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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Sep 28. 2024

딸 중요하게 할 말이 있어

부모님의 이혼발표


 부모님이 이혼을 선언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이다. 엄마는 내 방 침대에 나를 앉히고 중요하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부모님은 나를 눈치가 조금 없는, 그저 재롱 많은 귀여운 막내딸로 생각하셨다. 때문에 언젠가 두 분이 이혼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 어릴 적부터 있었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 내가 말을 해주자 알게 되셨다.


 엄마와 아빠는 교육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절대 오빠와 내 앞에서 싸우지 않으셨다. 내가 말도 못 하는 갓난아이일 적 한번 크게 싸우신 적이 있는데, 그때 마찬가지로 아가였던 오빠가 충격을 받은 것을 보고 결정한 일이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부부는 '잘' 싸워야 한다. 물론 폭력 같은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안 싸우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두 분은 다짐대로 우리 앞에서 싸우지 않으셨지만 부모님 사이를 아이들이 눈치 못 챌 수가 없다.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 [굿파트너]에서 가정 내 자녀에 대해 이렇게 말을 했다. 자녀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증인이라는 것. 부부의 가정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데, 그 기류를 눈치 못 챌 수가 없었다. 내가 본 몇 가지 기류는 이러했다.




 첫째로 부모님은 애정행각이 거의 없으셨다. 아마도 초등학교 1학년쯤이었던가. 책상 서랍의 유리에 비친 엄마 아빠의 입맞춤이 내가 기억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애정행각이었다. 어린 나는 보자마자 부모님을 얼레리 꼴레리 노렸는데, 지금 와서는 그러지 말걸 그랬다.


 두 번째론 엄마의 질문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의 껌딱지였다. 엄마가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쫄래쫄래 따라나섰고, 이모들은 껌딱지 또 따라 나왔다고 놀리셨지만 게이치 않았다. 나의 엄마 사랑은 하루라도 안 보면 큰일이 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여행을 가거나 하다못해 이사를 위해 오빠와 외가에 며칠 맡겨두면 엄마의 사진을 꼬옥 끌어안고 눈물을 훔치며 잤다. 그런 딸에게, 어느 때와 똑같이 엄마의 약속을 따라나서는 날, 한 가지 질문을 하셨다.


"딸. 이건 엄마 친구이야기인데~ 엄마 친구가 이혼을 하고 싶데. 그런데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이혼을 해야 할까 아니면 자식을 보고 참아야 할까 고민이라네?"

누구나 다들 알 것이다. '이건 누구의 이야기인데'라고 말을 시작한다면, 사실 본인의 이야기를 돌려서 말하는 것이란 걸.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지만 그 이야기가 부모님 이야기일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니길 바라며 사심을 살짝 담아 대답했다.

"자식을 사랑한다면 조금 더 버텨봐야 하지 않을까? 근데 또 너무 안 맞는다면 이혼해야지 어떻게."


 마지막 기류는 부모님이 주말 부부가 된 것이었다. 아빠의 일 때문에 종종 주말 부부가 되곤 했는데, 한 번은 느낌이 달랐다. 아마 초등학교 4~5학년이었던 것 같다. 학교에 다녀오고 나니, 엄마가 아빠는 당분간 일 때문에 집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들은 소리였다. 전날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그 외에도 묘한 기류들은 많았다. 그러나 그 기류를 무시하면 우리 가족은 다른 가족들과 다름없이 문제가 없어 보였다. 여름이면 가족 휴가도 가며 잘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 11살 부모님은 이혼을 결정하셨고, 그 소식을 들은 나는 통곡했다. 그러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누구와 살게 되는지. 둘 중에 한 명은 평생 못 보는 것인지. 내가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부모님의 자리에 한 분은 안 계시는 거인지. 더더욱 나중에 내가 가정을 꾸려 명절에 친가에 간다면, 나는 엄마와 아빠를 따로 보러 가야 하는 것인지. 별의별 질문을 다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가장 슬펐던 것은 둘 중 한 명을 이제 매일 같이 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처음 겪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처절한 첫 이별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나를 달래며 아빠와 통화하겠냐고 물었고, 아빠랑 전화를 하자마자 엉엉 울면서 말했다.


"아빠, 엄마랑 이혼해? 그럼 이제 우리 같이 못살아? 그럼 평생 못 봐?"

아빠는 우는 딸의 목소리에 울지 말라며 다독이셨다. 나이가 들어서 지금 돌아보면 그 통곡이 부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더 아프게 했을지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둘이 완전히 서류에 도장을 찍기로 합의본 것은 오빠와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 정하셨다. 혹시 모를 학교에서의 차별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혼가정의 자녀가 되었다.


다음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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