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 따끔할 뿐
일정이 예상보다 빠르게 마무리되어 1시간가량 여유가 생겼다. 빨리 집에 가서 쉴까 하다가 헌혈의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퇴근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대기하는 사람이 없어 좋다.
내 컨디션과 혈압과 혈액 상태가 헌혈 가능한 상황인지 사전 검사를 하는데, 헌혈의집 담당자님이 손목 보호대를 하고 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인대가 끊어졌다고 한다. 어이쿠... 건강을 위한 곳에서 일하시는 분께서 정작 본인의 건강을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직업병에 대한 위로를 건네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이상 없다는 검사 결과가 나온다.
100회 넘게 헌혈하신 분들께는 명함 내밀기 어려운 레벨이지만 가능한 때마다 헌혈을 하려고 한다. 전에는 전혈 헌혈을 했는데, 헌혈을 하다 보니 전혈보다 성분 헌혈이 더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전혈 헌혈의 장점은 헌혈하는 시간이 짧다는 점이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헌혈 자체에 걸리는 시간은 15분 정도, 사전 검사 시간과 헌혈 후 휴식 시간을 더하면 50분 정도 시간을 내면 된다. 이와 달리 성분 헌혈은 혈소판이나 혈장, 혹은 혈소판과 혈장을 헌혈하는 방식인데, 혈소판이나 혈장만 따로 뽑아낼 순 없어서 전혈 헌혈을 한 후 혈소판과 혈장은 남기고 나머지 성분은 다시 몸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혈장만 헌혈하면 헌혈 자체는 40분, 전후 시간을 포함하면 1시간 20분가량은 시간을 내야 한다. 혈장과 혈소판을 모두 헌혈하는 게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데, 헌혈 자체에 걸리는 시간도 1시간이 넘고, 전후 시간을 더하면 2시간 가까이 헌혈의집에 머물러야 한다.
최근에 성분헌혈을 주로 하려는 이유는 헌혈 주기 때문이다. 전혈 헌혈은 헌혈 이후 8주가 지나야 다음 헌혈이 가능한 반면, 성분 헌혈은 보름만 지나도 헌혈이 가능하다. 이왕 헌혈하는 거 할 수 있을 때 더 자주 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
지인들과 헌혈하는 게 뭐가 좋은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특별한 기술 없이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심적 만족감이 크다. 그저 바늘만 꽂고 의자에 누워있으면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물론 4대 보험 가입자로서 2년마다 건강검진을 받긴 하지만, 건강검진만큼은 아니더라도 헌혈을 할 때마다 혈액 상태에 대한 정보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헌혈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헌혈을 하면 받는 사은품도 짠테크 관점에서 쏠쏠한 재미이다. 편의점 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 등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아주 작은 이유이긴 하지만 헌혈에 재미를 주는 요소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헌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건강하고 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뜻이라 의미가 있다. 나이와 몸무게, 혈압에도 기준이 있고, 먹고 있는 약의 유무, 음주, 수면 등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번 헌혈 때는 방문한 시간 특성상 사람이 적었지만, 평소 헌혈의집에 가면 남녀 불문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헌혈을 하러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한 상황이다. 적정 혈액 보유량은 5일분이라고 하는데, 레드커넥트(헌혈 앱)에 있는 혈액 비축 정보를 보면 늘 5일분 미만으로 표기되어 있다. 코로나가 극심할 때 비축량은 꽤나 심각했던 걸로 알고 있다.
헌혈 후 하루가 지나고 혈액 검사 결과가 도착했다. 다행스럽게도 혈액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었고, 2주가 지난 날짜로 다음 헌혈일도 예약했다. 주사바늘에 대한 두려움만 없다면 이보다 좋은 봉사활동이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