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됐다고 우산을 또 잃어버렸다. 행동반경이 그리 넓은 편도 아니어서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되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머물렀던 자리로 돌아가 바닥에 누워있는 우산을 주워들거나, 직원에게 분실물이 있는지 물은 뒤 창고 앞 꽂혀있는 무수한 우산들 사이에서 내 것을 찾아 들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뿐일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 안 됐다. 두고 갔다고 말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땅한 듯 잃어버리고 싶은 건 아니었으나 찾기 위해 되돌아간다는 선택지에 마음이 가지도 않았다. 남의 일인 양 바라만 보는. 그런 식으로 잃어버린 우산이 셀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내게 그것이 있었다고. 그리고 이제 없다고. 찾을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아 영영 잃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유가 빈약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별안간 저버리고 마는 나는 한편으로 선물 받은 상자의 포장지조차 제대로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다. 소중히 여기는 것과 버리지 못하는 건 다르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번. 그러다가 잃어버리고, 잃어버렸구나 한다. 버리지 못하는 것들은 결국에 잃어버린다. 무언가 단단히 잘못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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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집,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에 보태어질 작은 증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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