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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Dec 06. 2023

장소에서 오는 그리움

 나는 원래 쉰다고 해도 쉬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고 해도 바삐 살며, 일정이 비지 않는 사람이었다. 전날의 게스트 하우스의 첫 파티는 대환장이었다. 술은 조금만 마시고 싶었지만, 어느새 취해있었다. 그로 인한 숙취로 아무것도 안 하기로 결정했다. 친절한 게스트 하우스 직원 덕분에, 게스트 하우스의 다른 식구들과 같이 해장을 했다. 이후에는 조용히 침대에 누워 한숨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고 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꼭 해야만 나의 시간들이 의미 있어질 것만 같았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쉼이자 사색이었는데, 막상 완벽한 타이밍에서도 맘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마음이 괜스레 아리고, 애달픈, 느지막한 오후였다.



 그래서 바로 옆에 있는 큰 카페 겸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조용히 책도 읽고 글도 쓸 생각이었는데, 다들 식사를 위해 오는 분위기였다. 이미 들어온 이상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식사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자리에 앉아 디저트를 시켰다. 입맛이 당기지는 않았으나, 잠시남아 자리에 앉아있기 위한 값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글을 쓰며 이 불편한 마음의 근원지를 생각해 보았다.


 무엇이 그리운 걸까? 바닷소리에, 차가운 밤바람에, 오늘은 왜인지 마음이 아리고 어딘가 불편하다. 내가 놔두고 온 나의 일상이 괜스레 그리워진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리워하는 건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생의 첫 이별을 겪었던 때, 나는 그 사람과 같이 갔던 놀이터를 가려고 30분을 걸어 공원에 갔다. 다시간 그 자리는 같은 곳이었지만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분명 그 사람과 함께일 땐 별이 쏟아질 듯 보였고, 놀이터는 마치 자그마한 궁전처럼 느껴졌는데, 이별 후 낮에 다시 찾아간 그 자리는 공허했다. 날이 무척 추워서 공원에는 사람도 없었고, 무엇을 찾고 싶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찾던 것은 더는 그곳에 없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잠시 갔다 온 것처럼 그 공간은 다른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서 울었던 것 같다. '여기가 아니야. 내가 찾는 게 없어.'라고 말하며 서럽게 말이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생에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었다. 우연찮게 전 남자친구와 같이 갔던 장소나 지인들과 같이 지나갔던 장소를 보게 되었다. 그 장소들이 하나같이 쓸쓸해 보였다. 하나같이 그리운 인연들이 수두룩 생각나며 마음을 아리게 한다.


당신, 라일락꽃이 한창이요

이 향기 혼자 맡고 있노라니

왈칵, 당신 그리워지오



당신은 늘 그렇게 멀리 있소

그리워 한들 당신이 알리 없겠지만

그리운 사람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족하오



어차피 인생은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 거

떨어져 있게 마련



그리움 또한 그러한 것이려니

그리운 사람은 항상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련가



당신, 지금 이곳은

라일락 꽃으로 숨이 차오


라일락/조병화


 그립다고 한들 내 그리움을 알리 없는 친구들과 옛 인연들. 같은 장소에 간다고 한들 그때와는 같을 수 없기에. 장소에서 오는 그리움은 한참을 나를 울렸다. 제주에 도착 후 처음으로 맞이한 사색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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