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뒤늦은 대화
이혼한 부부가 서로에 대한 헌담을 자식에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제발 아이에게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생각을 해보자, 누군가가 당신의 부모를 욕한다면 자식으로서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하필 자신의 부모에 대해 험담하는 사람이 부모라면, 얼마나 곤란하고 슬픈지 생각이 드는가.
분명 나에게는 소중한 엄마 아빠인데, 푸념 삼아하는 '너희 아빠가 말이야~', '너희 엄마는 말이야~'라는 말을 들을 때면 곤란하고 슬펐다. 그리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했던 말 중 공통적인 말은 가족에 대한 의미인데, 내가 보았을 때는 두 분 다 똑같았다. 다만 두 분이 생각하는 기준점이 달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대화로 풀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두 분이서 대화를 나누었다면 좋았을 것 같은 하나의 예시가 있다. 아빠가 엄마에게 이혼을 하자며 이야기할 때 우리를 데리고 가서 키우고 엄마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아빠는 엄마를 조금 편하고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결국 엄마가 가장의 무게를 지게 되었지만, 아빠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엔 의무가 없는 양육비를 오빠와 내가 성인이 되어도 드리면서 도움이 되고자 하셨다. 엄마는 아빠에게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지만, 늘 나에게는 만약 집안이 가난해지고 힘들어진데도, 함께 이겨내고 버티자고 했으면 그랬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두 분이 드디어 뒤늦은 대화를 했다. 작년 겨울 나의 직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자세한 말을 생략하며 이야기하자면, 그 일로 경찰서에 (예전에는 신변보호라고 불리었던) 안전조치 워치를 받아 생활을 해야 했다. 나의 잘못은 하나 없었지만 가해자가 계속 찾아와 괴로운 상황이 반복되어, 퇴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사건 첫날, 험한 일이 일어나자 엄마와 아빠에게 퇴근길을 함께 해달라고 급하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집에 온 후 두 분 다 식탁에 앉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들어주셨다. 사실 이런 비극이 내 인생에 한 번이 아니었기에 부모님은 나에게 어떠한 위로도 함부로 하지 못하셨다. 심지어 이번 가해자의 나이가 아빠와 한두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두 분은 잘못이 없는 일이었지만, 나에게 어른인 본인들이 미안하다며 사과를 하셨다. 울다 지쳐 방에 들어간 나를 뒤로 하고, 두 분은 자리에 남아 대화를 더 하셨다.
방 안에서 두 분의 이야기가 대충 흘러들어왔는데, 아빠의 말 중 하나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오랜 시간 동안 다시 생각해 보니까. 당신이 집에서 나가라는 말이 진짜 나가라는 게 아니었더라고."
모든 대화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다음날 엄마는 둘이서 못한 묵혀둔 대화를 했다고 하셨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이전에 못 보았던 부분들을 보았을 것이며, 각자의 부족한 부분은 인정했으며, 곱씹으며 생각한 깨달은 것들을 나누었던 것 같다.
뒤늦은 대화의 시작이 하필 나에게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 때문이었지만, 그렇게라도 둘이 식탁에 앉아 차분히 대화를 나누었다니 좋았다. 적어도 둘 다 후회나 미련은 남아있지 않으리라. 그렇게 두 분 모두 한발 더 가볍게 나아가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