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퇴원하다
오빠와 집으로 퇴원한다는 것은
입원할 때와는 다른 상황이었다.
병원에 두 발로 걸어왔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은 못 걷게 되었고
소변줄을 달게 되어 소변을 계속 비어주어야 했고
머리에는 션트장치를 넣게 되었고
산소포화도, 맥박, 혈압을 측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전혀 고민되지 않았다.
얼른 오빠를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용기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그때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 집에서 오빠가 잘못된다고 하더라도
병원에 있다고 잘못되지 않으란 법도 없었고
그 위험함을 걱정하여 병원에서 평생 지낼 수는 없었다.
난 오빠가 삶처럼 살기를 바랐다.
그건 지금도 같은 마음이다.
집으로 이동하는 1시간 마저
다들 걱정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오빠가 해낼 줄 알고 있었던 건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엄마 차의 조수석을 눕혀 오빠를 태우고 집에 갔다.
이동 시간 동안 오빠가 푹 자준 덕에
큰 문제없이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동사무소에서 빌린 휠체어에 오빠를 태워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너무 감격스러웠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보다는
집에 올 수 있음에 너무 감사했다.
정말 기적처럼
집에 온날부터 오빠의 섬망이 나아지고
밤에 잠도 잘 잤다.
불안한 기색 하나 없이
그동안 못 잔 잠을 몰아자듯
낮에는 낮잠을 길게 잤고
밤에도 푹잤다.
너무 귀여웠다.
나도 거의 한 달 만에 집에 오니
모든 게 행복했다.
침대에서 잘 수 있는 것
오빠가 잘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
샤워를 할 수 있는 것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것
예전엔 정말 당연하다고도 생각 못할 정도로
숨 쉬듯 일상적인 것들이었는데
하나하나 다 감사했다.
그리고
오빠가 위급했을 당시가 6월이고
오빠가 7월에 생일이라
오빠 생일을 같이 맞이할 수 있을까 걱정했었는데
생일 직전에 퇴원까지 하여 생일을 집에서 맞을 수 있었다.
생일에 맛있는 걸 먹으러 가지는 못했지만
집에서 생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도 너무 행복이었다.
무슨 케이크를 먹고 싶냐고 하니
치즈케이크가 먹고 싶다는 오빠
바로 앞에 사는 우리 가족들도 오고
오빠 친구 부부도 오고
조촐하지만 생일 파티도 했다.
앉아있는 게 힘들어 누워있을 때에도
본인 배에 케이크를 올려달라고 해서 너무 웃겼다.
그 순간 정말 행복했다.
내가 행복하다는 것이 인지될 만큼의 행복은
정말 오랜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