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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의 담소 Oct 25. 2024

해산된 가족과 그 자리를 오래도록 지킨 한 사람

 우리 가족은 사실상 해산된 지 오래되었다. 오빠는 대학생이 되자 자취를 시작했고, 나와 엄마만이 같이 살고 있었다. 명절이나 누군가의 생일이면 밥을 같이 먹거나 종종 전화로 안부를 묻기는 하지만 다른 가족들처럼 살갑고 끈끈한 가정의 분위기는 아니다. 모두가 각자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으며, ‘따로 그러나 때론 함께‘의 형태를 유지 중이다. 우리 가족이 해산된 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제일 늦게 받아들인 건 나였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심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는 눈에 보이고 소식이 들리면, 자연스레 마음을 쓰는 사람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가서 맛있는 것을 발견하거나 가족들이 좋아했던 무언가를 발견하면 내가 먹을 것보다 우선으로 사갔다. 또는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친가, 외가의 소식이 들리면, 아무리 나에게 못된 짓을 했어도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는 성심이 착하고 여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나의 이런 면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최근 명절에 일이 발생했다. 자취를 하는 오빠가 신경이 쓰이는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명절에 굳이 내가 일하는 날을 골라, 엄마와 오빠가 단둘이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사실상 그 둘이 함께 밥을 먹어주지 않는다면, 난 명절 내내 혼자이다. 혼자인 기분이 싫어서 명절에 굳이 일을 구해서 나간 적도 있다. 그러나 이번 명절만큼은 단 하루라도 함께 보내자는 말을 엄마는 가볍게 무시했으며, 오빠는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렇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 내 생일 당일에 가족끼리 모여 밥을 먹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엄마와 오빠 그리고 내 생일이 거의 연달아 있다 보니, 보통 한 번에 몰아서 보기도 한다. 게다가 하필 내 생일이 크리스마스라 약속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내 생일 당일에 온 가족이 모인 적이 없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미국에서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 다시금 스멀스멀 올라왔다. ‘정말 다들 자기 살길이 바빠서 아무도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구나’ 명절에 서러움이 휘몰아쳤다.


 몇 주가 지나서야 엄마를 불러 대화를 했다. 명절의 약속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 쌓여왔던 울화통을 터트리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랑 오빠는 정말 나한테 미안하기는 해요? 나에게 십여 년을 해온 일들을 본인들은 고작 한두 마디 사과로 끝내면, 내가 단번에 용서해야 해요? 나도 구질 구질하게 붙잡고, 늘어지고, 했던 말 또 해가며, '이랬었잖아 저랬었잖아' 옛날이야기로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그럼 적어도 내가 하지 말라는 일은! 그것만큼은! 안 해줘야 하는 거잖아요. 같은 일을 반복하지는 말아야죠. 가족들이 저를 사랑하기는 해요? 우리 가족은 당장 제가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릴 것 같아요."

 엄마는 대답했다.

"당연히 예전에 한 일들은 미안하지. 그리고 가족으로서 사랑하지만, 우리 가족은 해산된 지 오래되었어. 우리가 남들과 같은 가정이지는 않아. 이제 우리는 그냥 각자 알아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우리가 각자 살아간다고 해도,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아. 이렇게 살아도 서로 안부도 묻고, 명절이나 생일 때 얼굴도 보고, 종종 같이 밥도 먹잖아. 나는 이제 네가 네 인생 살았으면 좋겠어. 남 생각하지 말고 가족 생각도 하지 말고 오롯이 너 먼저 생각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어. 여행에 가서도 가족들 생각해서 뭐 사가지고 오지 말고 진짜 너만 생각하고 살아."


 사실 이와 같은 대화를 몇 년 전에도 한 적이 있다. 그때도 엄마는 비슷한 대답을 해주면서 내가 아니었다면 우리 가족이 그나마 이 정도도 안 하고 지냈을지 모른다며 나를 위로해 준 적이 있다.


 나에게 부모님의 이혼이란 하루아침에 집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았다. 집의 천장부터 무너져 내리자 그 안에 있던 가족들이 한 명 한 명 버티다 못해 자리를 뜨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마다 나는 무너진 기와집의 기둥을 부여잡고 엉엉 울며 자리를 지켰다. 중앙부의 단 하나의 기둥만은 뿌리째 뽑히지 않게. 지붕이 무너지고 문짝이 날아가도 그 기둥 하나만 버틴다면, 이 집은 무너지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 홀로 기둥 하나를 붙잡고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썩어갔나 보다.


 엄마의 말대로 나는 이제 그 기둥을 놓으려고 한다.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이곳에 예전엔 집이 있었었나' 싶은 공터에서 나아가려 한다. 그 길이 더 외로울지도, 슬플지도, 고독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푸르른 하늘을 보며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살아감을 느끼려고 한다. 이전의 상처들도, 현재의 가족들의 안부도 신경 쓰지 않고, 가족을 정말 사랑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한 자신을 위해 보려 한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새로운 곳에 나의 집을 지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정말 어쩌면 그 집마저도 온전히 지키지 못한다 해도, 나는 이제 나아가는 법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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