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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Oct 23. 2024

오빠,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한 달 만에 퇴원하다

오빠와 집으로 퇴원한다는 것은

입원할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병원에 두 발로 걸어왔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못 걷게 되었고

소변줄을 달게 되어 소변을 계속 비어주어야 했고

머리에는 션트장치를 넣게 되었고

산소포화도, 맥박, 혈압을 측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고민되지 않았다.

얼른 오빠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기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 집에서 오빠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병원에 있다고 잘못되지 않으란 법도 없었고

그 위험함을 걱정하여 병원에서 평생 지낼 수는 없었다.

난 오빠가 삶처럼 살기를 바랐다.

그건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집으로 이동하는 1시간 마저

다들 걱정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오빠가 해낼 줄 알고 있었던 건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 차의 조수석을 눕혀 오빠를 태우고 집에 갔다.


이동 시간 동안 오빠가 푹 자준 덕에

큰 문제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빌린 휠체어에 오빠를 태워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보다는

집에 올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정말 기적처럼

집에 온날부터 오빠의 섬망이 나아지고

밤에 잠도 잘 잤다.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그동안 못 잔 잠을 몰아자듯

낮에는 낮잠을 길게 잤고

밤에도 푹잤다.


너무 귀여웠다.


나도 거의 한 달 만에 집에 오니

모든 게 행복했다.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것

오빠가 잘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

샤워를 할 수 있는 것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것


예전엔 정말 당연하다고도 생각 못할 정도로

숨 쉬듯 일상적인 것들이었는데

하나하나 다 감사했다.


그리고

오빠가 위급했을 당시가 6월이고

오빠가 7월에 생일이라

오빠 생일을 같이 맞이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생일 직전에 퇴원까지 하여 생일을 집에서 맞을 수 있었다.


생일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생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이었다.


무슨 케이크를 먹고 싶냐고 하니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오빠


바로 앞에 사는 우리 가족들도 오고

오빠 친구 부부도 오고

조촐하지만 생일 파티도 했다.


앉아있는 게 힘들어 누워있을 때에도

본인 배에 케이크를 올려달라고 해서 너무 웃겼다.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 인지될 만큼의 행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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