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쪽에서 남쪽으로
마지막 나 홀로 지낼 숙소는 서귀포시에 있었다. 이번 숙소는 호스텔로 꽤나 많은 인원이 숙박할 수 있는 수용량을 가지고 있었고 저녁엔 불멍을 한다.
이전 숙소인 언니네 시골집에서 다음 숙소까지는 서쪽의 해안을 쭉 따라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됐다. 문제는 숙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 20분을 걸어서 배차 간격을 또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겐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기에 여유롭게 기다릴 수 있었다. 오히려 동네 골목골목을 지나면서 버스정류장까지의 집들이 되려 제주도에 있다는 것을 계속 상기시켜 주었다. 여행하는 기분이 지속되어 좋았다. 짐 옮김이 서비스를 신청해서 몸만 기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힘든 점을 꼽자면 뙤약볕에 피부가 타는 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화장도 잘 안 하고 선크림도 자주 안 바르던 타입이었다. (최근엔 노화가 무서워지기 시작하여, 선크림은 필수로 바르고 다닌다.) 사실 20분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는데, 걷는 도중에 그늘도 없는 길이다 보니, 피부가 탄다는 딱 하나의 단점이 있었다. 그래도 고요한 거리에 홀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20분 정도를 기다리니 버스가 왔다. 해안도로를 쭉 도는 버스를 내내 타고 다녀서, 뚜벅이 여행이어도 해안을 계속 볼 수 있었다.
숙소 입실까지 시간이 떴기에, 중간에 내려서 사계해변을 보기로 했다. 제주도 해변은 사실 각각의 매력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신만의 매력을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는 게 사계해변이 아닐까 싶다. 버스에서 내려 또 15분을 걸었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고 아침 겸 점심으로 카페를 갔다. SNS에 바다가 예쁘다는 곳으로 갔는데 카페 앞이 바로 사계해변이라는 것은 나중에 카페에서 나와서 알았다.
뷰스트라는 카페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도 있었고, 테라스에서 바다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혼자가 된 나는 약간의 허전함과 고독함이 느껴졌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세상에 나 홀로 이방인이 된 것 같은, 모험을 하는 기분도 들었다. 혼자 있다 보니 사진을 찍기 어려운 것은 아쉽긴 했다. 이 날 찍은 사진에는 풍경만 담겼다.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찾으려고 보니, 짐 옮김이 서비스로 주인을 기다리는 케리어가 어마무시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와는 달리 호스텔에 수용인원이 훨씬 크다는 걸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그리고 여행 8일 차가 되면서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잠시 낮잠을 잤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피로가 쌓였었기 때문에 식욕도 없었다. 저녁때쯤에 간단히 김밥을 먹어야지 다짐했는데 웬걸 하늘이 이렇게 맑고 깨끗할 수가 없었다. 서쪽에 하루 더 머물렀다면 완벽한 일몰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날이었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몸은 피곤하고 머리는 아프지만, 최대한 해안 쪽으로 걸었다. 모르는 지역에 뚝 떨어져서 그냥 지도를 켜고 이쯤이면 바다가 보이지 않을까 싶은 곳으로 무작정 걸었다. 새연교라는 다리가 있길래 걸어갔고, 예상은 적중했다. 피곤함을 무릅쓰고 일몰을 보러 가길 잘했다. 결렬한 색을 띠며 지는 해가 오늘 하루도 잘 보냈는지 인사하고, 내일 보자고 하는 것 같았다. '일몰과 사진 찍기'는 여행에서 하고 싶던 것 중 하나였지만, 급하게 나온 터라 삼각대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대충 일몰과 셀카 몇 장 찍고 만족했다. 한참을 일몰을 구경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서귀포시에 김밥 맛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2줄 이상 사야 한 다고 했다. 2줄을 먹을 만큼 배가 고프진 않아서, 근처 양대산맥을 이루는 다른 김밥을 샀다. 숙소에서 주는 웰컴 드링크 한잔과 불멍을 감상했다. 불멍을 보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자. 잠시 뒤 다양한 사람들이 한 명씩 오기 시작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