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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Nov 22. 2023

홀로 마주한 바다

 셋째 날은 지인과의 카페 일정을 마지막으로 혼자가 되는 날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을 하고 몇 분 후 짐옮김이 서비스에 맡긴 짐이 도착하였다. 게스트 하우스는 6인실이었으며, 침대에 들어가 문들 닫으면 작고 아늑한 방이 되었다. 침대 옆에는 아주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창문 밖으로 작지만 바다가 보였다. 발견 즉시 옥상으로 호다닥 올라갔다. 제주도 도착 후 내내 바다를 못 보다가 3일째가 되어서야 마주한 바다는 에메랄드빛이었다. 바다에 가까이 가고 싶어서 작은 가방만 챙겨 바다로 갔다. 해변가가 아니다 보니 발을 담글 수는 없었지만 바닷바람이 바다의 색만큼이나 청명했다. 바다를 보니 마음이 살짝 아려왔다.



 제주도는 나에게 다양한 감정을 안겨준 장소이다. 따돌림을 당하던 시절의 수학여행 때, 방 안에서 친구들이 같이 자길 원하지 않아 옷장 속에 꾸겨 잘 뻔한 적이 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우도에서 사진 찍고, 산책하며 시간을 보낼 때, 나는 홀로 절벽을 바라만 보아야 했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 엄마와 온 제주도 겨울은 꽤나 근사했다. 전 남자친구와 함께였던 제주도는 사랑스러웠고, 이별 후 친구의 부름으로 달려간 제주도 겨울은 따뜻한 붕어빵 같은 위로가 되어줬다. 어느 때는 썸의 시작과 끝이기도 했던 장소였다. 홀로 마주한 바다에는 세찬 바람이 불었다. 오만가지 감정이 심장을 뚫고 지나갔다.



 청승을 뒤로하고 일정을 짜기로 했다. 게스트 하우스에 혼자 방문은 처음이라 첫날 저녁엔 파티를 신청했다. 파티까지는 시간이 한참 시간이 남아있었다. 숙소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소품샵 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여 가보았다. 혼자가 되고 결정한 첫 일정이었다. '보통의 오늘'이라는 소품샵은 예약을 하면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다양한 소품과 필름과 카메라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무엇보다 독특한 매력은 제주도 안에 있는 작가님들의 글이나 사진들로 만든 작품들을 살 수 있었다. 어떤 것은 엽서로, 어떤 것은 달력으로 또는 책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다 마음에 들었지만 처음 방문한 곳에서 모든 돈을 탕진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에 드는 앨범 하나를 구매하여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여기다가 제주도 사진 뽑아서 넣어놔야지!' 기념품은 안 살 생각이었지만, 너무 마음에 쏙 드는 사치였다. 그리고 작가님들이 찍은 사진으로 만든 탁상 달력을 샀다. 멋진 인테리어 소품 겸 유용한 기념품이라 생각되어 엄마의 선물로 드리려고 구매했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첫 일정을 호다닥 결정한 것치곤 완벽한 선택이었다. 사장님들도 너무 친절하셨다. 혼자 왔다니 더 신경 써주시고 그냥 있다가도 된다며 환영해 주심이 따뜻했다. 오랜만의 근황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소품샵에서 다른 것으로 탈바꿈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따스운 마음씨의 가게라면 어떤 것이든 잘하실 거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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