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애교가 많아진 줄 알았는데
수술 후 오빠의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예전엔 의젓한 상남자 스타일이어서
애교도 전혀 없고 담백했는데
애교가 정말 많이 늘었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애교스럽게 달라고 하고
우리 엄마가 왔을 때
손하트를 날려서
엄마는
"재민이한테 하트도 받아보네~"
했다.
의식 없던 오빠가 말을 한다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예전의 오빠와 다르다고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뇌가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헛것이 보이는 듯 허공에 손을 젓기도 하고
계속 허구의 이야기, 상상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
낮에 자고 밤엔 안 잤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수술부위를 뜯으려 하기도 하고
섬망 증상이 시작된 것이었다.
단순한 대화는 되지만
깊은 대화는 되지 않으며
전날의 기억은 물론
단 몇 시간 전의 일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하루하루 섬망은 더 심해지고
이제 지금이 몇 년도 인지도 본인 나이도 모르는 지경이 되었다.
덧셈 뺄셈도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섬망을 나아지게 하려면
익숙한 사람과 익숙한 장소가 도움이 된다.
집에 데려가야 하는데 집에 갈 수 없는 컨디션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재활이었다.
어느 날 형님께 오빠를 맡기고
한 밤 집에서 자고 병원으로 돌아왔는데
재활 선생님이 우리 병실에 방문했다.
갑자기 뭐지?
싶었는데
어제 오빠가 밤에 아파서 당직 교수님이 오빠를 봐주셨고
재활 처방 등이 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바로 재활을 붙여준 것이었다.
나는 오빠가
수술을 하면 예전처럼 걸을 수 있는 줄만 알았지
근육이 빠지고 있어서 걸을 수 없다는 건 생각도 못했다.
재활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루 10분~30분의 재활이 큰 도움은 되지 않았지만
재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주신 것이
당직 교수님께 정말 감사하다.
재활하러 내려가보니
의식이 없는 환자들도 많았다.
의식이 없더라도 근육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립기 등
다양한 재활을 한다.
경험 많은 교수님이었다면 달랐을까
아님 알면서도 오빠가 얼마 안 남았으니 의미 없다고 생각하신 걸까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