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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Feb 15. 2024

분실

잡문집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됐다고 우산을 또 잃어버렸다. 행동반경이 그리 넓은 편도 아니어서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되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누워있는 우산을 주워들거나, 직원에게 분실물이 있는지 물은 뒤 창고 앞 꽂혀있는 무수한 우산들 사이에서 내 것을 찾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뿐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두고 갔다고 말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땅한 듯 잃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찾기 위해 되돌아간다는 선택지에 마음이 가지도 않았다. 남의 일인 양 바라만 보는.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우산이 셀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게 그것이 있었다고. 그리고 이제 없다고. 찾을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영영 잃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유가 빈약하다는 너무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별안간 저버리고 마는 나는 한편으로 선물 받은 상자의 포장지조차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과 버리지 못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그러다가 잃어버리고, 잃어버렸구나 한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에 잃어버린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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