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쓰임이 있다.“
3화 배추된장국 편
서문 시장에서 점심 겸 주전부리하고 싶다는 아들의 성화에 못 이겨 오전 10시 반쯤 서둘러 출발했다. 뜨개실 사기 위해 나랑 서문 시장을 자주 방문한 아들 녀석은 주전부리에도 자기 나름의 패턴이 생기게 되었다. 도착해 제일 먼저 어묵 한 개를 먹고, 좀 걷고 구경하다가 핫도그 하나,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은행식당에서 잔치국수 한 그릇을 나눠먹는 것이다. 그 뒤의 먹탐험은 그때마다 다르지만.
서문 시장에서 한 번도 식재료 장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담근 김치가 바닥나서 며칠 전부터 배추를 사서 김치를 담가야 한다는 집념에 사로잡혀 기어코 장을 보고 말았다. 시장 나들이에서 예상치 못한 소비가 얼마나 많았던 가를 다시 한번 돌이켜보게 된다. 한 포기 칠천 원 짜린 싱싱했고, 3 포기 만원은 겉이 시들시들했다. 좋은 재료 사는 거에 진심을 담는 편인데 유독 이날은 겉이 시들한 만원행을 선택했다.
집에 와서 시들한 겉을 한 겹 씩 벗기니 알맹이들이 너무나 초라하고 볼품이 없어 얼른 잘라서 굵은소금 뿌려 절였다. 옷을 벗고 축 쳐진 배추 잎사귀들을 소분해 신문지에 감싸 냉장고에 넣고 흑새우 넣은 멸치 육수에 표고버섯, 양파, 파, 다진 마늘과 남은 배추를 넣고, 된장을 풀어 배추된장국을 끓였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는 자꾸 국자를 들이밀며 시원한 국물을 맛보게 만든다. 시들한 배추 잎사귀의 변신이 오늘 밥상을 풍성하게 해 줘서 고맙다. 지금쯤 맛있게 익고 있을 여름 김치와 배추된장국을 보고 있으니 만원행 열차에 탑승하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은 쓰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