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원래 계획에 없던 아이였다. 딸을 가지실 생각이 원래 없었으며, 아이는 하나로 족하다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어느 날 한 번은 엄마가 감기증상을 보여 약을 드셨는데, 알고 봤더니 나를 임신을 하셨던 것이다. 피임도 하셨기 때문에 임신일리 없다 생각하셨고, 컨디션이 안 좋아진 것으로 여겨 당연히 감기인 줄 아신 것이다. 뒤늦게 임신인 것을 깨닫고 찾아간 산부인과 2곳에서는 나를 지우라고 하셨다.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사라졌지만,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아들이 귀하던 때였다. 우리 집에는 이미 오빠가 있기 때문에 의사들은 조용히 엄마에게 이렇게 말하셨다고 한다.
의사 : "혹시 자녀가 아직 없으신가요?"
엄마 : "아니요. 아들 하나 있어요."
의사 : "그렇다면 낙태하시는 게 어떨까요..? 아들도 있다고 하시고, 약을 드셔서 확률상 자폐아가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엄마의 인생엔 정말 딸은 생각지도 않았지만 왜인지 나를 낳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만약 내가 자폐아로 태어난다고 해도 낳았을 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단번에 답을 하셨다. 그리고 낳아도 된다고 하는 병원을 무조건 찾아서 낳았을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요즘 감기약은 순해서 그 정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오빠를 임신했을 당시에도 엄마는 유치원교사로 일을 하셨고, 오빠를 낳고도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오빠는 순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를 임신한 도중에 하혈을 하신 적이 생기며 일을 그만두게 되셨다. 그리고 그 우여곡절의 끝은 나의 생일날이다.
원래의 예정일은 1월 초였지만, 나는 그보다 열흘정도 빠르게 태어났다. 내가 발을 너무 세게 차는 바람에 양수가 터져 나를 낳아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일주일 정도만 지나도 1살이 어려지기에 엄마는 아파도 참아서 기다리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양수가 나온 상황에 아기를 낳지 않으면, 말라죽는다고 하여 긴급하게 출산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나의 머리가 커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원래 아기는 마지막달에 쑥 큰다는데, 나는 마지막 달을 다 채우지도 않았지만 3.6kg으로 태어난 우량아였다. 결국엔 자연분만이 안돼서 제왕절개를 시도해야 했다. 여기서 마지막 문제는 그날은 크리스마스였고, 마취의가 제주도로 휴가를 가있었다. 그렇게 그분이 오시기까지 4시간을 기다렸다가 오후 2시 10분에 내가 태어났다.
아들이 귀한 시절이었지만, 나는 딸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친할아버지가 나를 그렇게 예뻐하셨다. 오빠 때도 들고 오지 않은 꽃다발을 내가 태어난 날에 들고 오셨다고 한다. 아빠는 삼 남매 중 늦둥이이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나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명절마다 할아버지 무릎에 앉거나 할아버지한테 놀아달라고 떼쓰며 업혀도 할아버지는 단 한 번도 혼내지 않으셨다.
이렇게 귀하게 태어난 딸, 그리고 소중한 가정, 가족. 그 모든 것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나는 나의 생일이 행복하지 않은 날로 더 많은 나날을 살게 되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