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선물이다
평범함이 가장 소중함을 깨닫기까지
집에서의 하루하루는 선물 같았다.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아이를 봐주기로 해서
엄마집이 우리 집 앞 도보 3분 거리로 이사 온 덕분에
난 힘든 순간 가족의 품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엄마, 아빠, 동생 세명, 강아지 두 마리
너무 힘이 됐다.
매일 보지는 않더라도
바로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었다.
어느 날은
나의 여동생 두 명이 집에 놀러 와서
오빠 발을 하나씩 잡고 안마를 해주는데
오빠가 천국 같다고 너무 좋아했다.
동생들도 까르르 웃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도 너무 행복했다.
집은 수원인데 병원은 서울이기도 하고
면회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가족들이 오빠를 자주 못 봐서 아쉬웠었는데
집에 오니 가족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 좋았다.
그 당시 한참 유행하던
두바이초콜릿도 영상으로만 보다가
퇴원기념으로 주문해서
집에서 커피를 내려 함께 먹었는데
얼마나 달콤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오래 참았던
맥주도 한 캔 했을 땐
막혔던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라면이 먹고 싶을 땐
라면을 끓여 먹고
치킨이 먹고 싶을 땐
치킨을 시켜 먹고
TV를 보고 싶을 땐
TV를 보고
가족이 보고 싶을 땐
가족을 보고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다는 것을
삼십 년 인생에 이제야 느꼈다.
홈플러스에 가서 장을 볼 땐
얼마나 콧노래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흥얼거리며 필요한 물건을 샀다.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다니...'
웃기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행복하게 장을 봤다.
가끔 오빠친구들이 놀러 와서
오빠와 수다를 떨기도 하고
놓칠뻔했던 오빠의 예비군 교육도 같이 들어줬다.
집에서 생활하니
오빠가 아픈 게 잊혀지기도 해서 좋았다.
환자와 보호자가 아닌
오빠와 나, 우리로 지낼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병원 침대와 기존 침대가 높이가 같아서
옆에 딱 붙여서
큰 침대처럼 쓸 수 있었다.
나란히 누워
대화도 하고
어쩌면 오빠가 아프지 않았다면
갖기 힘들었을 시간이기도 하다.
그동안은 둘 다 바쁜 탓에
이런 시간이 거의 없었다.
오빠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오빠를 위한 물건들로
집을 채워나갔다.
낮과 밤을 헷갈려해서
낮, 밤, 요일이 표시되는 시계
누워서 먹는 걸 편해해서
누워먹는 빨대컵
병원에서 쓰는 의료용 전동베드까지
오빠가 생활하기에 편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
재활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했기에
비용은 조금 부담됐지만 방문 재활도 받았다.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듯이
오빠가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오빠에게 최선을 다했고
오빠는
나의 마음에 응답하듯
병원에서 얘기한 기간을 넘기고 있었다.
6월 24일 수술 때,
1개월을 들었었는데
8월 1일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감격스러웠는지 잊을 수가 없다.
"오빠, 8월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