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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Mar 04. 2022

차별하는 마음

이상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어느 잘못은 백번이고 뉘우칠 듯이 굴면서,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기억에게는 매몰차잖아. 그날의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던 일이었다고 말할만한 때가 있고, 시시각각 선명한 입장을 세우고 살 수도 없는 거겠지. 어느 정도의 비겁함과 나약함은 누구나 갖고 사는 거잖아. 그렇지만 보고, 읽고, 겪으며 습득한 모든 수단과 깨달음을 던져버리고 그저 자신에게 끝나지 않을 저주를 퍼붓는 때가 있어. 그르쳤다는 사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는, 나로 인해 나와 무관한 날들 앞에서는. 전부 다시 없을 마음과 이야기인데 이렇게 차별을 하고 말아.


언제나 다정을 잃지 않던 친구에게서 어느 날 울면서 전화가 왔을 때, 나는 참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 일을 하고 있었는데도 얼른 통화가 끝나기를 바랐어. 곧 연락하겠다고 말하고는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다시 전화를 걸었지.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죄책감이라고 말하고 보니 내 안에서 미안함과 죄책감은 꽤 다른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네. 미안함에서 상처받은 상대의 얼굴을 떠올린다면, 죄책감은 고개 숙인 내 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 이건 마음보다도 명백함의 영역에 가깝구나. 판결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고.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죄책감이라고 쓴 내가 좀 징그러워.

밝은 목소리로 금방 전화를 받은 친구는 이제 괜찮다며 웃었어. 몇 해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별일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아. 하지만 그날 나는 나도 모르는 새 어느 분명한 선택을 한 거였지. 때로 마음은 그 자체로 결정이나 답 같은 게 되어서는 확고하게 쏘아져 철저하게 박힌다. 그러고 나면 어떤 결과든 책임을 져야만 해. 이때는 그저 운이 좋았던 거고. 그런데 좋았던 게 정말 맞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혹은 벌어지고 있는지 내가 아직 모를 뿐일 수도 있겠어.


열렬한 짝사랑에 빠졌다는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짝사랑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약속을 잡았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얼굴 볼 수가 없어서 그 이야기를 굳이 들으러 가겠대. J는 오랜 시간 끝에 그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던데, 정작 가장 큰 상처를 받았을 그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더라. 미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나.


당연하게도 공정하지가 않아.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되니까 마음이라지.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공정하지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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