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 노출콘크리트로 인테리어 한 카페에 들어갔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스토리가 극에 다다를 때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조금 늦었죠. 차가 막혀서요.”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미지근하게 바뀌었다. 서로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뻔한 맛의 조각 케이크를 앞에 두고 7번째 소개팅이 시작됐다.
“저에 대해서 잘 모르시죠?” “김00 씨 28살 은행원이라는 것만 알고 나왔어요.” 카톡으로 날짜 시간 장소만 정하고 보는 첫 만남이었다. 순간 표정이 일그러지고 어색한 웃음이 나왔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입을 열었다. “착오가 있었나 봐요. 31살이고 은행은 2년 전에 서울에서 다녔어요. 지금은 창업 준비 중이에요.” 평양냉면처럼 뚝뚝 끊기는 질문이 오갔다. 내 커피잔이 바닥을 보이고 조각 케이크가 녹아 무너질 즘이었다. 날카로운 작살이 가슴에 날아와 꽂혔다. “고졸이시네요?” 아! 그랬다. 나 고졸이었지.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돼서 잊고 있었다. 편입을 포기했다는 것. 폴리텍대 자동차과에 다닐 때 장학금을 타지 못하면 자퇴한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23시 30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끝내면 기숙사로 돌아왔다. 새벽 두 시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학과로 향했다. 산업기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개인 실습 때문이었다. 졸업 후 국민대학교 자동차과 편입을 준비했다. 몸이 달라졌다. 이제는 밥을 먹어도 호랑이 기운이 솟지 않았다. 현실이 와닿았다. 생활보장대상자 차상위계층이었다. 더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자신이 없었다.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을 준비했다. 자격증, 봉사활동, 학점으로 국내 자동차 회사 취업에 성공했다.
당시에는 오롯이 돈만 벌면 된다는 생각으로 연고가 없는 광주로 왔다. 월화수목금금금 일만 했다. 10년쯤 지나자 깊게 뿌리를 내렸다. 20년 된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샀다. 14년 된 중형차가 있다. 이제는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나무가 되었다. 하지만 가지가 없어 삶은 메말라 가고 있었다. 23살에 취업해 33살이 되자 사람을 만날 루트가 사라졌다. 입사 동기는 중고등학교 입학하는 자녀를 둔 아저씨들뿐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이 생겨 질문했다. “형은 돈 있고 시간이 있으면 뭐 할 거예요?” 대답은 한결같았다. “연애하고 결혼해서 아이 낳아서 키워.”
처음 받아본 7번의 소개팅 모두 물거품이 되고, 이후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독서 모임에 참가했지만, 신천지 포교였다. 친목 모임에 나갔는데 보험 영업이었다.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모임에 염증을 느꼈다. “현수야 너 돈 있고 시간 있으면 뭐 할래?” 취업하고 나서부터 고등학교 삼 학년 은사님께서 주야장천 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공부해 현수야. 방통대 사이버대학 가렴.”
고등학생 때 돈이 없어서 포기했던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봄학기 호기롭게 18학점을 신청했다. 흩어진 조각 시간을 이용해 하루를 26시간처럼 살았다. 아침에 30분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강의를 들었다. 퇴근 후에 헬스장에서 트레드밀을 타며 복습했다. 공부하면서 놀랐다. 33년을 살면서 이런 것도 모르고 살았던가. 지금 글을 쓰면 작가라는 프락시스적(실천적) 글쓰기를 알게 되었다. 항상 궁금했던 현대 문학 그리고 예술계 전반에 만연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배웠다. 지금까지 작품은 작가의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틈틈이 미술전과 전시전을 관람했다. 나만의 생각과 관점으로 작품을 받아들였다.
가을학기가 끝나가는 지금 봄학기만큼 즐겁지 않다.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다. 수면시간이 부족해 다크서클이 내려왔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간이 어디 있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도 작가를 넘어선 저자가 되기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가끔 주변에서 문예창작학과에 가서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는지 물어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교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문학계 전반의 내용을 공부했으니까. 대신 나의 한계와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것이 성장의 시작이었다.
일상의 편안함에서 벗어났다. 처음이란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나만의 길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 결과 새로운 깃발을 높이 들었다. 완벽한 글쓰기가 아닌 지금 글을 쓰는 것. 저자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