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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Feb 1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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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버킷리스트

나는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이렇게까지 없어도 되나? 싶은 정도로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아르바이트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이 가진 장점을 잘 찾아낸다는 걸. 나와 다르게 말주변이 좋다. 웃는 모습이 예쁜 사람도 있다. 부담 주지 않으며 배려하는 센스가 보인다. 리더의 자질이 있는 사람도 있다.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 이런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났다는 것.


사랑을 받아본 사람은 사랑을 주는 법을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부모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삶 속에 방치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내 몸보다 큰 진공청소기로 방을 밀었다.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수건으로 바닥을 닦았다. 어린아이가 하는 일이 다 그렇다. 꽉 짜지 못한 수건은 바닥에 물 자국만 남겼다. 퇴근한 엄마는 저지레를 했냐고 타박했다. 조금 컸을 때 머리로는 이해했다. 하지만 가슴으로는 ‘꼭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스무 살 던킨도너츠에서 있었던 일이다. 오픈부터 마감까지 풀타임 근무였다. 16시간 일해도 손에는 고작 7만 원이 쥐어졌다. 진상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친 날.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별 하나 없는 하늘을 올려봤다. 감정이 격해져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데도 등을 토닥이고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은 없었다. 울고 싶을 때 웃었다. 우울할 때도 웃었다. 힘들 때도 웃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고 자란 척, 밝은 척 연기했다. 옷은 단벌이었지만 깨끗하게 다려 입었다. 하지만 낡은 신발은 감출 수 없었다. 명랑하게 생활했다. 밝고 구김살 없는 모습만 보였다. 주변에 사람이 많아졌다. 좋은 평판이 들렸다. 이상적인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주었다.


“밝은 사람 뒤에는 어두운 베일이 있다. 그 대비 때문에 더욱 밝아 보인다.”라고 말하는 김창옥 씨의 강연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를 태워서 밝게 빛나고 있었다.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사람도 그렇다.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태양처럼 빛을 낸다. 밝고 따뜻한 온기에 이끌려 사람들이 모인다. 각자 자신만의 색깔로 사랑을 주고받는다. 그때 중력에 이끌려 나 같은 쭉정이도 끼어든다. 그들이 나눠준 온기에 차가웠던 몸이 따뜻해졌다. 스스로 빛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내 마음은 온기에 이끌려간다. 어느 순간 몸을 태우기 시작한다. 그 끝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상처를 남기고 산화되어 버렸다. 그렇게 별똥별이 되었다. 이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지 않으면 나를 잊어버린다. 또다시 별똥별이 된다. 복어처럼 몸을 부풀렸다. 몸속 빈 곳에 잡동사니를 쑤셔 넣는다. 그것도 모자라 콘크리트를 발랐다. 이제 쉽게 끌려가지 않는다. 또한 그들의 빛을 반사해서 빛나게 되었다. 얼핏 보면 별처럼 보인다. 다만 반대편은 그늘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달이 되었다.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가 이야기다. 직장 발령 때문에 서울–광주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3년을 만났지만,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녀는 가끔 “내가 어디가 좋아?”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 “네 밝고 따뜻한 모습이 좋았어.”라고 답했다. 그때마다 “밝은 사람이 아니야! 속은 매우 까매”라며 가장 어두운 과거를 풀었다. 그 속에서 포장마차 붕어빵의 달콤함을, 어묵 국물의 온기를 느꼈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었다. 친구들과 같이 저녁을 사 먹을 수 없었다. 대신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혼자 먹었다고 말했다. ‘도시락을 챙겨줄 여유가 있었네?’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어서 처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느끼는 상대적인 따뜻함, 밝음에 취해 상처를 주는 불상사를 피했다. 그녀를 정말 많이 사랑했고 아꼈다. 모든 것을 다 줘도 부족한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를 남길 것 같았다. 거리를 조절하지 못하면 몸을 부풀린 운석이라는 걸 들키니까. 보잘것없는 돌멩이라는 걸 알고 나면 떠나갈 테니까.


혼자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일찍 포기한 걸 후회하고 싶지 않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도 30대 중반이 지나면 겸허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 책임감을 느끼고 살 것이다.


가끔 다른 미래도 그려본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는 꿈이다. 좋은 부모보다 보편적인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 아이의 기쁨이 나의 행복이 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통해 내 아픔 상처 그리고 기억을 치유하고 싶다. 다만 현실을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가 많다. 설령 성공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이제는 사랑, 주는 법을 배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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