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숙소 이동의 날. 짐 옮김이 서비스를 이용했기 때문에 뚜벅이로 여행을 가도 가벼운 짐만 가지고 이동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괜한 사진 욕심에 잘 사용도 하지 않은 DSLR, 미러리스가 든 카메라 가방과 혹시 카페에 들어가서 읽을지 모를 책이 든 가방을 양옆에 하나씩 메고 길을 나섰다.
숙소만 정해진 무계획 여행이다 보니, 일정을 숙소에서 나오며 정해보았다. 서쪽으로 더 가기 전에 곽지 해수욕장을 보고 싶어서 30분을 아침 산책 겸 걸어갔다. 30분의 길이 고단하기보다는 제주도민이 된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들뜨게 만들었다.
길을 걷다가 사진 찍기 좋은 곳이 나오면, 짐을 내려놓고 삼각대로 사진을 찍었다. 물론 길을 걷다 보면, 홀로 사진 찍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었다. 순간 고민을 많이 했다. 저분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면 좋아할지 아니면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았다고 생각을 할지. 그래서 거리를 두고 조용히 시간을 주었다. 그 길을 지나가야만 하는 나였지만, 시간은 많았다. 10분가량 열심히 혼자 사진을 찍고 확인하기를 반복하시더니, 다시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는지 가볍고 통통 튀는 발걸음에 몰래 기다려주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성격 급한 내가 기다림의 미학을 조금 배웠달까?
원하던 곽지해수욕장을 잠시 보고 버스를 타고 한참을 이동했다. 제주도에 홀로 와서 대단한 액티비티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접어두었다. 그래도 전동바이크는 타보고 싶었다. 전동 바이크를 타면서 달리는 해안도로의 풍경은 애니메이션에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지나가면 보이는 풍경에서 멈춰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어차피 다시 같은 길을 걸어야 했기에 굳이 멈춰 세우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꼭 사진을 찍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나중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그 장소가 나와서 아직도 기억에 남고 아쉽다.
나중에 걸어가며 알게 된 사실은 그 길은 마라톤 코스인 것이었다. 카메라 가방과 책가방을 들고 마라톤 코스를 걷는데도, 마주하는 풍경이 하나같이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이는 풍경이 마치 영화의 장면이 하나하나 넘겨지듯 모두 아름다웠지만, 그중에서도 최고의 장면을 뽑자면 언제 쓰였던 건지 모를 버려진 배 한 척과 바다의 풍경이었다. 나는 잠시 서서 그 배가 활발히 쓰였을 때를 상상해 보았다. 나름 정성스레 페인트를 칠한 배가 예쁨을 받으며 바다로 나갔을 적을 그려보다. 시간이 흘러 지금 바다만을 먹먹히 바라만 보는 배가 퍽 쓸쓸해 보였다.
그렇게 두 번째 숙소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다음화에 계속..
Tip. 서쪽에 갈 일이 있다면, 신창 풍차해안도로를 방문하는 걸 추천합니다.
신창풍차해안도로 쪽에 전기자전거를 탄다면, 풍경 좋은 곳에서 구경+액티비티+사진을 건질 수 있습니다. (전동바이크는 면허가 있어야 해요.) 액티비티를 안 하더라도 산책로로도 너무 좋으며, 여기는 야경명소 이기도 합니다.
얕게 깔린 구름이 있을 때가 많아서 완벽한 일몰을 보기 쉽진 않아도 구름이 있어도 그 풍경마저 아름다운 곳이니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