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게스트 하우스 + 2년 후 이야기
계획형 인간인 나지만, 변수가 많은 뚜벅이 여행에서 계획을 지켜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숙소만큼은 정했다. 당일마다 숙소를 정해서 가는 P친구들이 존경스럽지만, 아무리 계획을 안세우려해도 숙소만큼은 정해져야 안심이 되었기 때문이다. 북쪽에서 시작해 서쪽을 쭉 훑고 서귀포까지 갔다가, 다시 제주시로 올라오는 경로정도로 숙소를 잡았다.
게스트 하우스를 정할 때 한 가지 규칙을 세웠다. 각각 분위기가 다른 숙소로 정하기로 말이다. 첫 번째 숙소는 젊은 분위기에, 술을 많이 마시는 파티를 하는 숙소로 정했다. 그리고 지금 소개할 두 번째 숙소는 시골집 분위기에 도란도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아침 산책을 하는 숙소이다. 마지막 숙소는 내내 바다만 보러 다녔으니 불멍이 가능한 서귀포시 호스텔로 정했다.
앞서 글에서 소개한 서쪽 해안도로를 쭉 걷다 보니, 시골 분위기가 폴폴 나는 집들 사이에 숙소가 나왔다. 숙소 이름은 언니네 시골집이지만, 남자 사장님이 나와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숙소 안내사항을 전달해 주셨는데, 여기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과음금지, 11시 이후로는 외부에 나갈 수가 없다는 규칙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이 조용하여 게스트들이 시끄럽게 도로를 활보하면 근방에 사시는 어르신들의 생활에 폐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방명록을 쓰고 나오니, 숙소에서 아침 산책 때 사진을 찍어주시는 작가님이 말을 거셨다. "일몰 예쁜 곳으로 사진 찍으러 갈 건데, 혹시 같이 가실래요? 숙소 저녁식사 전에 올 계획이고, 제 차 타고 이동할 거예요. 다른 게스트 2분도 가시기로 했어요." 거절할 이유가 단연코 없었다. 사용할 줄도 잘 모르는 짱돌 같은 DSLR을 들고 숙소를 나섰다.
이때 웃긴 포인트가 2가지 있었는데, 열심히 걸어서 갔던 길을 차를 타고 되돌아가보니 신창풍차해안이었다. 거의 1시간을 걸었던 길이었지만 차를 타니 10분도 안 걸렸다. 허탈하기보단 오히려 즐거웠다. 차를 타고 금세 지나가면 볼 수 없었던 풍경을 나는 보았고, 사진작가님과 다른 일행 분들과 다시 왔기 때문에 혼자여서 못 찍었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작가님이 내 DSLR로도 멋진 풍경을 찍을 수 있게 살짝 알려주셨다. 이런 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두 번째 웃음 포인트는 나포함 총 3명의 게스트의 옷 색깔이 깔맞춤이었다. 마치 팀으로 온 일행마냥. 2명의 남자분들이 친구끼리 여행을 오셨는데 때무침 둘의 옷이 회색 검정이었고, 나도 그러했다. 옷이 깔맞춤인걸 알아본 것은 작가님이셨다. "아니 이 친구들은 셋이서 옷을 맞춰 입고 나오셨나요? ㅋㅋㅋㅋ 셋이 똑같은 색이에요." 그러자 두 친구들은 질색을 하며 투닥거렸다. "왜 나 따라 입었어. 커플로 보이잖아." "나 아까부터 이렇게 입고 나왔거든, 내 옆에 붙어있지 마" 그렇게 나는 그 둘 사이에 서서 걸었다. 이게 뭐라고 이 작은 우연이 웃음을 주었다.
신창풍차해안에서 돌아와 저녁 식사를 먹을 시간이었다. 원래 이 게스트 하우스의 최고 자랑 중 하나는 사장님이 요리하시던 분이다 보니, 저녁 식사로 나오는 한상차림이 유명하다. 다만, 내가 갔던 시기는 2022년도 코로나로 아직 마스크를 벗을 수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각자 음식을 시켜 먹는 방식으로 바뀌어있었다. 이런 내용을 알게 된 것은 식사시간 때 만난 또 다른 남성 게스트 덕이었다. 그분은 엄청난 하이텐션과 오디오가 비지 않는 성향이었다. 여행을 자주 다니셔서 제주도부터 몽골까지 다양한 여행 정보가 넘쳐나는 분이었다. 나를 포함한 총 4인이 나누는 대화가 도란도란 이어졌다. 맛있는 음식과 포근한 대화가 하루종일 걸어서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주는 듯했다.
다음날 아침 산책을 진행한다는 것을 듣고 우리 넷은 고민을 했다. "우리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요?" 그러자 하이텐션의 남성분이 "이건 꼭 가야 해요. 피곤하면 제가 깨워드릴까요?" 그리하여 우리는 다 같이 아침 산책을 신청하고 11시 전에 아주 잠깐 밤바다만 보고 들어와서 취침했다.
아침에 못 일어날까 봐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모두 제시간에 나와서 산책을 나섰다. 여기 게스트 하우스의 또 다른 장점이 나오는데 바로 사진이다. 작가님이 데리고 가시는 사진 스팟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영화 속에 나오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심지어 사진도 당일에 전달해 주셨다.
산책을 다녀와서 별 계획이 없던 나, 차는 없지만 정보가 많은 하이텐션 남성분, 차는 있지만 별 계획은 없던 두 남성분. 이렇게 4명이서 뜻밖의 일행이 되어 여행을 다녔다.
다음화에 계속..
그 후 2년 뒤 현재
2024년 올해 6월 2년 만에 언니네 시골집을 재방문했다. 뭔가 색다른 곳 말고 익숙한 곳으로 가고 싶어서 만족도가 높았던 언니네 시골집을 다시 방문했다. 시골집의 따스한 분위기와 포근한 숙소, 대부분이 그대로였다. 몇까지 바뀐 것이 있다면, 작은 사장님이 계셨다. 모닥불을 피워달라고 부탁하니 흔쾌히 해주시는 친절한 작은 사장님. 2년 전에 LP가 있어서 관심을 가지자, 듣고 싶냐 물으며 기꺼이 턴테이블을 틀어주셨던 큰 사장님. 그들의 친절은 데칼코마니를 이루었다.
재방문한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가 지나가고 다시 한상차림을 하기 때문이었다. 한상차림은 역시 대박이었다. 올 가을쯤 이자카야 형식으로 변신을 해보려 한다기에 기대 중에 있다. (물론 또 갈 것이다.)
혼자 아침 산책을 하면서 생각에 잠겼다. 비가 조금 왔지만 고즈넉한 분위기도 사랑스러웠다. 고작 2년이 지났는데, 많은 것이 변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그 자리인 것들이 있었다. ‘2년 동안 나 뭐 하고 살았지?’ ‘그때는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기분이 들었지?’ 숙소 앞바다에 사람 얼굴 옆 모양과 고래 모양의 섬이 변함없는 모습이 날 달래주는 기분이 들었다.
만약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싫고 포근한 시골집의 느낌과 맛있는 음식, 아침 산책과 예쁜 사진을 원한다면 적극 추천하는 게스트 하우스다.
+ 큰 사장님께 맛집을 여쭤보면 이곳저곳 알려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