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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Feb 24. 2021

화성으로 가는 나사의 다섯 번째 탐사선이 발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랜 기억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기억을 기억하면서 기억에 대해 생각도 해 보았구요. 기억은 왜 온전히 기억되어야만 할까요? 각자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적절하게 어긋난다면 조금 뒤엉키거나 뒤틀린 채 시절이 되어서, 그것이 되려 삶에 보탬이 된다면 그것으로 된 건 아니구요? 물음표를 붙이는 것이 어색합니다만 어설픈 질문을 필요로 하는 시기입니다. 명백한 혼란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질문들이 끝내 답을 찾지 못하고 만족스레 웃으며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는 일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울지 않아도 불지 않아도 슬슬 알아야 합니다. 명확한 기억을 부러 틀리게 적은 적이 있습니다. 잊을 일 없을 거라던 시절이 지나고 그다음과 그다음의 시절이 지나 그다음 시절에 이르렀을 때 나는 잊었고. 그제야 누구도 알 리 없는 우리의 이야기를 들춰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기억은 나만의 것이 됩니다.

     

누구도 모르게 떠나 이름 없는 행성에 당도하고 싶어요. 이곳의 존재를 혼자만 안 채로 쓸쓸히 여생을 보다가 죽어가고 싶다. 분해된 내 몸은 생태계를 이루고요. 언젠가 이곳은 발견될 것입니다. 세계는 새로운 생명체의 발견으로 떠들썩해질 것입니다. 어딘가에 결국 있었다며 감격해 술잔을 기울일 것입니다. 본디의 모습이 나로 인해 오염되었고 그래서 결국 이곳에 본디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나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적절하게 어긋난 기억 속에서 모두가 행복할 것입니다.     


화성으로 가는 탐사선 ‘퍼서 사이런스’가 발사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함께 기대하고 바라는 광경을 세계인이 둘러앉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정말이지 신비롭고 다정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카운트다운이 시작됐습니다. 셋, 둘, 하나. 하늘을 찢는 소리를 내며 탐사선이 솟아올랐습니다. 추락하지는 않을까. 폭발하면 어떡하지. 걱정과 설렘이 부산하게 내 몸을 휘돌았습니다. 고작 삼 분이 지나, 탐사선에 설치된 카메라에 검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부드러운 곡선도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발사를 도운 부품들은 몸체에서 분리되어 천천히 떨어져 나갔습니다. 천천히. 천천히.


어느 말은 다정하게, 어떤 날은 참으로 모질게 쏘아 보냈습니다만 제대로 도착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무사히 착륙한 적이 있습니다. 언젠가는 당도했지만 무언가 망가진 채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진탕 오염되었으므로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탐사선은 7개월간 5억 킬로미터를 비행해 내년 2월 18일 화성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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