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꽉 조이는 답답함에 어깨가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오른손으로 왼팔을 주무르며, 차가운 타일 바닥 위를 천천히 걸었다. ‘아… 집에 가고 싶다.’ 강사가 내 이름을 마지막으로 부르며 미소 지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다른 수강생들은 이미 자유형을 배우고 있었다. 물에 떠본 적도 없는 초보는 나 혼자였다. 사람들이 수영장을 두 번씩 왕복하는 동안, 나는 선생님이 내주신 발차기 100번에 집중했다. 다리사이로 지나가는 물살이 묵직하고 차가웠다. 물 위에 뜬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밑바닥에 붙어 있는 기분이었다.
발차기(발장구)를 한참 치고 있는데 이번에는 잠수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첫날인데 잠수라니.' 내가 머뭇거리는 표정을 지었는지 “할 수 있어요. 초등학생도 해요.” 라며 위로와 응원 비슷한 걸 나에게 던졌지만 그 말은 내게 와닿지 않았다. 머릿속은 "못 한다"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다음 시간에 하면 안 될까요? 제가 정말 물을 무서워하거든요.’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말들은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머리를 물속에 넣는 순간, 웅웅거리는 소리가 귀를 메웠다. 가슴이 점점 답답해져 왔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주어진 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그럴듯한 인내심인지 강박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날 붙들고 있었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할 것 같았고, 어설프더라도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내 방식이었다. 늘 그랬듯, 이번에도 참고 또 참았다.
“이 정도면 물 무서워하는 사람 아니에요. 진짜 무서웠으면 이렇게 못 하죠.” 강사가 웃으며 말했다. “이번엔 물속에서 가위바위보를 해볼까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언제 끝나지? 진짜 무서워 죽겠어.' 머릿속에서 같은 말만 계속 반복했다. 물속인데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남은 강습을 취소했다. 새로 산 수영복, 수모, 수경은 서랍 가장 깊숙한 곳에 던져 넣었다. ‘왜 이렇게 겁이 많을까?’ 물에서 자유롭게 놀 수 있을 정도만 배우고 싶었던 건데, 그것조차 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좌절감이 몰려왔다.
생존을 위해서든 취미를 위해서든 수영은 기본적으로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당연함’에 발맞추지 못한 나는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정말 내가 수영을 배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모두가 해야 한다고 하니까 너무 당연히 내 것처럼 여겼던 걸까?’
인생은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속에서 발버둥 치던 그날, 내 모습이 부끄럽고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쩌면 나를 알아가는 과정 중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 못지않게,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아가는 일도 중요하다는 걸 그날의 물이 가르쳐 주었다.
실패는 삶의 어느 순간 나를 멈춰 세우며,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방향이니?" 하고 묻는다. 수영은 단지 내게 맞지 않는 운동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 알게 되는 일도 중요한 발견이니까.
지금도 천천히 하나씩 시도하며, 내가 원하는 것과 나를 위한 길을 찾아가는 중이다.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는 사이, 삶의 빈칸이 서서히 내가 원하는 색으로 채워지고 있다. 실패는 진짜 내 것이 무엇인지 비로소 들여다보게 한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며 발견해 가는 이 길이,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