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지나오며
그것이 단지 아픈 이름이 아니라
마음 한쪽에 남아 자리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어느 날 문득 드러났다.
시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고,
아무 예고 없이 돌아와
하루의 결을 아주 조금 비틀어 놓았다.
아픔을 건너는 동안
사람이 무너지는 대신
말이 줄어드는 순간들이 있었다.
침묵은 길어졌고,
숨을 고를 때마다
이전과는 다른 박자로
하루가 이어졌다.
만남이 있었기에
기쁨은 늘 환한 얼굴로 오지 않았다.
특별할 것 없는 날,
저녁이 다 식기 전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하나로
방 안의 공기가 조용히 밝아졌다.
헤어짐이 남긴 것은
끝이 아니라
형태를 바꾼 기억이었다.
잊히지 않는 얼굴이 아니라,
문득 스쳐 가는 기척으로
문간이나 창가 같은 곳에
삶 한쪽으로 머물렀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도 쉽게 단정하지 않다.
기쁨 앞에서는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슬픔 앞에서는
조금 더 오래 서 있는 쪽을 택한다.
모든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말 없는 층으로 겹겹이 쌓여
감정의 깊이가 된다.
그 깊이는
드러나지 않아도
오늘의 선택과
내일의 침묵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