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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Jan 31. 2024

인생 망했는지 판단하는 방법

1부 버킷리스트

회사에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라는 공문을 받았다. 대법원 사이트에 들어가 본인인증을 통해 발급받았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그 사람들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부모님 명의로 조회했다. 분명히 작년까지 살아있던 할아버지 이름 옆에 (사망)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이를 계산하니 91세였다. ‘술, 담배, 여자 좋아하고 2002년에 위암 수술까지 받았는데 이렇게 오래 살았다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나는 언제 독립했을까? 혹은 독립을 위한 준비를 했을까? 초등학교 3학년 부모님이 맞벌이를 시작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에 밥과 반찬이 없을 때가 잦았다. 당시 TV에서 또래 MC 노희지 나오는 <꼬마 요리사>가 인기였다. 용기를 얻어 식칼과 도마를 사용했다. 거창한 음식을 만든 건 아니었다. 매일 먹는 라면에 김치를 다져 넣거나, 양파를 썰어 넣는 정도였다. ‘질려버린 라면이 조금 달랐으면 좋겠어.’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은 변화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주었다. 여름에는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다듬어 물김치를 담근다. 여기에 국산 서리태를 삶아 만든 콩국에 소면을 말아 먹는 걸 좋아한다. 가을에는 무를 썰어 투박한 섞박지를 담는다. 여기에 아롱사태, 무, 마늘, 파를 넣고 끓인 맑은 곰국과 함께 먹으면 몸이 노곤해진다.


유머 게시판에서 이런 글을 봤다. 〈인생 망했는지 판단하는 방법〉 단순하게 “태어날 때부터 망했다. 죽고 싶다.”라고 푸념만 하면 뭘 해도 안 되는 게 맞다. 그런데 “내 인생은 00년 0월부터 망하기 시작했다.”처럼 구체적인 날짜와 사건까지 언급한다면, 그건 정말 인생이 망한 거라는 내용이었다. “내 인생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망하기 시작했다.” 삶 전반에 빛보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았다. 전조등에 반사된 고양이의 눈처럼 동공은 확장되었다. 손끝으로 실낱같은 희망을 더듬었다.


학교에 가족 소개할 때 〈화목한 가정입니다.〉에서 화목이 빠졌다. 포근하고 안락함이 사라졌다. 동심을 잃은 대신 눈치를 얻었다. 어떻게 처신해야 이득일지 생각했다. 식탁 위에는 냉장고에서 꺼낸 식은 반찬과 찬 국이었다.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질문할 어른이 없었다. 생각할 기운도 없었다. 그때 꼰대들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공부는 다 때가 있는데 쯧쯧쯧” 나이, 성별, 직업 불문하고 비슷한 말을 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행동으로 옮겼다. 공부를 선 순위에 두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다. 학생으로 가장 걸맞은 행동이었다. 오롯이 학점과 장학금을 위해 수도승처럼 살았다.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대부분 포기했다. 외롭고 힘들었다. 친구와 함께는 여행과 추억에 할애하지 못했다. 추위와 배고픔이 피부에 먼저 와닿았다. 지나고 보니 옳은 판단이었다. 고등학교 3년 전문대학 2년. 전액 장학금과 자격증 학점 대외활동 경력이 생겼다. 10대 20대를 갈아 넣은 전리품을 얻었다.


작은 성공을 시작으로 취업 준비에 박차를 기했다. 덕분에 23살에 취업에 성공했다. 월화수목금금금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다. 여전히 조언을 구할 어른이 없었다. 인터넷에서 모으는 정보는 한계가 있었다. 도서관에 가서 경제·금융 관련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고 공부했다. 도서관 책장 하나를 통으로 읽었을 무렵 전셋집을 구했고, 실비보험에 가입했으며 IRP·퇴직연금을 운용하고 있었다. 많은 책을 읽으며 통찰력을 얻었다. 돈은 벌고 모을 수 있는 시기는 짧다는 것, 삶이 달라지기 위해서라면 쉴 때도 일해야 한다는 것. 열심히 살았다. 10년 동안 10개의 연차를 쓰지 않고 일했다. 가계부를 쓰고 지출과 수입의 방향을 파악했다. 엥겔지수를 낮추기 위해 배달 음식을 끊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서 찌개 국 반찬을 만들어 먹었다. 마지막으로 통신비를 아끼기 위해 알뜰폰과 자급제로 바꿨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투쟁을 뒤돌아봤다. 14년 되었지만 깨끗한 중형자동차가 있다. 20년 되었지만, 반 셀프 인테리어한 24평 아파트가 있다. 비로소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뿌리를 깊게 내린 삶을 얻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공허해졌다. 왜 돈을 벌려고 했을까. 심연 속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투쟁했을까? 단순하게 배부르고 등 따뜻하게 자려고 한 걸까? 토요일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일어나 출근한 이유를 떠올렸다. 그런데 기억나지 않았다. 목표를 잃어버리고 표류했다. 잘 사는 법은 알 것 같은데 왜 사는지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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