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 해 벨롱벨롱나우 2020을 진행하며 제주로 수많은 답사를 다녀왔다. 타지에서의 행사인 만큼 지역 주민분들과 잦은 소통과 마을 알아가기가 필수적이었다. 덕분에 한 해 동안 지역 분들과 소통의 물꼬를 트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용천 3리 마을을 알아가기 위하여 우선 우리에게 하심지라는 터전을 제공해주신 경아님 어머님을 만나 뵈었고, 그다음 약속을 잡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이장님을 만나 뵈었다.
이장님을 만나 뵙기 전날, 첫 만남이기에 긴장 반 설렘 반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질문을 드려야 할까, 어떻게 먼저 인사를 드릴까. 시간을 맞추어 사부자기 경아님과 비치님과 줌 미팅을 하기도 했다.
용천상회 마을의 만남의 광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작은 슈퍼 앞에서 이장님을 만났다. 차분히 사부작사부작이 어떤 공동체인지 설명해 드리고, 올해 우리가 마을과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은 지점들을 설명해 드렸다.
“내년 내후년에 마을에 본격적인 예술이 움틀 수 있도록 돕는 기금들의 지원을 신청하기 전에 올해는 차근차근 마을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저희도 지난 한 해 용천3리에서 많은 위로를 얻었고 애정을 가진 만큼 서둘러 가기보단, 진심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사전에 고민했던 것보다, 이장님께서는 긍정적으로 우리의 이야기에 반응을 해주셨다. 다만, 우리와 같은 활동들을 하는 이들에겐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인 질문을 주시기도 하셨다. “마을과 함께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하여 활력을 불어넣는 것은 너무 좋습니다. 근데.... 선생님들은 왜 이런 활동을 하십니까?”
우리는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당장 큰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매사 도시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저희에게 쉼을 제공해준 마을인 만큼 여기서만은 마을과 함께 소통하며 보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저희도 마을 분들도 정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지속가능한 방법을 찾게 되리라 확신합니다.”라고 답했다.
다행히 그 후,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마을의 모습이 이장님께도 닿았는지 이장님께서는 흔쾌히 꼭 알아야 할 마을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용천 3리 마을의 인구는 500호 정도로 1000에서 1,500명 정도이다. 옥천면 중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리’이지만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평균 연령이 60~70대 정도로 50대의 수가 현저히 작고 청년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선주민과 후주민의 비율이 1:9 정도로 보아도 될 정도로 차이가 나는 마을이다. 특별한 직업이 없이 전원생활을 즐기고자 하시는 분들, 주말농장을 꾸리시는 분들, 여유로운 생활을 위하여 자연 근처로 이사 온 분들도 많다고 한다. 대농을 하기보단 자급자족 형태의 소농을 하기에 대부분 텃밭을 가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히 생겨나는 문제는, 마을 주민 간의 소통을 이루어 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누군가 이끌지 않으면 나서서 활동을 주도하지 않는 개인적인 단위의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장님께서도 그런 상황을 타개하고 교류와 연대를 끌어내기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미팅을 진행한 용천상회와 마을회관을 만남의 공간으로 조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고, 마을 내 다양한 워크숍들을 진행하며 만남의 기회를 늘리는 활동들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마을의 아이덴티티를 잡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을 하셨다고 한다. 용천3리 마을 입구에 보면 ‘편전 마을’이라는 커다란 지석이 세워져 있다.
‘편전 마을’이 무슨 뜻이고 어떻게 지어진 이름인지 다들 궁금해했다고 한다. ‘조각 편’에 ‘앞 전’ 조각 앞의 마을? 그 의미를 찾기 위하여 마을 역사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셨다고 한다. 역사학자분들의 자문을 받기도 하며 진행되었던 프로젝트를 통해 한 줄의 힌트를 얻게 되었다.
바로 세종왕조실록에 따른 세조 6년 기록에 ‘양근군(양평군의 옛 이름)에 주전소가 있었다.’라는 구절이다. 혹시 그 주전소가 있던 곳이 우리 마을이 아닐까 싶어 주전소가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들을 나열하고 그 요소들을 마을이 갖추고 있었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주전을 하기 위하여 가마에서 불을 땔 때 사용되는 다량의 뗄감, 주물틀을 짜기 위한 황토, 만들어진 동전을 옮기기 위한 물길, 그리고 그 동전들을 지킬 수 있는 보안성.
신기하게도, 용천3리는 그 모든 요소가 갖추어진 마을이었다. 용천3리 주변 산들의 다량의 산림목들, 대부산의 황토와 사탄천의 모래, 용천3리 근처에 위치한 다루래기 나루터 그리고 마을을 둘러싼 산세와 오직 하나의 길로 나 있는 통로. 이 모든 것들이 주전소와 관련성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편전 마을 이름의 ‘조각’이 아마 나뭇가지에 매달린 듯이 구워진 동전들을 조각조각 떼어낸다는 의미에서 동전을 의미하는 조각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고 하셨다.
또한 편전 마을 이야기와는 별개이지만, 용천3리는 6km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벚꽃길이 뻗어져 있는 곳이다. 봄이 되면 마을의 중심 길목에 벚나무들이 꽃을 가득 피워 장관을 이룬다. 워낙 그 나무가 실하고 꽃을 예쁘게 피워내다 보니 그중 일부의 나무들이 윤중로로 옮겨져 현재의 윤중로 벚꽃길의 형성에 이바지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마을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우리도 굉장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는 마을이었다니.
이장님께서는 편전 마을 체험관을 세우고 행사들도 기획하시며 이를 발전 시켜 나가고 계셨지만, 청년층이 부족한 만큼 이를 한데 모아 콘텐츠로 꾸려 나가줄 사람들이 부족하다 느끼셨다 한다. 그 타이밍에 우리가 용천3리에서 사부작사부작 꿈을 꾸어가고 있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인가. 이장님께서도 올해부터 해나갈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제안을 달라 하시며 서로 도와가며 마을을 잘 보듬어 나가보자 하셨다. 덧붙여 한주 한주 진행되는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알려주셨다.
아마 올해 첫 시작은 마을을 소개하는 새로운 형태의 소식지가 아닐까 싶다. 올 한해 마을을 우리만의 방식으로 알아가고 그 과정에서 주민분들과 함께 만들어내는 과정과 창작의 결과물들을 담은 책자들을 만들어볼까 한다. 요즘 벨롱벨롱나우의 기획으로 인하여 많은 시간이 허락되진 않지만, 간단하게나마 우리가 생각한 구체적인 책자의 형태를 적어 금요일에 찾아뵈려 한다. 벌써부터 또 굉장히 설렌다.
사부자기 도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