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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 Jan 16. 2024

겨울에는 핫한 귤 드세요.

결혼 전까지는 과일을 좋아했다. 냉장고 안에 엄마가 손질해 둔 과일이 매일 나를 기다렸다. 껍질을 깎아야 하는 사과, 배도 이미 손질되어 언제든지 쉽게 꺼내먹을 수 있었다. 포도도 알알이 떼어져 깨끗이 씻겨 있었다. 포크 하나만 꺼내서 바로 먹었던 과일이 결혼 후에는 참 귀찮아졌다. 난 이제 과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요리를 못하는 아니 싫어하는 나는, 과일을 꺼내 깨끗이 씻고 껍질을 깎아 접시에 내는 것도 일련의 요리과정처럼 느껴져서 잘 사지 않는다. 주방에서 손에 물을 묻히는 일은 그저 피하고픈 시험지다. 결혼 10년 차, 아직도 겨우겨우 가족들에게 삼시 세끼를 차려주는 중이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맛도 좋고 비타민도 풍부한 과일이 필요하다. 물을 묻히지 않고 줄 수 있는 과일은 바로 귤이다. 이젠 요리 똥손에서 맛없는 과일 고르기 고수가 된 듯 마트, 백화점, 인터넷 어느 곳에서 사도 달콤한 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시큼 새콤한 귤이 초콜릿을 좋아하는 딸의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베란다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귤 10킬로그램, 또 다른 숙제로 남겨졌다.



불행히도 입이 짧은 가족에게 입양된 귤들은 허연 곰팡이가 슬기 시작했다. 아직 상태가 괜찮은 귤들을 골라 주방으로 가져왔다. 요즘 유행하는 탕후루를 만들어보려고 레시피를 찾기 시작했다. 



<쉽게 만드는 귤탕후루 레시피>

1. 물과 설탕을 1:2 비율로 섞어 2분간 전제레인지에 돌린다.

2. 타지 않도록 30초 간격으로 계속 확인하며 돌려준다.

3. 시원한 냉수에 얼음을 넣어 준비해 둔다.

4. 귤을 꼬지에 꽂아 만들어둔 시럽에 코팅해 준다.

5. 설탕물에 코팅된 귤은 꺼내서 바로 얼음물에 넣고 살살 흔들어 준다.



씻어먹기도, 껍질을 깎아먹기도 귀찮아서 선택했던 귤이다. 아직 요리와 친하지 않은 나에게는 탕후루는 재료손질에 손이 많이 가는 잡채정도로 복잡하게 느껴졌다. 이건 아니다. 다른 귤도 허연곰팡이 옷을 입기 전에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얼마 전 연예인들이 귤을 구워 먹으며 너무 맛있다고 극찬을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귤 구이 레시피>

에이프라이어 180도로 10~15분 구워준다


탔다 귤, 귀엽다.

집에 있는 귤이 작은 편이라 10분간 구워주었다. 건조기 없이는 살 수 없듯이 에어프라이어는 내게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10분 후 에어프라이어에서 나온 귤을 보니 얼마 전 괌여행으로 까맣게 탄 딸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너도 탔구나. 따뜻한 귤이란 아이스크림 튀김처럼 생소하고 낯설었다.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입에 넣은 귤에서는 고구마맛인지 늙은 호박맛인지 모를 구수한 맛이 났다. 뜨거운 김이 가시고 나면 귤이 살짝 쫀득해지며 재밌는 식감까지 느낄 수 있다. 먹을수록 마음에 드는 핫한 귤, 올겨울 우리 가족의 따뜻한 비타민이 되어줄 녀석으로 당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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