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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노란 May 20. 2024

스톡 옵션의 함정

스톡 옵션 행사 가격과 주가 하락, 그리고 세금

남편이 스톡 옵션으로 주식을 받을 때, 맘카페에서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스톡 옵션 행사하느라 돈 내고, 세금까지 냈는데 회사가 망해서 주식은 휴지 조각이 되었고 남은 건 빚 뿐이다.' 남편 회사 주식이 많이 올랐을 때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이었다. 다행히 남편의 회사는 아직 망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앞선 글에서 한 번 설명하긴 했지만 남편이 지금의 회사로 이직할 때, 연봉을 깎는대신 주식을 받았다. 이것을 '스톡 옵션'이라 부른다고 했다. 주식(stock)은 주식인데 가격이 정해져 있어서 현재 가격이 얼마든 정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option)라고 했다. 당장 주식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고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 정해진 가격을 지불해서 행사를 해야 내 주식이 되었다.


지금이야 상장도 했고 여기저기 알려지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그 회사의 주식을 연봉대신 주는 것이 싫었다. 싼 값이면 무얼하나, 팔 수가 없는데.


하지만 남편이 재직하는 동안 투자금을 야금야금 까먹으며 사업을 하던 회사는 기어이 매출을 내기 시작했고, 상장도 했다. 입사할 때 받은 스톡 옵션은 배 이상의 큰 돈이 되었다. 스톡 옵션을 받는 대신 원래의 연봉을 받아 저축이나 투자를 했다면 절대 그런 수익을 절대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연봉을 깎고 주식을 준 당시의 회사를 향해 절이라도 올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내 남편은 집에 오면 빤스만 입고 설거지를 하는 털복숭이 인간이고, 마누라가 애교를 부려달라고 하면 기꺼이 아잉 소리를 내는 100kg짜리 귀요미이지만 사회적으로는 꽤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다. 그는 기억력이 좋아 깜지 따위 쓰지 않아도 영단어를 외울 수 있었고 토익 시험 전날 토익책을 훑어 보는 것만으로 900점짜리 토익 점수를 받아왔다. 논리력이나 추론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살필 수 있고 가용 가능한 자원을 활용해 적절히 해결책을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는 남편을 잡아두고 싶어했고, 남편에게 지속적으로 스톡 옵션이라는 미끼를 던졌다.


남편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으나 상장 이후에 받은 스톡 옵션은 문제였다. 상장한 회사의 스톡 옵션은 남편이 처음 입사하던 때처럼 아주 낮은 가격에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상장 이후 받은 스톡 옵션을 행사할 때 필요한 비용은 무려 2억에 달했다. 맙소사! 2억이 누구네 고양이 이름이라도 되는 걸까? 당시는 아직 남편 회사의 주가가 오르기 전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돈이 없었다. 심지어 행사 가격이 정해져 있다는 건 그 사이에 주식 가격이 내려갔어도 여전히 그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닌가.


나는 손이 덜덜 떨리는 주식의 가격에 난색을 표했지만 남편은 일단 빚을 내서 스톡 옵션을 행사하고 바로 주식을 처분해서 빚을 갚거나 여차하면 행사를 포기하면 될 테니 일단 받아는 놓겠다며 회사의 제안을 쿨하게 수락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엄청난 강심장이었다.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주식이란 휴지가 될 수도 있지만 금덩이가 될 수도 있는 것이지 않은가. 처음 회사가 연봉을 깎고 주식을 줄 때도 이런 마음이었는데 결국 돈을 엄청나게 벌지 않았나. 당장 2억을 내라는 것도 아니니 일단 지켜나 보자. 그런 마음이었는데, 정말 잭팟이 터졌다. 주식 가격이 더 올랐고, 내 주머니에 10억이 생긴 것이다. 주식 행사 가격 2억 쯤이야! 얼마든 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다시 한번 스톡 옵션을 제시해준 회사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나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 않다.

주식이란 것이 대체로 그렇다. 내가 팔려고 하면 귀신 같이 값이 떨어지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회사 주식이 고점을 찍을 적에 주식의 일부를 매도했다. 그 돈으로 나는 행복을 사기 위해 애썼고,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동안 고점을 찍은 주식은 슬금슬금 아래로 내려왔다. 지금 자산은 한창 때의 반토막 정도가 되었다. 여기서 쭉 횡보할지 아니면 더 떨어질지 그도 아니면 예전의 기세를 회복할 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최근의 내 계좌 상태는 이렇다.


올해 초 다른 주식과 분리하기 위해 계좌를 옮겼는데, 계좌를 옮긴 후에도 얼마간 더 빠졌다.


