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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Jun 28. 2023

장마2

비가 오면 어떤 계절을 재생했다

지나고 지나서 바랬지만 그래서 나를 살게 하는


변명거리가 필요하면 어떤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서 숨죽여 울었고 홀로 있을 때면 너는 잠시 어두운 시기를 겪고 있을 뿐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렸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삶이 다 그렇다고 해서 숨을 꼭 쉬라고 하니까 흠뻑 젖어도 살 수 있었다


어떤 계절도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비가 많이 내리면 정말 여기도 나쁘지 않다고


그러니까 만약에

아주 혹시나 말이야


네가 새벽이라면


혼자 있어도 나랑 같이 있자

씹거나 취하지 않아도 울 수 있으니까

눈을 맞대면 어쩌면

대신 울어줄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제발


머릿속 하루가 너무나 길어서

마음에 없는 것은 나누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급격하게 말이 줄었고


일어나면 매일 아침 담배를 피우던 어떤 청년이 떠올랐고 누우면 수면 장애가 있다던 소녀를 떠올렸다 엊그제 새벽에는 싸우는 남녀의 소리를 들어서 어제 새벽에는 재난 문자가 멈추지 않아서 휴대폰을 쥐고 선잠에 들었다 오늘 출근길에는 달팽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줄까 했으나 작은 것이 너무나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서, 그냥, 너도 이 새벽을 잘 살아남았구나, 인사하고 돌아섰다


말하지 않아서 더 많은 것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그래, 우리는 장마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빗소리를 들었다


긴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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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When It Goes-사비나앤드론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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