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가 물가가 비싼 나라라는 것은 누구라도 알 것이다. 홍콩, 뉴욕, 도쿄, 파리, 런던 등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살기 비싼 나라로 손꼽히는 싱가포르에 주 된 이유는 주로 3가지이다.
1. 자동차와 유류비 - 싱가포르에서 자동차에 붙는 세금은 어마어마하다. 우리나라 아반떼 정도의 가격이 싱가포르에서는 1억 정도에 구매할 수 있다. 독일 외제차 같은 경우는 서울의 작은 오피스텔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2. 공산품 - 나라 자체에서 생산해내는 공산품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싱가포르는 모든 것을 수입해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채소와 고기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엄청 비싼 편이 아니다. 주로 저렴하고 가까운 동남아시아, 중국, 호주에서 많이 수입해오기 때문이다. 물론, 퀄리티는 국산에 비할바가 못되긴 하다. 하지만 가전제품, 화장품,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수입산이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보다 살짝 비싸다.
3. 렌트비, 부동산 - 싱가포르의 부동산과 렌트비는 정말 비싸다. 도시국가인 홍콩과 비슷한 이유로, 인구밀도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겠지만, 비싼 아파트의 렌트비는 월 수천만 원에서 억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기도 한다.
길어진 재택근무(2년 가깝게 집에서 근무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에 좀 더 쾌적한 환경으로 이사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1 베드룸 (국내의 분리형 원룸, 10평 이상)을 찾고 있으나 2022년 들어서며 미친듯한 집값으로 번번이 좌절하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구하는 지역 내에 1 베드룸의 가격은 170~180만 원 대였다. 그러나 불과 1년 만에 동일 가구가 200~220만 원 가격대를 형성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하고 말았다.
심지어 그 가격에 나오는 집들도 하루, 이틀이면 바로 렌트가 나갈 정도로 수요가 많다. 보통 싱가포르에서는 집을 렌트하기 전에 부동산 에이전시와 약속을 잡고 방문을 하여 마음에 드는지 확인하는 게 보편적이다. 이번에 마음에 드는 집이 하나 나와서, 글이 올라온 지 3시간 만에 약속을 잡았으나, 많은 고객들이 원한다는 이유로 온라인 집 보기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살 집을 온라인으로 보고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 말도 안 되긴 했으나, 그래도 궁금한 마음에 약속한 시간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오후 2시쯤 입장하고 나서 보았던 대기인원은 무려 90명이었다. 부동산 에이전시가 집을 돌아다니며 설명하고 있는 와중에 거의 실시간 경매가 일어날 정도였으며, 온라인 집 보기가 끝난 지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14평의 원베드룸은 200만 원에 렌트가 됐다.
이사할 집을 찾은 지 3개월이 되자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싸야만 하는 이유가 뭐고, 이 시기에 이렇게 비싼 이유가 뭘까? 그리고 몇 가지의 원인을 추측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에 렌트를 하는 인원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전체 인구에 40퍼센트에 가까운 외국인들은 당연히 렌트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고, 60퍼센트에 가까운 싱가포르인들 중 80퍼센트는 정부 임대아파트(HDB)에 살고 있다. 싱가포르의 집 종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으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brunch.co.kr/@yeontaemon/7
그렇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유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숫자는 렌트비의 수요와 굉장한 연관성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코로나바이러스 기간인(2020~2022)년 2년 동안 20%에 가까운 수가 빠져나갔다.
하지만 이 수를 채운 인원들이 있었으니, 바로 싱가포르인들이다. 싱가포르인들은 주로 결혼을 하기 전까지 부모님들과 함께 산다. 앞서 80퍼센트의 싱가포르인들이 정부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했는데, 한국과 같은 원룸 개념이 없으니 독립하기에는 금액적으로 너무 부담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2년에 가까운 재택근무로 인해 넓은 본인의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싱가포르인들이 많아지고, 또한 외국에서 근무를 하거나 유학을 갔던 싱가포르인들마저 돌아오면서, 본인이 렌트를 줬던 집을 되찾아서 살거나, 다른 집을 렌트를 해서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2022년이 들어서며, 외국인들이 다시 싱가포르로 유입되기 시작하며, 싱가포르인으로 늘어났던 수요가 외국인으로 다시 한번 늘어나게 되는 것이, 2022년 집값 폭등에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홍콩, 서울과 비교하여 다른 지리적인 특징이 있는데, 산이 거의 없는 평지라는 점이다. 따라서 싱가포르에 살며 등산을 못한다는 큰 단점이 생기곤 한다. 평지라 함은 건물 짓기에 굉장히 터일 텐데 왜 이렇게 건물이 비싼 것일까?
