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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Dec 23. 2020

의미와 나이

약을 잘 먹으면 딱히 죽지 않아도 될 거라는 생각이 들 뿐이지. 부추를 먹을 땐 부추를 경배할 뿐이라던 어떤 이의 말을 상기해. 이제 연락하지 않는 사람의 소식을 듣는다. 죽고 싶어 한다. 마음을 누른다. 스물일곱의 여름에 꾸었던 그 꿈은 결국 기억해내지 못했다. 심정만 남아 있다. 관습적인 사랑에 의문을 품는다만 그 의문이 존재를 겨누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이 없지만 잘못하는 것들. 잘못하고 있는 것들. 창피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십 대의 마지막 겨울을 앞두고 생경한 기분이 든다. 주식이라거나, 자기 차를 운전하는 또래의 사람들. 의미는 없다. 의미는 없어.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고. 작가님이라는 말을 들을 때 견딜 수가 없어진다. 다만 견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역할 수행이 버겁다고 하지만 나는 사실 어느 역할도 제대로 해낸 적이 없다. 동생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 내가 동생을 아끼기 때문이지. 그럼 이야기하는 것들은 뭐야? 문장 속 이들은 왜 등장하는 거야. 의미. 의미는 없다.

지하철역에서 노숙하던 친구를 마주치고부터 아버지는 현금을 챙겨 다닌다고 했다. 모발이식을 했다며 환하게 웃는 그녀를 본 뒤로 나는 헤프게 웃는 이들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공연을 보러 와주었던 친구를 업고 계단을 오르려다 나동그라진 후로 시설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어쩔 수 없다, 는 말에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랬다. 무엇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은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한다.

자요, 라고 물었는데
자유, 라고 들었다는 그는 정돈되지 않은 집에 짐처럼 얹어져 있었다. 그는 스물세 살.

여기까지만 하자. 더 들여다보지 말자. 깨달음을 위해 타인의 서사를 만지작대는 이는 도륙을 내야 할 것이다. 함부로 연민을 품어서는 안 된다. 깨달음 같은 걸,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커서 저런 사람이 되면 안 돼, 말하는 사람을 비웃으며 자신의 딸아이에게, 너는 커서 저런 사람들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 말하는 여자에 대해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 저런 사람들. 시혜의 시선이 다를 게 없다.

어디에도 일하는 사람이 있어. 쉬러 간 곳에도. 죽으러 갔던 곳에도. 울며 걷던 길거리에도. 죽은 이가 잠든 곳에도. 온 세상이 십 초만 쉬자고 합의를 보아도 비상 요원들은 분주할 거야. 언제까지고 반복될 거야.

살아있으니까 의미를 만들어 나가. 산 자들의 몫이야 그건. 떠나게 된다면 편지를 남겨주렴. 사랑했던 이들을 위해 다정한 말을 적어두렴. 그리워할 수 있게 네 모습을 찍어두렴. 돈이 조금 생기면 영정사진을 찍어두어야지. 그건 기억되고 싶은 나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별 의미는 없다. 이제 서른이 된다. 다를 건 없다. 나를 다루는 일에 정진해야 할 따름이다.

첫봄이 올 거고, 나는 내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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