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먹기에 달린 일
큰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남편의 친구와 부부 동반 모임을 갔었다. 그 집에는 우리 집 아이와 태어난 날이 한 달도 차이나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아이에게 건넨 첫 마디를 아직도 기억한다.
너네 아빠 차는 뭐야?
늦은 저녁 산등성이에 위치한 낯선 밥집 앞, 파쇄석이 깔린 주차장에서였다. 남자 아이라 자동차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님을 닮은 영특함으로 차종을 줄줄이 외우던 그 아이의 반짝이는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대기업을 그만둔 뒤 연봉을 낮춰 이직한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남편의 친구는 잘 나가는 대기업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었고, 남편의 친구와 결혼한 언니는 잘 사는 집의 딸이라 물려 받은 재산이 꽤 있었다. 그 집 거실에서는 한강이 보였다. 큰 아이는 처음보는 또래의 질문에 뭐라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기만 했다. 당시 우리가 타던 차는 10년된 i30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 무시무시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이 어떤 아파트에 사는지, 부모님이 어떤 차를 타는지, 심지어는 부모의 직업이 무엇이고 연봉은 얼마쯤인지 알고 있고 서로 그것을 공유하거나 정도에 따라 급을 나눈다는 이야기였다.
세상에나, 어쩜 그럴 수가 있지? 놀라면서도 내심 남의 일이라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나는 수도권에서 꽤 떨어진 지방에서 살고 있으니까. 깡시골은 아니었지만 겨우 중소도시쯤 되는 곳에서 사니 재산이나 수입처럼 경제적인 문제가 아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릴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순진한 생각이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2년이 조금 지난 뒤부터 큰 아이는 궁금한 것이 많아졌다. 엄마, 우리 집은 얼마야? 엄마, 우리 집은 몇 평이야? 엄마랑 아빠 월급은 얼마야? 우리 집 통장에는 얼마 있어? 엄마, 우리 차는 뭐야? 큰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겁날 정도의 질문 세례였다. 아이가 돈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지 않다고 생각한 나는 돈과 관련이 없는 것만 골라 일러주었다. 우리 집은 40평이야. 작은 차는 i30이라서 이름이 '써티'고 큰 차는 카니발이라서 이름이 '니발'이야.
그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난 후 아이가 다시 조잘거렸다. 엄마, 우리 반 예쁜이는 아빠 월급이 500만 원이고 엄마 연봉이 6천만 원이래! 맙소사. 나는 얼굴도 모르는 아이 친구 부모님의 직업과 연수입을 몽땅 알게 되고 말았다. 아이의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아닌 또래 친구들 사이의 대화 거리였던 것이다. 그 순간 아이에게 우리 집 소득과 재산 규모를 말해주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겼다. 동네방네 우리 집 경제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얼마 뒤 나는 다시 고민에 빠져야 했다. 아이가 시무룩해진 것이다. 기운이 없는 아이를 구슬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의 생각에도 일리는 있었다. 지난 번 예쁜이네처럼 소득이 큰 아이들은 이미 동네방네 자랑하듯 부모님의 월급과 재산을 소문내고 매일 용돈을 오천 원씩 받아 씀씀이도 큰 반면 나는 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데다가 용돈도 용돈기입장을 쓸 때나 겨우 천 원 씩 주기 때문이었다. 피부과에 자주 드나들고 백화점 쇼핑을 즐기는 친구 엄마들과 달리 매일 집에 틀어박혀 똑같은 옷을 돌려 입는 나와 남편의 모습도 한 몫했을 것이다.
아이가 가난 때문에 기가 죽었을 즈음에는 이미 주식이 많이 올라 있었다. 게다가 연봉을 깎으며 이직했던 남편은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 받아 입사 당시에 제시 받은 연봉의 두 배가 훌쩍 넘는 연봉을 받고 있었고, 나 역시 코로나 특수로 작품이 잘 되어 남편에게 선물로 카니발을 사주었던 시기였다. 아이는 매일 원 없이 먹는 과일과 초록잎 채소들, 필요하다는 말에 냉큼 마련해준 수백만 원짜리 데스크톱이나 제 방에 놓인 모션 데스크 책상의 값어치를 알지 못했다. 아직 어린 아이에게는 직관적인 숫자와 친구들에게 자랑스럽게 사줄 수 있는 군것질거리가 더 반짝여보였던 것이다.
순간 아이가 어릴 때 들었던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파트 브랜드, 차종, 부모와 연봉과 직업을 공유하고 그에 따라 급을 나누는 아이들을 이런 지방 도시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고민 끝에 아이에게 우리가 그다지 가난하지 않음을 일러주었다. 여전히 정확한 액수를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소득분위표를 보여주며 우리의 위치가 어디 쯤인지 알려주었다. 아이의 얼굴이 금새 환해졌다. 뿌듯함, 기쁨, 자랑스러움 같은 감정들이 아이의 얼굴 위에서 춤을 추었다.
왜 다른 친구들처럼 용돈을 넉넉하게 주지 않는지도 설명해 주었다. 네가 필요한 것은 가격이 얼마든 사줄 수 있어. 돈이 없는 게 아니야. 하지만 엄마는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마구잡이로 전부 사주고 싶지는 않아. 가지고 싶은 걸 참고 그럼에도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서 용돈을 주는 거야. 필요하지 않지만 원하는 게 없다면 네가 돈을 모아서 사.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용돈기입장 쓰는 법도 알려주는 거고. 다행히 아이는 순순히 알겠다고 답했다. 아이는 고학년이 된 지금까지도 용돈기입장을 쓰고 용돈을 받는다. 다이소에서 모자를 사고, 로블록스에서 로벅스를 충전하기도 하면서 조금씩 쓰기도 했지만 결국 아이는 몇만 원을 모았고, 그 돈으로 로블록스의 주식을 샀다.
