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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Oct 19. 2024

한 달 만에 다시 휴직

뇌연수막전이 재발과 오마야 시술

나는 여행을 잘 다녀왔고

오빠는 첫 출근을 마쳤다.


오빠는 회사에 다녀온 뒤,

생각보다 너무 피곤하다고 했다.


집은 수원이고

회사는 강남이라

정신없는 출퇴근길이 오랜만이니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둘 다 크게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몸에 점이 늘기 시작했다.


잘 먹고 있던 항암제의 내성이 왔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오빠와 나는 긴 대화 끝에

5월 1일 자로 복직한 회사를

5월 말일자로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오빠가 얘기했던

자연에 있는 힐링센터에 가서

좀 푹 쉬면서 지내보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항암제를 끊고 싶다고 얘기했다.


교수님은 우려하셨다.

마지막까지 해보고 안되면 다음약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하지만 오빠는 완강했고

약을 끊기로 했다.


약간의 두통이 있다고 하니

교수님께서는

스테로이드만 처방해 주신 채

검사를 해주시지 않았다.


모르겠다.

담당 교수님은 왜 이렇게 검사에 대해

적극적이 시가 않으신지


작년에도 우리가 먼저 요청했고

이번에도 오빠의 두통이 너무 심해져

머리가 터질 것 같아져서

결국 오빠가 병원으로 찾아갔다.


오빠가 혼자 두 발로 병원을 찾아간 건

이때가 마지막이 되었다.


오빠는 5월 말로 계획했던 퇴사일자까지도 버티지 못하고

마지막주는 휴가를 썼다.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회사의 배려로

퇴사가 아닌 휴직처리가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요청해서 한 검사,

결과는 뇌연수막전이 재발


예전에는 척추에 주사를 맞았지만

이번엔 머리에 오마야 라는 카테터를 심어야 한다고 했다.


전공의가 척추주사를 놔줬었는데

아마 의료파업 때문에 인력이 없으니

보다 쉽게 놓을 수 있는 오마야를 권한 것 같다.


대신 오마야의 장점을 설명해 주셨다.

척수액이 많이 차서

뇌압이 높아질 때

응급상황에 오마야로

척수액을 쉽게 뽑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간단한 시술이라고 했지만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시술이라

하지 않고 싶었지만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우린 오마야를 하게 되었다.


간단한 시술이라고 설명 들은 오빠는

평소 1박 2일 입원 때처럼 간소하게 짐을 챙겨

가벼운 마음으로 갔다.


나도 큰 걱정 없이 출근해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시술을 마치고 나온 오빠가

"와 이게 무슨 시술이야 최악이다"

라고 메시지가 하나 왔다.


아프냐 퇴원은 언제 하냐

자냐


퇴근 때까지 답이 없었고

정말 많이 불안했다.


퇴근하자마자

지하철역으로 뛰어가서

병원으로 향했다.


입원병동에 가서

보호자라고 말하고

상황을 설명드리고 올라갔다.


입원실에 갔는데 오빠

침대가 없었다.


오빠는 어디 간 거지?

복도를 뛰어다니니


간호사가 여기 있다고 했고

가보니 처치실에서 홀로 남아 구토를 하고 있었다.


시술한 오마야로 첫 항암제를 넣은 모양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 구토를 하고 있었고

진정이 되지 않아 병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그 추운 처치실에 혼자 남겨져있던 것이었다.


이 정도 시술이면

보호자가 필수적인 것 같은데

별거 아니라고 해서 우린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작년에 척추에 맞았던 주사랑

약물은 같았는데

오마야를 통해

뇌실로 직접 투여가 되어서 그런지

오빠는 너무 힘들어했다.


담당 교수님은 나를 불러

mri를 보여주며 무서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뇌연수막 전이가 되면 보통은 1~2개월 본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다.

그리고 직계가족들과 교류가 아예 없는 거냐

알려서 모두 준비를 했으면 좋겠다.

1~2개월... 작년에 6개월을 들었을 때랑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마야를 수술한 신경외과에서는

척수액이 많아 뇌압이 너무 높아

척수액을 배출하는 션트라는 시술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우선 지켜보자고 했다.

이때 션트를 안 한 것을 지금 많이 후회한다.

정말 몰라서 못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수도 션트를 경험해 본 적 없는 교수였다.

그래도 담당 환자인데

신경외과에서 그렇게 얘기하면

션트에 대해 찾아보고 같이 결정을 해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 이해가 안 된다.

그저 지켜보자고만 했다.

교수님을 너무 믿었다.

뼈저리게 후회한다.

환자와 보호자는 후회를 덜 하려면 공부가 답이다.

적어도 공부를 하고 선택을 해야 후회가 덜하다.


교수님과 대화를 마치고

자는 오빠를 보며 계속 울었다.

짐도 챙겨 오지 못했기 때문에

막차 시간까지 곁에 있다가


집에 가서 며칠 병원에 있을 짐을 챙기고

첫차를 타고 다시 병원으로 왔다.


밤새 아팠다고 해서

집에 간 것을 무척 후회했다.


거지꼴이더라도 짐을 못 챙겨 왔어도

그날은 곁에 있어줬으면 좋았을걸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모든 선택이 어려웠다.


당일 휴가는 힘든 상황이라

오빠 친구에게 오전을 부탁하고

회사에 간 뒤

반차를 쓰고 다시 병원에 갔다.


휴가를 며칠 내어

한 일주일 정도를 병원에서 오빠와 함께 보내고

퇴원을 했다.


그리고 오빠의 친형에게 알렸다.

오빠는 가족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가족들은 오빠를 좋아한다.


나도 가족들의 입장에서

이건 알리는 게 맞다고 생각이 들어

오빠와 상의 없이 알렸다.


그리고 오빠의 친형은

마침 일을 쉬고 있어 잠시 수원에 올라와 같이 지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께도 직접 전해주어 다행이었다.

차마 내가 전하기는 어려운 소식이었다.


처음엔

오빠의 두통은 나아진 듯 보였다.


체력이 안 좋고 밥을 못 먹어도

그저 항암 부작용 때문에 힘든 것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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