남들은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마음이 아프다는데 나는 다행히 그렇지 않았다. 주식이 올랐을 때 덜 기뻐한 만큼 빠질 때도 덜 아쉬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한테는 4억이 있었으니까. 4억이라니, 매달 200만원씩 저축해도 16년이나 걸려야 겨우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닌가? 10억이든 4억이든 여전히 큰 돈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나를 짓눌러오던 돈에 대한 정체모를 불안과 부담이 사라진 것 같아 홀가분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여기서 끝이라면 그래도 꽤 괜찮은 마무리였을 텐데, 여전히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세금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는 세금을 잘 모른다. 회사에 다닐 때는 내라는 서류를 내고 써야 한다고 알려주는 빈 칸을 채워서 연말 정산을 했고, 프리랜서가 된 다음에는 나라에서 알려주는 자동 채우기 기능으로 종합소득세 신고를 했다. 그것이 힘들 때는 세무사 사무소에서 일하는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선배, 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ㅠㅠ] 라고 카톡을 보내면 선배는 [음, 잠시만요.] 라는 답장과 함께 뚝딱뚝딱 정답을 일러주었다. [제가 이렇게 이렇게 수정 신고 마쳤습니다. 먼저 하신 신고는 삭제하시면 됩니다.] 하는 대답과 함께 말이다. 정말 착하고 멋진 선배님이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나에게 생긴 주식 문제 역시 이 착하고 멋진 선배님이 상당 부분 해결해 주었다. 남편이 주식을 나에게 증여해 줄 때 증여세를 계산해 준 것도 이 선배였다. 선배 덕분에 나는 어렵지 않게 남편에게 주식을 증여 받았고, 한창 인터넷에서 10억 vs 배우자라는 투표가 유행할 때 내 남편은 10억이 아닌 나를 선택했군, 하고 흐믓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 인생은 쉽지 않고, 내가 증여 받은 주식은 일반적으로 시장에서 매수한 주식이 아닌 스톡 옵션이었기 때문에 증여세 뿐 아니라 근로 소득, 기타 과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증여가 마무리되고 시간이 흘러 증여 취소가 불가능해진 시점에서였다. 진짜로? 아직 처분하지 않은 주식인데 세금을 내야 한단 말인가?


긴가민가 하면서도 5월이 되어 선배에게 세금 처리를 부탁했고 어제 밤 늦은 시간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최악의 경우 증여 때문에 발생한 세금을 2억7천 정도 내야 한다고 했다. 작년에 처분한 주식 때문에 발생한 세금과는 별도의 세금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에게는 아직 처분하지 않은 주식이 남아 있을 뿐, 세금을 낼 2억7천의 현금 따위는 없다. 세금을 내기 위해 보유 중인 주식을 처분하면 그에 따른 세금을 또 내야 할 테고, 나에게 주식을 증여해준 남편은 내년에 건강보험료를 매달 수백만 원씩 내야 한다고 했다. 10억 대신 배우자를 선택한 대가가 지나치게 비쌌다.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면 가급적 배우자 대신 10억을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를 담당한 세무사는 스트레스로 식사를 잘 하지 못한다고 했다. 감사하지만 그러실 필요 없다고 전했다. 주식 가격이 떨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최악을 가정하고 불안에 떨던 나는 막상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자 기다렸다는 듯 차분했다. 세금을 내야한다고? 주식을 처분하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든 내야 한다면 내면 그만인 거지. 한여름 밤에 아름다운 꿈을 꾸었듯, 사이버 월급이 통장을 스쳐가듯 그렇게 나를 스쳐간 돈이라 생각하면 되었으니까.




비록 많은 돈을 써야 했고, 예전처럼 통장에 10억 넘는 액수가 찍혀 있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건 아니었다. 선배님은 마지막까지 세금을 조금이라도 덜 낼 수 있게 애를 써보겠다고 했고, 아직 행사하지 않은 스톡 옵션도 남아 있었다. 나와 남편은 직업 활동을 하기에 무리 없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어제 밤 나와 남편은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오늘 저녁 메뉴는 좀 별로였지 하는 투로 세금 이야기를 나눴다. 하하, 인생 참 쉽지 않구만. 그러게. 기쁠 때 마음껏 기뻐하지 않은 대신 아쉬운 일에 조금 더 무덤덤할 수 있는 건 우리 부부의 꽤 근사한 장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정했던 연재일에서 하루 늦어졌습니다. 혹시 기다리신 분이 계시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어느 날, 10억이 생겼다>는 다음 주 일요일에 올라올 11화를 끝으로 마무리될 예정입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으러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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