당연하게도 아이의 표정은 밝아졌다. '우리 집에 금송아지있다!'처럼 다소 뜬구름잡는 자랑스러움이었지만 아직 어린 아이는 그정도만으로도 다시 친구들 무리와 자신 있게 어울릴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유치원생이던 둘째는 이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자신 있게 외쳤다. "나한테는 안 말해줘도 돼! 나는 말해줘도 몰라! 그리고 혹시 내가 내 친구들한테 다 말해버릴 수도 있으니까 나한테는 안 말해줘도 돼!" 자기객관화가 뛰어난 어린이였다.
물론 구체적인 집안의 경제 사정을 계속 감출 생각은 없다. 다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 돈의 개념이나 액수를 지금보다 또렷하게 체감할 수 있고, 친구들에게 가진 돈에 대해 떠벌리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자제력이 생겼을 즈음 이야기를 해줄 예정이다.
그렇게 아이와 돈에 대한 갈등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큰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다시 불쌍해진 건 내가 데드리프트를 본격적으로 잘 해보고자 스트랩을 사고, 인테리어를 마무리하고, 집에 사람을 들여 집안일을 부탁했을 즈음의 일이었다.
엄마, 친구들이 나보고 불쌍하대.
아니, 도대체 왜?
이모가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김치찌개에 계란말이를 만들어줬던 저녁의 일이었다. 계란말이를 집어 케찹에 찍다가 아이의 그 말을 듣던 순간의 감정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돈을 수단 삼아 행복을 사는 연습을 하던 때였기에 아이의 말이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까닭을 묻는 나에게 아이가 해준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친구들에게 집에 이모가 와서 저녁밥을 해준다고 했더니 아이들이 "그럼 너는 엄마가 해준 밥을 못 먹는 거야? 불쌍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다며 새삼 시무룩해졌다. 엄마가 몸이 약하고 솜씨가 없어 원래도 요리를 해준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했다. 어린 아이들이 또래친구들과의 대화에 쉽게 휩쓸린다는 게 정말이긴 하구나 싶었다.
그 날 나는 아이에게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친구가 말해준 것처럼 매번 엄마가 해준 밥 대신 남이 해준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슬프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대신 이모는 엄마보다 다양한 반찬을 해줄 수 있으니 좋은 점도 있다고, 엄마의 밥은 이모가 오지 않느면 주말에 먹으면 된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모가 해준 밥과 엄마가 해준 밥 중에 더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선택지도 있는 것이라고도 말해주었다. 더불어 돈이 많은 건 언뜻 좋아보이지만 지금처럼 안 좋은 면을 보려고 하면 얼마든 안 좋은 면을 볼 수도 있는 법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나는 근심에 잠겼다가 서서히 밝아지는 아이의 얼굴에서 로또처럼 큰 돈을 품에 안고서 우울해했던 지난 날의 나를 보았다.
예전에 트위터에서 걸그룹 아이브의 맴버인 원영의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영상에서 원영은 바로 앞 사람이 빵을 다 사가는 바람에 자신이 새로 갓 나온 빵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나의 편이라고 말했다. 그 예쁜 얼굴로 뿌듯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보는 모습이 얼마나 예뻤는지 모른다. 세상은 생각에 따라 다른 색으로 반짝인다는 걸 안다. 하지만 막상 눈앞에 일이 닥치면 온 세상이 잿빛으로 변해버리는 내게는 원영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내 아이는 나를 닮았다. 좋은 일이 생겨도 우선 덜컥 겁부터 먹는 점이 그렇다. 최신형 아이폰을 사줬지만 친구들은 다 갤럭시인데 혼자 아이폰이라는 이유로 시무룩해지는 점이나, 집안일 해주는 사람을 부를 만큼 경제적으로 여유로운데 엄마 밥을 못 먹는다는 이유로 시무룩해지는 점을 보면 어쩜 그리 일의 안 좋은 면을 먼저 보나 싶으면서도 엄마인 내가 그러니 어쩔 수 없겠지 싶다. 미안하기도 하고 속이 상하기도 한다. 오늘 이렇게 다독여 놓았지만 아마 며칠 후면 내 아이는 또 다시 창의적으로 시무룩해져서 돌아올 것을 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정답이 없다. 동전에도 앞과 뒤, 그리고 좁은 옆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 일에는 완전한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만 존재하지 않는다. 알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극복해야 했다. 내가 돈에 대한 두려움을 털어내고 돈을 수단 삼아 행복을 그러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 자신의 행복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내 아이들이 세상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떨치고 일의 좋은 면을 볼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돈으로 행복을 사겠다.
쉬워보이지만 막상 닥치니 쉽지만은 않았던 일을 위해 나는 분투해야했다.
이때처럼 아이의 고민이나 나의 걱정 같은 자그맣고 사소한 문제가 내가 넘어야 할 산의 전부였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또 다시 시련을 맞닥드려야 했다. 이번에는 정말이지 골치 아프고 거대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들이었다.
세금, 스톡옵션 행사 가격, 그리고 주가 하락의 환상적인 콜라보로 순식간에 큰 돈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