜰히 살펴주는 분이었다. 병원이 꽤 마음이 든다 싶은 생각을 할 무렵, 나는 이익준을 닮은 원장님께 극약 처방을 받았다.
환자분, 운동하세요.
네ㅜㅜ...?
싫었다. 당연하다. 운동은 힘드니까! 100m달리기를 25초 동안 해야하고, 멀쩡한 평지를 걷다가 발목을 삐고, 혼자서는 병뚜껑도 캔뚜껑도 딸 수 없는 연약한 몸뚱이에 대고 운동이라니! 게다가 손이 아픈데 헬스장을 권하다니 영 쌩뚱맞은 처방 같았다. 헬스장은 밝고, 넓고,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 잔뜩 있는 곳이 아닌가! 거기서 쇠질을 해보면 손이 나을 거라고? 원장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하지만 해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었으니까. 손이 아픈 채 행복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아이들과 만들기를 함께하고 싶었고, 베란다 화분에 상추를 심어 키우고 싶었고, 남편이 야근하는 늦은 밤에 혼자 티비를 보며 캔맥주를 마시고 싶었고, 손으로 좋아하는 시를 필사하고 싶었다. 나는 고민 끝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헬스장을 찾아가서 피티를 등록했다. 30회에 165만원이었다. 와우! 개큰지출!
난생 처음이었다. 가족이 아닌 나 자신만을 위해 아주 큰 돈을 써보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내가 남편의 눈치를 얼마나 보았는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내가 이 돈을 써도 괜찮은걸까? 정말? 남편은 내가 언제든지 자신이 벌어온 돈을 써도 좋다고 했고, 나 역시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돈을 쓰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은 자기도 운동을 해봐야겠다며 회사 근처 헬스장에서 피티 100회를 통 크게 결재했다. 그렇게 큰 돈을 한 번에 쓴다고? 정말 깜짝 놀랐지만 우리 집 통장 잔고는 내가 걱정하는 것보다 꽤나 튼튼했고, 두 사람의 피티 금액 정도는 가뿐히 버텨주었다.
당연하게도 피티는 무서웠다. 헬스장은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의 장소였다. 어마어마하게 밝고, 육중한 기구들이 가득했고, 육중한 기계들과 싸우는 육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티비나 영화에서 우람한 사람을 볼 때와 그들이 실제로 내 앞에서 기합을 내지르며 무거운 기구들과 싸우는 장면을 보는 건 위압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나를 담당해준 트레이너는 남자분이셨는데 어깨와 가슴이 발달하셔서 나는 수업할 때마다 저 어깨에 치이면 죽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쌤, 제가 잘못했어요! 괜히 빌고 싶어졌다.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정말이지 가기 싫었다. 여우는 어린왕자가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해진다고 하던데 나는 9시에 트레이너를 만나는 날이 되면 4시부터 겁에 질렸다. 대단한 운동을 하는 건 아니었다. 스트레칭을 조금하고 운동 비슷한 것을 흉내내는 정도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나는 피티를 그만두고 싶었고, 트레이너의 흠을 잡기 위해 애썼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바로 환불하고 이 헬스장을 떠나고 말리라 다짐했다. 참으로 옹졸한 마음이 아닐 수 없는 나를, 트레이너는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그리고 나는 헬스장에 출입한지 3주만에 손의 통증이 다 낫는 기적을 맛보았다.
세상에. 통증이 없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그동안 내가 꾀병이라도 부린 듯한 기분이었다. 찜질도, 약도, 물리치료나 침도 소용 없던 통증이 이렇게 빨리 사라질 수가 있는 일인가? 고작 스트레칭하고 운동 같아보이지도 않는 동작을 몇 번 한 걸로 2년 넘게 고생했던 통증이 낫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물론 무리하면 다시 아파지긴 했지만 나는 간단한 문자 메시지에 답장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자판도 칠 수 있게 되었다. 신세계였다!
그 순간부터 트레이너가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은인이나 다름 없는 트레이너에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을 주었다. 나는 첫 번째 결제 이후로 30회짜리 피티를 무려 4번이나 더 결제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도 드렸다. 글쓰기 솜씨를 십분 발휘해 블로그에 리뷰를 남겼고, 쌤을 만날 때마다 내가 아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쌤의 실력을 칭찬해드렸다.
트레이너를 신뢰하게 되자 또 다시 신세계가 펼쳐졌다. 그가 먹으라는대로 먹고, 그가 들어올리고 밀고 당기라는대로 움직였다. 나를 짓누를 것 같이 위압적이던 머신들이 나의 힘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솔직히 무서웠다. 혹시 다리에 힘이 풀려서 넘어지면 어쩌지? 저 무거운 바와 원판에 깔려서 다치면 어쩌지? 하지만 트레이너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돕는 사람이었고 머신들은 나를 다치게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자 전에는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이 가능해졌다.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에 스쿼트 30kg에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적었고, 2주 뒤 30kg을 짊어진 채 스쿼트 한 세트에 성공했다. 트레이너를 신뢰하는 만큼 나 자신도 신뢰하게 되었다. 아, 나도 할 수 있구나. 사소하고 보잘 것 없지만 큰 깨달음이었다.
그렇게 2년 정도 쌤과 운동을 했다. 나와 헬스장은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피티는 끝났지만 나는 적어도 일주일에 네 번은 헬스장에 간다. 아침과 저녁을 가리지 않고, 여유가 있다면 주말에도 간다. 헬스장 직원 분들이나 같은 시간에 자주 마주치는 회원분들과 인사도 나눈다.
스테인리스 숟가락이 무거워 왼손으로 숟가락질을 해야 하던 내가 지금은 바벨에 원판을 끼우고 데드리프트를 한다. 전에는 100m만 달려도 구역질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이제는 30분을 쉬지 않고 뛸 수도 있다. 무서워서 높이 올라가지는 못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클라이밍 센터에 놀러가기도 한다. 원래 생김새를 바꿀 수는 없어서 나는 여전히 하얗고 조그맣지만 전보다 생기가 돈다. 나는 여전히 가냘프지만 앙상하지 않고 날씬하다.
전에 산후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인지심리학자였던 상담사는 내가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우울이나 불안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몇 가지 방법을 안내해주었다. 그때 상담사가 내게 해준 이야기 중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어나지 않아요.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담자분 스스로 행복해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그때는 그게 참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까지 해야한다니. 하지만 해보니 알겠다.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 운동을 싫어하고 헬스장이 무섭다고 생각했던 내가 헬스장 단골 손님이 될 줄은, 그곳에서 운동하는 시간을 즐겁다고 생각하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운동은 나에게 건강과 체력, 깨달음과 편견을 깨부실 기회를 주었다. 나는 이제 살면서 가장 잘 한 일로 '남편과 결혼한 것' 다음으로 '운동'을 꼽게 되었다.
나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덕분에 좋은 트레이너를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게 되었다. 헬스장에 쏟아부은 천만 원이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첫 번째 지출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