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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니책방 Jan 20. 2024

내가 너의 우주가 되어줄게.

암으로 입원 중인 아버님께 가족들의 사진을 앨범으로 만들어드렸다. 10년의 결혼생활을 사진 50여 장으로 추리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첫 생일 때, 첫걸음을 뗐을 때, 유치원에 들어갔을 때 잊고 있던 모든 기억들이 외장하드에 모두 들어있었다. 한참을 아이의 동영상을 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모니터를 보며 '너무 귀여워' '사랑이 너무 예쁘지 않아?? 어머어머~"를 연발하던 나에게 남편이 한 마디 했다.

"방에 사랑이 자고 있잖아. 그렇게 귀여우면 모니터만 보지 말고 들어가서 직접 봐."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저학년과 고학년에게 각각 엄마아빠에게 자주 듣는 말과 얼굴을 그리는 과제를 내주고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그린 엄마아빠의 얼굴은 미소 짓거나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자주 듣는 말 또한 표정과 어울리게 "우리 아들 사랑해." "우리 딸 너무 자랑스러워." 등 칭찬과 긍정적인 대화로 가득했다.

고학년이 그린 엄마아빠의 모습은 예상되듯이 화가 나있거나 잔뜩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자주 듣는 말 또한

"숙제했어?" "공부 좀 해라." "넌 뭐가 되려고 그러니" "너는 잘하는 게 도대체 뭐야."




'나는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 아이들 참 안타깝네..' 난 정말 노력하는 엄마였다. 최적의 시기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육아서로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짜증 내는 일은 거의 없었고 당연히 체벌도 하지 않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 일관성 있게 훈육하고 사랑 가득한 표현으로 아이를 키우려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참 많이 변해버렸다.




3학년이 되는 사랑이에게 요즘 자주 하는 말은 "너 공부했어?" "방 정리 했어?" "얼른 씻어."다. 이제 많이 컸다는 생각과 학원을 다니지 않는 사랑이가 걱정되어 잔소리 폭탄을 날리며 방학을 보내는 중이다.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나를 보니, 아이에게 미안해졌다. 다큐에서 본 고학년들이 그린 엄마의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왜 이렇게 변해버렸지. 아이가 커갈수록 '이 정도는 알아서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에 짜증도 내고 화도 내는 그런 엄마가 되어있었다.




아이에게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없다. 어쩌면 초등학교 3학년인 지금부터가 진짜 노력이 필요한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사진을 보던 그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봐준 게 언제였지. 지금도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낮에는 지치고 힘든 모습으로 짜증만 냈던 것이 후회되었다. 이 시간이 돌아오지 않는 걸 알면서도 오늘도 어리석은 하루를 보냈다. 사랑스럽지 않은 데가 없고 존재 자체가 내게 큰 힘이 되는 보물 같은 존재. 못난 엄마의 마음에 다시 새기며 사랑으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선물해 줘야겠다.




세상에서 날 가장 사랑해 주는 존재. 귀하디 귀한 너와의 시간이
사랑으로 가득 찰 수 있도록 노력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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