실제로 싱가포르에 살며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인으로서 굉장히 놀라운 점이 있다.
"아니 저렇게 땅이 비는데 왜 아무것도 안 짓지?"
심지어 그 땅이 싱가포르에 사람이 살지 않는 외곽지역도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마리나베이 지역 바로 옆에 있는 땅들도 텅텅 비어있고, 싱가포르에서 가장 수요가 높다는 지하철역 바로 옆에 있는 땅들도 비어있다. 공원으로 쓰이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잘 정돈된 풀만 무성히 있는 땅이다.
한국인이었으면, 바로 땅을 매입하고 건물을 지어 임대를 줄 것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어차피 자국민은 정부 임대아파트를 받아서 살 것이고, 외국인은 싱가포르에서 임의적으로 수를 조절할 수 있으니, 수요와 공급이 1:1 비슷하게만 맞춰가면, 집 값이 하락할 걱정도 없이 안전하게 유지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토지는 개인이 아니라 정부가 가지고 있다. 굳이 난개발을 하면서 미관을 해칠 이유도 없다.
그렇지만 공급이 충분하지 않으면, 결국에 임대 가격은 우상향을 할 것이지 않느냐라고 생각한다면, 솔직히 크게 상관은 없다. 대부분의 싱가포르인들은 정부 임대아파트에 살기 때문에, 임대에 대한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싱가포르 입장에서는 집 값과 임대 가격이 상승한다면, 더 높은 세금을 걷을 수 있어 손해 볼 것이 없다. 다만, 너무 높은 집 값으로 인해 외국인이 빠져나가는 엑소더스가 생기지 않게 적절히 유지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모든 걸 수입에 의존하는 싱가포르에서 건설재 가격의 상승과 건설노동자(인도와 남아시아 지역에서 오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가 싱가포르에 오지 않거나 어려워짐으로써, 완공일들이 미뤄지기 시작했고, 싱가포르 정부가 예측한 공급량과 빗나가게 된 것이다. 한국처럼 빠르게 짓는 나라라면, 1년 정도면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으나, 싱가포르는 건설에 꽤나 오래 걸리므로, 장기간의 코로나바이러스가 몇 년간의 공급 예측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따라서 공급적인 부분에서 최소 1~2년간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2019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이후 미국에서 양적완화를 시작하며, 전 세계에 돈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미국의 부동산 가격뿐만 아니라, 특히, 대한민국의 부동산 가격은 정말 미쳐 버린 수준에 도달했다.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인데, 집 값이 꾸준히 상승에 이루어지면서, 그에 따른 임대 가격마저 같이 상승하게 되었다. 왜 집 값과 임대 가격이 같이 상승해야 한다고 한다면, 아직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심리상, 집을 샀을 때 연 몇% 의 임대 수익률을 기대하기 때문인 것 같다.(주로 연 3%가 많은 것 같다), 그에 따라 2020, 2021년 많은 외국인들이 떠나 집이 공실임에도 불구하고, 절대 가격을 내리지 않아, 몇 개월간 공실로 두는 집들도 많았다.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고 나니, 싱가포르 생활에 현타가 오고야 말았다. 무엇을 위해 남의 나라에 비싼 렌트비를 내고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만큼 적은 소득세를 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월세를 산다고 생각한다면, 감면된 소득세로 어느 정도 대처가 되기는 한다. 하지만, 점점 자가 소유의 욕구도 생기고 있어, 과연 언제쯤 내 집을 살 수 있을지, 해외에서 사는 많은 교민들이 비슷한 걱정을 가지며 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