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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Nov 03. 2023

나는 내 아이가 불편하다.

- so what?

“오전 10시 57분. 여자아이고, 2.3 킬로그램입니다.”

39주를 채우고 나온 딸은 초음파와는 다르게 저체중아로 태어났다. 아기는 너무 작아서 젖을 물지 못했고, 수유에 실패했다. 분유도 이유식도 밥도 잘 먹지 않았다. 야경증으로 잠도 잘 자지 않았다. 울기 시작하면 2시간은 끄떡없었다.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4살 무렵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왔던 선생님을 찾아 일산까지 갔다. “어머니, 많이 힘드시겠어요.” 그때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발달도 빠르고, 다만 상위 3% 내에 드는 까다롭고 예민한 기질인 아이예요.” 사랑하는 나의 소중한 딸, 나를 너무 닮아버린 너, 걱정 많고 예민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기에, 겁 많고 소심하고 예민한 나를 철저히 숨긴 채, 쿨하고 당당한 엄마 행세를 하며 아이를 키웠다.


예민하고 걱정 많은 사람 순으로 대학교를 보내줬다면 난 서울대 수석 입학이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하버드 수석도 끄덕 없을 정도로 더 예민하고 걱정이 많아졌다.


'절대 나처럼 크면 안 돼. 나보다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뭐든 도울 거야. 뭐든 해줄 거야.'



'난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강한 엄마야.'라는 가면을 쓰고 아이를 키우다 결국 고장이 났다. 상담센터와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난 점점 아이와 둘만 있는 시간이 버겁고, 결국 아이가 불편해졌다. 하나밖에 없는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우리 딸, 세상에서 나를 가장 좋아하는 우리 딸. 나와 딸은 맞지 않는 퍼즐조각 같았다.  신데렐라의 계모보다도 못한  돼버린 기분이다.



또 상담센터를 찾았다.

"아이가 절 닮았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어요. 무던한 남편성격 닮으라고 기도했는데 아이가 커갈수록 저랑 비슷한 점이 많이 보여요. 전 아이에게 밝고 용기 있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해요. 제 걱정과 예민함은 잘 숨기면서요. 그렇게 노력하면 저보다 1%라도 나은 삶을 살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나의 눈물과 함께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은 엄마가 숨겨도 다 느낄 수 있어요. 홍지 씨는 완전히 잘못하고 있어요. 예민하고 걱정 많은 사람도 행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아이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교육이에요. 홍지 씨가 예민함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면 아이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엄마도 예민하지만 잘 살잖아?라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예민함에도 장점이 있어요."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딸이 불편했던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았다. 난 용감하고 대담한 엄마라는 연기를 무려 자는 시간 빼고 9년째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정말 노력했고, 아이는 내 바람대로 사랑스럽게 커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연기는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이의 부모들은 아이가 외향적이길 바란다. 그건 내성적인 성격이 나쁘다는 인식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에 좋고 나쁨은 없다. 오직 다를 뿐이지. 나 역시 예민하고 소극적인 성격의 단점만을 생각하며 아이에게 대물림 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가진 예민함도 고쳐야할 점이 아닌 내가 가진 특성 중에 하나일 뿐이다. 잊지말자.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그래. 나 예민해. 그래서 뭐? So what? 예민, 소심, 걱정 많은 엄마지만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 보여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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